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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Dec 07. 2023

나는 날마다 모른다

앞선 글에서 재능을 농사에 많이 비유했지만, 재능 농사와 실제 농사가 다른 점이 있다. 농사는 언제 어떤 열매를 수확하게 될지 대략 예측할 수 있지만 재능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긴 무명시절을 보낸 연예인들 - 유재석, 유해진, 곽도원, 이정은 등등 - 을 보더라도 재능이 언제 빛을 발할지는 본인도, 타인도 모른다. 그래서 재능 농사는 수확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마음보다는 그냥 밥 먹듯, 일상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해나가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계획과 목표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너무 계산을 하면 재능 농사가 피곤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삶이 재미 없어지는 이유는 내가 이미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별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말이다.


안다는 건 따분함으로 이어진다. 015B의 노래 '아주 오래된 연인들' 가사처럼 몇 년 사귀고 나면 다 안다고 생각한다. 같은 패턴으로 데이트와 대화를 해서 그렇게 느낄 뿐, 실제로는 서로 모르는 게 더 많은데도. 안다고 믿는 건 이렇게 위험하다. 'OO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란 생각은 관계의 생명줄을 끊는다.


모른다는 건 호기심과 상상력을 유발한다. 모르니까 더 탐구하고 싶고 공부하고 싶다. 그렇게 많은 재산을 가지고도 아직도 음악과 춤에 고파하는 박진영을 보면, 설령 그의 음악이 내 스타일이 아니더라도 그 모습이 귀엽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가 수많은 곡을 작곡해서 히트시켰고,  JYP 엔터 제국을 이루었다고 해서 음악을 지루해 한다면 - 어떤 도전과 상상과 자극이 없다면 - 그의 삶 또한 무미건조하고 따분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와 당신은 무엇을 아는가? 무엇을 제대로 아는가? 나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우리는 사실 정확히, 치밀하게, 완벽하게, 제대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쉽게 속단하고 그 판단으로 또 너무 쉽게 결론을 내리고 좌절해 버린다. 당신이 3년간 영업을 했는데 실적이 신통치 않다면 당신은 영업에 소질이 없는 것일까? 1년간 춤을 배웠는데 몸이 막대기라면 춤에 소질이 없는 걸까? 2년간 그림을 배웠는데 드로잉도 제대로 못한다면...


당신의 재능에 쉽게 잣대를 갖다 대지 마라. 위대한 과학적 발견 중 많은 경우가 우연이었다는 걸 아는가. 중요한 건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내가 사모하는 그 이성에게 계속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면 - 스토킹 같은 집착은 아니다 - 나에게 그토록 비호감이던 상대의 감정이 어느 순간 호감으로 급선회할 수 있다. 사람 마음 모르는 거라고, 한 순간이다. 그래서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 하지 않았는가. 지레 겁먹고 미인 곁에 얼씬도 안 하는 자는 당연히 미인이 그를 보지조차 못하니 얻을 기회가 없고, 확률이 제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소리 내어 말하고 하루를 시작해 보자. 어제까지 뭔가를 안다고 생각했던 알량하고 건방진 나를 버리고 빈 나로, 순수한 나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그래서 재능을 꽃피우려면 좀 우스꽝스럽게 삶을 사는 게 좋다. 유머가 필요하다. 뭐가 그렇게 진지하고 심각하다고... 어차피 소풍 같고 소꿉장난 같은 인생 아니던가. 바보 연기를 하는 개그맨을 보면 즐거운 건 화면 속 그의 삶이 우리 현실과 달리 심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우가 진짜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 삶의 이야기(위로)를 전하기 위해서 가짜 삶을 진짜처럼 살듯이, 우리는 무거운 삶을 깃털처럼 가볍게 살기 위해서 진짜 삶을 가짜처럼 살 필요가 있다. 


김혜자가 '평생 전원일기 김 회장 부인' 역만 하며 살면 어떨까? 연기 열정이 언제나 목말랐던 김혜자는 <마더>같은 훌륭한 영화도 만나고,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극 중 동석(이병헌)의 친모로 애달프게 죽어가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생에 감사해」라는 베스트셀러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우리들 또한 김혜자처럼, 이병헌처럼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내 인생의 캐릭터들을 살다 갈 수 있다. 피아노만 치더라도 재즈, 블루스, 뉴에이지, 발라드, 트로트 등 수많은 표현과 장르가 있다. 조금 범위를 넓히면 기타, 드럼, 베이스 등 다른 악기도 있다. 조금 더 넓히면 음악이라는 마당 안에 노래, 작곡, 작사, 편곡, 합창, 믹싱, 마스터링, 오디오... 더 넓히면 예술(춤, 미술...),  춤은 움직임이니 또 운동과 연결될 수도 있고...


못한다, 안된다, 뻔하다는 생각이 얼마나 협소한 생각인가? 우린 잘하기 위해서 태어난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좀 즐겨보자. 좀 웃어보자. 잘 생긴 배우가 맨날 일일드라마에서 재벌 2세로만 나온다면 얼마나 식상한가. 못생긴 배우도 카리스마 넘치는 역할을 할 수 있고, 이병헌도 <콘크리트 유토피아> 같은 영화에서 영탁 역을 잘 한다.


삶이 좀 수고롭긴 하지만, 그래도 선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바나나도, 귤도 먹으려면 껍질을 까야 한다. 어쩌면 당신과 나의 재능은 밤일 수도 있다. 가시 있는 1차 껍데기를 제거한 후 삶아서 딱딱한 2차 껍데기까지 까야 맛있는 알맹이를 먹을 수 있는 밤 같은 재능. 그래도 맛있는 밤을 먹는 게 "에잇! 보기 싫은 가시" 라며 차버리는 것보다 훨씬 현명하지 않을까.




당신도, 나도 날마다 모른다. 우린 호기심 천국에 살고 있다. 호기심을 벗길수록 우리 삶은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선물이 될 것이다. 몰라서 알고 싶은 마음은 그 자체가 에너지이고, 에너지는 어디론가 전달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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