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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Dec 14. 2023

없는 퍼즐 조각 빼고 모두 맞춰 놓아라

자기 계발서에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길 원하면 이미 그 일을 이룬 사람처럼 행동하라는 말을 여러 번 보았다. 살면서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건 알겠는데,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닌가? 아직 그런 사람이 되지도 않았는데, 된 것처럼 행동하면 사기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작곡가가 되지도 않았는데 - 곡을 팔지 못해 소위 '입봉'을 못한 상태 - "나는 작곡자입니다" 하고 떠벌리고 다니면 좀 사기꾼 같은데 하는.


내가 멘토로 모시던 작곡가 선배님도 초보 시절, 아직 곡을 팔지 못했음에도 만나는 사람마다 "작곡가 OOO입니다." 하고 자기소개를 하고 다녔다고 했다. 그렇게 데모곡을 여기저기 보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곡가입니다"를 홍보하고 다니던 중, 우연히 귀인 - 작곡가 선배님 - 을 만나고 그의 마음을 얻어 - 많은 도움과 배움을 통해 - 데뷔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올해 경남평생교육진흥원 <시민지식강사> 프로그램을 통해 수제 화장품 강사로 데뷔한 아내는 이전부터 무언가를 손으로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 40만 원의 강사료(10시간)만이 유일한 목적이었다면 자격증 취득에 필요한 수강료 등 대략 250만 원이 넘는 돈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의가 종료된 후에도 아내는 재료를 계속 주문해서 언니들과 나의 화장품 등을 만들고 있다. 그런 아내는 이제 자신의 공방을 차리는 꿈을 갖게 되었다. 수제 비누, 아로마테라피 향수, 수제 화장품 등을 만드는 공방.


하지만 현실은 생계를 위해서 육체가 고달픈 현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한다. <시민지식강사> 프로그램이 끝나고 정부 정책이 바뀌어서 내년에는 강사로 불러주는 곳도 없을 것이다. 경력이 일천한 강사를 어디에서 선뜻 불러주겠는가. 


아내의 직장동료(사회 친구)는 "언니와 나는 여기 말고 갈 곳이 없다. 어떻게든 버티고 꾸준히 다녀야 한다"라고 늘 말한단다. 그렇다면 아내는 먹고살아야 하고, 강사로 불러주는 곳도 없고, 공방 차릴 돈도 없으니 꾹 참고 불만족스러운 현 직장에 다니는 것만이 답인가. 잘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얼마 안 되는 월급을 받아서 생활비에 보태고, 자식도 도와주는 아내의 <공방 차리기> 소망은 요원해 보이기만 하다.


대부분의 우리들 - 여러분과 나 - 는 이런 시각을 유지하고 믿는다.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상하고 미리 삶을 재단한다. 현재 내 몸에 맞게 맞춤양복의 천을 잘라 버린다. 그것이 현재의 금리로, 물가 상승률도 무시하고 미래 수익률을 계산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잘 알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기간을 길게 잡든, 짧게 잡든 항상 예상치 못한 사건과 변수로 삶의 키가 변화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정말 '세상살이 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아내와 함께 [피아노(악기)를 포기하는 당신을 위한 심폐소생술]이란 강의로 <시민지식강사>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강의 시작 전 최종 평가서에 심사위원이 '이런 강의는 기존에 없던 강의라 신선할 수 있는 반면에 수강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는 취지의 심사평을 남겼다. 나는 열정 넘치게 강의를 준비했지만, 막상 수강생 모집을 해보니 쉽지 않았다. 모집 정원에 비해 신청자 수가 미달이라 개강일을 한 주 연기하는 바람에 기존 수강 신청생들이 취소를 하고, 초보 강사인 내가 반복해서 공지를 안 한 탓인지 수강 신청한 사실을 까먹고 무단결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8명 정원인데 2~4명 정도의 수강생을 두고 3강까지 진행을 하였다. 수강생 규모만 보면 초라하지만 어차피 나는 초보 강사이기 때문에 재미나게, 최선을 다해 강의를 했다. 강의 자료를 더 알차게 준비하고 싶어 4강 전에는 새벽 3시 반까지 PPT 자료를 업그레이드하고, 악기 실전 강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초적인 예시를 위해 건반까지 준비해서 강의실로 향했다. 그런데...!!!


강의 시작 시간 후 30분이 흘렀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빈 강의실에서 멀뚱히 있는 그 쓸쓸함이란! ㅎㅎ 그렇게 울 것 같은 심정으로 짐짝 같은 키보드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민지식강사> 담당자께 상황을 설명하고, 사정이 이러하니 불가피하게 강의를 종료해야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날짜를 변경하고, 수강생들에게 의사를 물어 강의를 다시 진행할 수 있고, 그것도 안되면 특강 형식으로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체면이 안 섰지만 기존 수강생들에게 의사를 물어보니, 몇 명이 (뜻밖에) 날짜를 변경하면 수강 의사가 있다고 하여 그분들을 모시고 4강을 진행했다.


5강은 특강 형식으로 수강생을 새로 모집해서 진행하려 했는데, 지역 인터넷 카페에 홍보 글 올리기도 쉽지 않았다. 홍보가 월 1회로 제한되어 있어 글을 올리면 바로 삭제가 되었다. 그래서 <시민지식강사> 담당자께 문의했더니 창원에는 각 동 평생학습센터끼리 단톡방이 있다면서 (진주에서) 창원까지 갈 의사가 있으면 거기에 올려보겠다고 했다. 그러고 몇 분 안 있어 바로 회신이 왔다. 창원 OO평생학습센터 담당자가 내 강의를 가지고 수강생을 모집하겠다는 의사를 표한 것이다.


그렇게 초보 강사인 나는 창원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그런데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창원에서 한 강의는 반응이 아주 좋았다. 한 수강생은 강의를 마치고 자신이 현재 피아노 독학 앱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면서 1~3번까지 순서를 매겨 아주 디테일하게 피아노 연습 생활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하셨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상세히 상담해 드렸다. 담당자는 내년에 강의 프로그램을 새로 짜면 와 달라면서 내 연락처를 받아갔다. 소개팅으로 비유하자면 애프터 신청을 받은 것이다. 야호!!!


'나도 김창옥처럼 시작하는 건가' 재미난 상상을 해봤다. 수강생이 아무도 안 온 그날, 내가 강의를 접었더라면 5강의 이런 상황과 짜릿함은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도 안 온 그 전날 새벽을 비롯, 부지런히 준비했던 강의 자료 - PPT 작성, 관련 서적 조사, 인터넷 검색 등 - 와 비록 서너 명 앞에서 했던 강의지만 4강까지의 경험이 5강을 성공으로 이끈 밑거름이지 않았나 싶다. 순간 '이미 그렇게 된 사람처럼 미리 행동하는 게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뻔뜩 스쳤다. 이미 성공한 강사처럼 자료를 철저하고 풍성하게 준비한 것이 강의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게 아닐까.


공방을 차릴 돈이 없는 아내는 어떻게, 언제 공방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해답은 바로 현재 없는 것(대표적으로 목돈)을 빼고 나머지 퍼즐을 모두 맞춰 놓는 것이다. 강의 경험과 프로필을 쌓기 위해 시골의 작은 도서관이나 주민센터, 평생학습센터 등의 강의 시즌 -  강사 모집 기간 - 에 부지런히 찔러 보는 것, 수제 화장품을 만드는 실력을 연습을 통해 더욱 업그레이드하는 것, 저렴하고 괜찮은 공간이 없는지, 주위 사람들에게 내 꿈을 말하고 수소문해 놓는 것... 이런 것들이 현재 있는 - 맞춰 놓을 수 있는 - 퍼즐 조각들이다. 


아직 입봉을 못한 나는 어떻게 상업 작곡가로 데뷔할 수 있을까? 이미 나를 프로 작곡가라 생각하고 내가 만들 수 있는 장르(발라드, 트로트, 동요, CM송 등)의 곡들을 많이 만들어 놓는 것, 돈을 떠나서 경험과 프로필을 쌓기 위해 지인 등을 통해 의뢰가 들어와도 곡을 많이 만들어 보는 것, 데모곡을 기획사에 뿌리고, 일반적인 루트가 아니라도 어느 곳이든 음악이 필요한 곳에는 대시를 해 보는 것 등이 있겠다.


가수 심신 덕에 데뷔한 작곡가 주영훈도 당시 이미 만들어놓은 곡이 수십 곡에 달했다고 한다. 싸이도 처음에는 가수가 아닌 작곡가를 꿈꾸었는데, 만들어 둔 좋은 곡이 없었다면 가수로서도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없는 퍼즐에만 집중하여 한숨만 쉬고, 장차 잘 될 나를 위해 준비해 두지 않는 것은 과거와 현재만 바라보는 답답하고 막힌 사고다. 아내가 공방 차릴 돈이 없는 현실에 한숨만 쉬며 <수제 화장품 만들기> 강사나 공방의 꿈은 접고 고달픈 생계만 꾸역꾸역 이어가는 것, 내가 부족한 실력을 두려워하여 언제까지나 음악(작곡)을 배우기만 하고 필드에 나가지 않는 것. 이런 게 막힌 시각이고 사고다.


작곡가 주영훈이 (심신의 점쟁이가 말한) 관상 때문에 데뷔를 하고, 싸이가 작곡가로 데뷔 못한 괴로움 때문에 만든 노래 <새>로 일약 스타가 됐듯이 사람 앞일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운도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왔다가 금방 사라져 버린다. 신기루처럼.


유명한 책 「시크릿」에 나오는 '이미 그렇게 된 것처럼 행동하라'가 무슨 말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한쪽 면에 작곡가, 다른 면에는 작가라고 새겨진 내 명함이 곧 도착한다. 내가 처음 작곡을 한다고 했을 때 비웃거나 고개를 갸우뚱하던 지인들 중 아무도 내가 명함 만드는 걸 비웃지 않았다. 내가 하도 떠벌리고 다니니까 이제 당연히 그러려니 하나 보다.


못생긴 사람도 계속 보면 잘 생겨 보이고, 친근해 보이는 효과가 있지 않나. 서먹한 사이에 야자타임을 가지면 빨리 친해지는 효과가 있고, 부부나 친구처럼 친한 사이에 존댓말을 쓰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게 되는 효과가 생긴다. 우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를 미리 준비하고, 그렇게 된 것처럼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은 못생긴 사람을 계속 보는 것이요, 야자타임을 가지는 것이요, 부부끼리 존댓말을 쓰는 것이다. 상황을 먼저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시크릿」의 주장처럼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돕는다. 「시크릿」까지 갈 필요도 없이 옛 속담에도 있지 않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퍼즐 조각이 몇 개 없다고 아예 맞추기를 포기하는 사람은 평생 완성된 퍼즐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반면 현재 있는 퍼즐 조각을 부지런히 맞춰 놓는 사람은 곧 없던 퍼즐 조각이 생길 것이다. 언제 어떻게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새옹지마 삶의 재미요, 신의 선물이다. 


크리스마스이브 즈음에 화이트보드에 새해 목표를 다시 적고, 2024년부터 사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작곡가이자 작가인 내 명함을 당당히 전할 것이다. 내가 마지막 5강을 포기하지 않고 하기로 결정한 것은 나와 같이 악기 배우기에 어려움을 겪는 성인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강사처럼, 강사답게 강의를 성실히 준비했고 그 덕에 최소한 5강에서만큼은 훌륭한 강사가 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명함을 드릴 때마다 나는 아마 속으로 다짐할 것이다. "부끄러운 작곡가, 작가가 되지 말아야지. 단돈 100만 원, 10만 원을 받더라고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곡을, 글을 써야지!"


여러분의 재능이, 능력이, 현실이 부족하고 막막하다고 생각하시는가? 그럴수록 더, 없는 퍼즐 조각 빼고 모두 맞춰 놓으시라. 날마다 준비하시라. 퍼즐 조각을 맞추는 동안 없는 퍼즐 조각을 맞출 수 있는 수가 생기고, 도와줄 귀인도 나타날 것이다. 이것은 내가 짧은 가방끈에도 불구하고 기자도 되어 보고, 강사도 해 본 경험으로 나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이다. 그 경험과 믿음을 바탕으로 나는 이제 작곡가와 작가의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 보려 한다. 



우리, 없는 퍼즐 조각 빼고 일단 모두 맞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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