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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Jan 08. 2024

재능의 훼방꾼들

재능에 대해서 지금까지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이쯤 해서 훼방꾼의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어디에나 훼방꾼은 있다. 어릴 적 만화영화에는 항상 주인공을 방해하는 악당이 있다. 그 악당을 물리쳐야 주인공은 비로소 위기에 빠진 이웃을 구하는 등 목적을 달성한다. 곳간이나 주방의 훼방꾼은 쥐와 바퀴벌레다. 재능에도 이와 같은 존재가 있다. 우리 재능의 씨앗을 발아하지 못하게 하고, 성장하지 못하게 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훼방꾼들. 그 실체를 정리해 보자.  



1. 게으름   


재능을 찾는 일에는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내가 오래도록 좋아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성장하고 삶이 변화하는 일. 이런 일을 찾는 것은 시험 문제처럼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기속성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내 뜻과 무관하게 정해진 공교육을 받고 자라 나를 찾을 시간이 별로 없었고, 방법도 잘 모른다. 그래서 늦게나마 나를 찾기 위해서는 자신과의 많은 대화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그래서 현실에 안주하고, 안일함에 젖어 있으면 재능의 씨앗을 찾을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현실에 안주하는 삶은 아무래도 재능과 함께 하는 삶보다는 덜 행복하고 덜 충만한 삶일 것이다. 재능을 찾고 키우는 일도 역시 부지런해야 한다. 그런데 이건 밥벌이에 부지런한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주변에 보면 밥벌이에는 부지런한데 재능 찾기는 포기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2. 자존심


자존심은 자존감과는 완전히 다른 감정과 믿음이다. 한 마디로 내가 잘났다는 착각이다. 대자연이나 신과 비교하면 인간은 하찮고 보잘것없다. 인간끼리, 우리끼리 비교해서 내가 좀 잘났다는 착각도 어리석은 맹신이다. 내가 어떤 면에서 잘하는 것이 있다면 다른 이는 다른 면에서 잘하는 것이 있고, 어떤 재능도 결국 훈련을 통해서만 쓸모 있게 다듬어지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원래' 잘났다는 믿음은 과학적으로도 어리석은 결론이다. 자존심이 재능에 걸림돌이 되는 이유는 뭔가가 좋아서 시작해도 그 재능을 키우는 과정이 순탄대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잘 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우여곡절을 겪어야 하며, 시간이 걸린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어떻게든 남에게, 자기 자신에게 빨리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 과정들을 우직하게 견디지 못한다.


카페 사장을 예로 들어 보자. '나는 직장 생활보다는 자영업에 소질이 있어. 나는 커피 제조도, 손님 상대도 모두 자신 있어. 카페를 차려서 꼭 보란 듯이 성공할 거야' 이런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일 년 이상 장사가 안된다면 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다. 파리 날리는 가게 사장이 돼버린 자신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가 비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해. 장사가 안되는 상황도 각오하고 있어. 하지만 나는 카페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적어도 5년을 해볼 거고, 배워가면서 할 거야' 이런 마음이라면 개업 전에 비상시 운영비도 더 비축해 둘 것이고, 투잡을 뛰면서도 카페를 접지는 않을 것이며, 해당 분야를 부지런히 공부할 것이다.


30대 후반이었나, 일렉기타를 배울 당시 나는 내가 음악에 꽤나 소질이 있는 줄 알았다. 형이 피아노도 꽤 잘 치고, 작곡에, 곡 따는(듣고 악보로 그려내는) 능력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우 6개월도 안 돼서 딥퍼플의 'Smoke On The Water' 란 곡의 16연음 솔로 연습을 통해서 내가 그저 그런 평범한 재능의 소유자란 걸 깨달았다. 그 사실이 무척 짜증스러웠고,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 감정은 분노로 변했고 기타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형과의 대화를 통해 형의 그런 능력 역시 부단한 노력의 결과였음을 알게 되었다. 


'난 기타를 잘 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야'라는 자존심, '몇 달 연습하면 웬만큼 칠 수 있게 될 거야'라는 자만심이 없었다면 나는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직하게 기타를 계속 연습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50대인 지금에는 꽤 괜찮은 아마추어 연주자가 되어 있었으리라.


자존심은 조급증, 어깨의 힘, 짜증, 분노를 유발하므로 재능의 훼방꾼이다. 재능 밭의 잡초 이상이다.



3. 결실만 바라보는 마음


재능과 그 결실을 '내가 어떤 일을 잘하고 그것으로 출세하는 것'의 의미로 생각한다면 그건 초점이 많이 어긋나 있는 생각이다. 나무가 자라서 그늘을 만들고, 열매로 사람과 동물에게 양분을 공급하듯이 재능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 재능의 근본적인 역할이다. 그런데 열매를 빨리 맺어 사람들한테 인정받기 원하고, 자신을 뽐내기에 집중한다면 재능을 성장시키는 일에 마음을 집중할 수가 없다. 그건 열매를 빨리 맺기를 원해서 나무를 괴롭히고 닦달하는 것과 같다. 재능을 성장시키는 과정 자체도 삶의 일부이며 그 과정을 통해서도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천천히 가야 한다.



4. 타인의 시선


타인은 나보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재능을 찾아가는 길에서 우리는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한다. 영화 <쉘 위 댄스> 에서 주인공인 중년 남성 스기야마는 댄스 학원 문을 열기까지 몇 번이나 망설인다. 당신의 재능은 당신의 체면보다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나에게 별로 관심 없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말로 잠깐 내 흉을 보는 게 뭐 그리 대수인가. 나도 지나가는 말로 누군가를 흉볼 때가 있지 않나. 재능을 꽃피워 내 삶이 윤택해지는 일은 그것보다 몇 백 배 더 중요하다. 학창 시절 내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열등감에 시달리며 진정한 내 삶을 찾지도, 거기에 집중하지도 못한 것은 돌이켜 보면 결국 별것도 아닌 '타인의 시선' 때문이었다. 


'자퇴한 후 학교도 안 가고 집에 있는 나를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학교 다닐 때는 공부도 잘하던, 잘나가던 나였는데 얼마나 부끄러운가' 하는 생각. 그때가 지금처럼 오픈된 세상, 유튜브 세상이었고, 서태지나 악동뮤지션 같은 사례가 있었다면 나도 훨씬 용기를 내서 내 길을 당당히, 담담히 잘 찾아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꼭 서태지나 악동뮤지션처럼 되겠다는 게 아니라 정규 과정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선례이니 말이다.


삶은 나의 것이고, 내 진심에 의해서만 변화한다. 타인의 시선 때문에, 부모의 요구 때문에 무언가를 외형적으로 이룬(성공한) 사람들도 나이가 들고, 자아가 확고해지면 결국 진정한 자기의 길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타인은 나와 관계를 맺고 공생하는 사이이지만, 결코 내 삶을 허락받거나 눈치 볼 대상이 아님을 명심하자. 그렇게 눈치 보다가 세월을 다 보내고 나면 결국 후회하는 건 나요, 후회의 대상은 내 삶이다. 내가 한껏 눈치 본 그들과 그들의 삶이 아니다. 어린 시절 활동 기간 내내 이모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가수 김완선의 사연이 안타까운 건 그래서이다.


이 외에도 많을 것이지만, 이 네 가지가 현재까지 내가 대표적으로 느끼고 경험한 훼방꾼들이다. 빈약한 의지를 재능의 훼방꾼으로 예측한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빈약한 의지는 의식이 바뀌면 바뀐다. 한국인의 깡으로 그 의지를 강력하게 바꿔야 재능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해서 바뀌지도 않는다. 


모든 늙은 나무, 작은 나무, 구석에 있는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다. '나는 잘하는 게 없어서 우짜든지 참고 다녀야 합니다!' 이런 생각 안 했으면 좋겠다. 참고 다니더라도 재능과 꿈을 위해서 참고 다니는 거지, 재능이 없어서 참고 다녀서야 되겠는가. 재능도 꿈도 없이 오로지 (억지로)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 삶의 전부인 듯한 그런 삶을 살지 말았으면... 진심으로 나와 여러분께 바란다. 




우리는 스스로의 믿음에 따라 아름다운 씨앗이자, 나무이자, 꽃이자, 열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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