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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Dec 25. 2023

재능 성장에 있어서 기록은 곧 돈이다




2023년이 저물어가는 지금, 연초에 기록했던 목표들을 보니 우선순위 위주로 대체로 지켜졌음에 스스로 놀라고 있는 중이다. 3번 항목에서 1000만 원이라는 목표액은 채우지 못했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빚을 갚았다. 1번 목표는 100%, 2번과 4번은 70% 정도를 이룬 것 같다.



독서일지는 위와 같이 엑셀에 기록했다.  내가 스스로 놀라고 있는 이유는 여태껏 살면서 장기적인(특히 연초에 세운) 계획을 꾸준히 실천하고 지켜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시작은 뜨거웠으나 점차 쪼그라들거나 흐지부지되기 십상이었다.


모든 온·오프라인 기록(칠판, 노트, 포스트잇 메모, 스케줄러, 블로그, 브런치, 인스타...)은 뇌에 기록하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서의 기능이 있다. 우리가 인지하거나 기억하거나 이용하지 못하면 정보는 가치가 없다. 그러나 뇌가 모든 정보를 Keep 해 둘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도구들을 사용한다. 


뇌를 하나의 노트라고 상상해 보자.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황금 시크릿 노트라 할 수 있다. '뇌에 기록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억'의 의미가 아님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사진이라는 기술적 결과물이 추억이라는 감성을 소환하듯 뇌라는 노트는 거기에 무엇을 적고 누적해 나가느냐에 따라서 엄청나게 다른 화학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내게 기록의 중요성을 확실히 각인시키고, 분명한 실천으로 나아가게 해 준 책 「메모 독서법」이다. 저자처럼 책을 사서 읽지 않고 대부분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 때문에 책에 메모는 못하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활동들(음악, 독서, 글쓰기, 돈벌이)은 꾸준히 기록을 해나가고 있다.


이 책에서도, 「이동진 독서법」에서도 언급하는 내용 중 '여러 책을 동시에 읽다 보면, 읽었던 내용들이 상호 작용을 일으킨다'는 부분이 있다. 나도 올해 하반기부터 3~4권을 동시에 찔끔찔끔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그런 효과를 느꼈다. 


'피아노 연습을 꾸준히 하기'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김치찌개를 끓이기 위해서는 잘 익은 김치와 돼지고기 혹은 참치, 파, 물, 솥... 이런 것들이 필요하듯이. 나의 경우 「해빗」에서는 습관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습관을 들일 것인가에 대한 전반적인 구상과 계획을, 「메모 독서법」에서는 피아노 연습일지를 기록해야겠다는 확신을, 「도파민네이션」에서는 어떻게 피아노 연습을 방해하는 쾌락에 빠지지 않고 유혹을 이겨낼 것인가에(쾌락에는 마약처럼 표면적으로 파괴력이 강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TV 중독, 쇼핑 중독, 휴대폰 중독, 식탐, 알코올, 성적인 것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대한 중심 잡기를 얻었다.


이렇게 여러 권 동시 읽기가 나의 뇌 속에서 상호 작용해서 '피아노 연습 꾸준히 하기'라는 목표를 지탱해 줬다고 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을 뇌 속에 기록하기 위해 나는 아날로그 노트에 직접 펜으로 기록을 하고, Vflat 같은 앱으로 특정 페이지를 텍스트나 PDF로  변환해서 내 카톡에 보내놓고, 그 중요 구절들을 서평 블로그에 올리고, 종합적인 사색의 결과물을 브런치에 글로 풀어내고 있다.


기록에는 디테일도 아주아주 중요한데, 만일 내가 2023년의 목표를 노트에만 기록하고 칠판에 기록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행률과 달성률이 매우 떨어졌을 것이다. 2023년 다이어리 첫 장에 적은 내용을 날마다 펼쳐볼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내 방을 들락날락하는 입구에 있는 칠판에 중요 목표를 적어뒀기 때문에 아무래도 자주 보게 되고, 볼 때마다 의식·무의식중에 각인하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 또는 그 시절 가족들의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서 우리는 옷을 갖춰 입고, 비싼 돈을 지불하고 사진관에 가서 (기념) 사진을 촬영한다. 사진도 일종의 기록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소중한 재능과 꿈을 위해서 왜 기록하지 않는가. 기록하지 않으면 재능 역시 한여름밤의 꿈처럼 스쳐 지나갈 뿐이다. 영정 사진을 찍어놓지 못한 불효자(나를 포함)가 많지 않은가. 엄밀히 말해서 재능은 내 것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잡아야 내 것이 된다. 밖에 나가서 바람을 맞아야 바람이 내 것이 된다. 바람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스치는 바람에 기분도 회복되고, 더 나아가 시도 쓸 수 있다. 집 안에만 있으면 바람은 그냥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자연의 한 요소일 뿐이다. 


강의를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는데, 올해 마침 기회가 와서 강사 교육을 받았고 소원대로 강의를 해봤다. 가르치는 일도(현재는 일방적인 가르침보다는 정보 공유의 개념에 가깝다) 스스로 많은 기록을 하는 일이다. 나는 강의를 위해 PPT를 작성해야 했기에 관련 주제에 관해 책과 인터넷에 통해 많은 정보를 찾아보았다. 이런 과정 자체가 내 견문이 더 확장되는 기회였다. EBS가 제작한 <악기는 무엇으로 사는가>, <음악은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는가>라는 멋진 다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뮤지션 김수철의 에세이 「작은 거인 김수철의 음악 이야기」와 그의 세바시 강연에서는 위대한 뮤지션도 결국 꾸준한 연습과 시행착오 없이는 탄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일본의 음악가이자 음악교육가인 스미 세이코의 책 「나는 성인이 되어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를 읽고는 어쩜 전문가의 생각이 나와 이처럼 같은지 감탄하며 내가 강의하는 주제인 '성인이 악기를 꾸준히 연습하며 성장하는 법'에 대한 확신이 더욱 단단해졌다. 결국 강의도 큰 틀에서 하나의 '기록'이었던 셈이다. '나의 기록'이 '우리의 기록'이 되게끔 하는 행위.


사업하는 친구가 곧 화분을 출시하는데, 최근에 그 홍보 영상의 BGM을 만들어줬다. 돈은 받지 않았지만 내가 만든 곡 중 상업적으로 쓰일 최초의 곡이고, 클라이언트가 만족한 곡이라 내겐 의미가 크다. 이 곡의 작곡 과정을 기록해 뒀다. 작곡 소요 기간, 레퍼런스로 쓰인 곡명, 곡의 BPM과 리듬, 코드 진행, 어떤 악기와 샘플을 썼는지 등을 아주 구체적으로 비공개 블로그에 기록해뒀다. 그동안 만든 곡에는 이런 기록이 전혀 없었기에 다음 곡을 만들 때 이전에 만든 곡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주로 쓰는 악기를 찾는데만도 불필요한 시간들을 많이 소모했다. 


내가 이렇게 작곡 작업 일지를 구체적으로 적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실천한 이유는 2024년부터는 실제로 곡을 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기록은 양면이 있는데, 리얼 현실 작곡가가 되기 위해 기록을 시작한 것이고, 이 디테일한 기록은 또 다른 작곡 의뢰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에 기록은 곧 지금부터 내가 작곡가라는 의미와 확신을 스스로에게 심어주는 행위이다.


강의를 따 낸 후 PPT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강의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평소에 PPT를 구상하고 작성하고 업그레이드해 놓으면 강의하고 싶은 마음이 더 생기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강사를 구하는 이곳저곳에 더 찔러보게 된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강의를 하게 된다면 관계자와 수강생은 강사의 열정을 느낄 것이고, 그것이 또 다른 기회를 불러올 것이다.


2026년 유럽 여행이 목표라면 최소 경비를 2024년 1월부터 저축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저축을 해야겠다고 칠판과 노트에 기록하는 순간, 첫 불입금을 입금하는 순간부터 나의 유럽 여행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제목에 '기록은 곧 돈이다'라고 쓴 이유는 기록하는 순간 그것이 현실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생각이 꿈이라면 기록은 현실이다. 그러므로 꿈의 현실화는 기록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3년 초에 칠판에 목표를 적은 작은 행위가 290일간의 피아노 연습, 한 달 네 권 독서, 빚 갚기, 강사 해보기, 상업적인 곡 납품(?) 등의 좋은 결과물로 이어지는 시발점이 되었던 것 같다.


혹시 여러분 중 누군가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여기는가? 있어도 대수롭지 않은 재능이라고 여기는가? 그런 생각을 내려놓고 기록을 해보라. 우선 사소하더라도 재미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기록하고, 날마다 10분씩이라도 실천하며 일지나 일기를 써보라. 삶이 변화할 것이다. 더욱 나다운 내가 되고, 나다운 삶에 한 발짝 다가설 것이다.


그런 기록의 시작과 누적은 반드시 결실을 맺는다. 돈일 수도 있고, 보람, 긍지, 감동일 수도 있다. 보람, 긍지, 감동이 돈보다 위이니까 최소한 기록은 돈 이상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여러분의 재능과 관련된 목표를 세우고 기록을 하자. 잘 보이는 곳에 큰 글씨로 컬러풀하게 써서 칠판이 없으면 냉장고에라도 붙여두자. 한 번 적고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행동을 하고, 피드백을 적어나가야 한다. 그러면 여러분과 나는 이미 목표에 기록한 그런 사람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록한다면, 지금 여러분과 나의 재능의 스톱워치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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