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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Dec 18. 2023

재능을 춤추게 하는 타인

어떤 행동의 동기를 이야기를 할 때 내적·외적 동기에 대한 말들을 많이 한다. 주로 내적 동기가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기에 있어서 내외의 정확한 분리는 어렵다.


어릴 때 어떤 분야에 재능을 보여 그 길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른들의 칭찬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잘해서 칭찬을 받은 걸까? 아니면 우연한 칭찬에 자극을 받아 열심히 하다 보니 잘하게 된 걸까? '타고나서 잘한다'는 소위 영재들의 삶을 추적해 보면 해당 분야에서 대단한 성취를 이룬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가수 김범수는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라는 (남이 붙여준) 타이틀 때문에 활동하는 내내 무거운 짐을 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최근 유튜브에서 고백한 바 있다.


재능이 특출나지 않은데 칭찬이 동기부여가 돼서 잘 된 경우, 영재라 생각해 한껏 기대했는데 본인이 오히려 그 영재 프레임(자만, 부담, 영재가 아닌 게 들통나면 어쩌지 하는 불안?)에 갇혀 빛을 보지 못한 경우 모두 타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모양새다.


이 어린아이들의 내적 동기(재능에 대한 열망 혹은 실망)가 외부 요인 없이 가능했을까. 어떤 외부 자극도 없이 오로지 내적으로만 탄생한 순수한 열정은 없다. 햇빛, 양분, 비, 바람 없이 나무가 혼자서 자랄 수 없듯이.


외부요인, 특히 타인의 존재는 재능의 발견, 성장, 결실에 있어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칭찬 한 마디에 의욕에 불이 붙어 놀라운 성취를 이뤄내기도 하고, 비난 한 마디에 재능의 씨앗을 접고 무기력 속으로 침잠해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 우리는 나만 잘하면, 내 내면만 흔들리지 않으면 재능을 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과 상관없이 마이웨이를 가겠다는 생각은 '굳은 심지'라는 측면에서는 좋지만 자칫 타인과의 교류 없이 의식과 재능이 경직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얼마 전 내가 한 강의들에서 수강생이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사실 혹은 애프터 신청(다음 강의 주선 약속)을 받았다는 사실은 '내가 강사로서 자질이 있는가' 하는 고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타인의 행동과 말이 내 재능의 성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렇다면 재능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우선 내 재능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생각과 활동을 노출하지 말고, 격려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주 노출해야 한다.


한창 재능이 자라야 할 시기에 함부로 내뱉는 말로 재를 뿌리는 사람을 가까이 둬서 좋을 건 없다. 반대로 어떤 이유에서든 진심으로 나를 응원하는 사람은 많을수록 힘이 된다. 이런 응원군이 필요한 이유는 재능을 키워나가는 길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기 때문이다. 용기를 잃거나 기가 죽을 수 있는 순간이 많이 닥치는데, 그런 순간들을 내 의지력만으로 뚫고 나갈 수는 없다. 의지력에 기대는 건 상황을 이긴다기보다는 억지로 버티는 것에 불과하다. 재능이 꽃을 피우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에는 내 편이 많이 필요하다.


칭찬이나 비난 측면이 아닌 지원 면에서도 타인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눈에 보이는 지원도 있고, 보이지 않게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되는 지원도 있다. 부모님이 밥을 차려주시거나 아이를 돌봐 주시거나, 배우자가 생계를 책임 지거나, 맞벌이를 하거나... 이런 이유로 나는 내 시간을 조금 더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삶의 모든 문제를 내가 책임진다면 재능은커녕 하루하루 생존하기도 버거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아파트를 청소해 주시는 분, 도로를 정비하시는 분... 내가 생존할 수 있도록 내가 속한 사회를 지탱하는 수많은 타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런 감사함을 갖지 못하면 진득한 마음으로 재능을 키워나가지 못한다. 나만 잘 되려고 하면 초조하고 조급해진다. 내가 이전에 이랬다. 멀쩡한 육신으로 하루하루를 무탈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바탕 위에서 어떻게든 빨리 성취하는 것만이 최고인 줄 알았다. 진정한 재능은 느리게 가더라도 함께 갈 줄도 아는 것이다. 타인이 없으면 사실 내 재능도 의미가 없어진다. 재능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씨앗이지만, 또한 남을 행복하게 만드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혼자 잘 되겠노라, 빨리 성취하겠노라, 이기겠노라, 출세하겠노라 눈과 목과 어깨에 힘주고 재능과 격투를 벌일 필요는 없다. 내가 하루 3~4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하더라도 그 이유가 오로지 자기만족과 인정욕구뿐이라면 빨리 지치고 싫증이 날 것이다. 하지만 그 연습이 결국 남을 위한다는 믿음이 있다면 힘들고 더디더라고 계속 나아갈 뚝심이 생긴다.


타인은 나의 재능을 춤추게 한다. 타인을 경계하고, 경쟁상대로만 여기고, 외면하고, 무시하지 마라. 당신의 삶은 타인이라는 반석 위에 서 있다. 그들에게 감사하고, 베풀 생각에 들떠하고 기뻐하라. 그러면 당신의 재능 씨앗은 더 자라고, 재능 그릇은 더 커질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타인의 슬픔을 위로하는 나무그늘이 되고, 타인의 고통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결국 당신의 삶도 더 빛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재능의 선순환이다.


당신의 재능이 아주 작게 느껴지더라도 그것을 베풀 계획을 세워 보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세상 어딘가에는 있기 마련이다. 외면한다면 부담과 걱정도 없겠지만, 그만큼 당신도 고립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타인과 나는 하나하나의 행성으로서 우주를 이루고 있는 게 아닐까. 홀로 빛나는 별보다는 밤하늘을 수놓는 쏟아지는 별빛들이 더 아름답지 않은가.


재능을 춤추게 하는 타인, 그 소중한 존재를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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