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연구가 허호익 교수는 SBS <세계의 나쁜놈들> 이란 프로그램에서 ''이단 사이비를 연구하면서 느낀 점은 인간이 죄인이다. 인간은 사악하거나 어리석거나 그 사이에 있는 존재다."라는 말을 하였다.
극단적인 시각으로 보면 역사 속의 개개인은 착취하거나 착취당하거나 둘 중 하나에 속한다. 착취는 매우 광범위하다.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착취는 잘 드러나기 때문에 파악하기 쉽지만 권력, 언론, 자본에 의한 착취는 영화 <매트릭스> 속의 인간들처럼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당하는 경우가 매우 많고 이것은 현재진행형의 현실이다. 친족이나 종교에 의한 착취는 더욱 교묘해서 인간은 그러한 상황에 쉽게 길들여진다.
펴 착취자는 착취를 당하지 않을 때는 억압을 당한다. 하기 싫은 일을 착취자에 의해 하게 되는 것이 착취요, 하고 싶은 일을 착취자에 의해 금지당하는 것이 억압이다. 반공 독후감을 써서 제출하라고 학교에서 우리를 열심히 강권하던 국민학교 시절에 독후감을 써내는 행위도 전두환 정권에 의한 착취였다. 뭔가 더 가치 있는 일에 어린 시절 순수한 마음과 귀한 시간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떠올리며 그런 식의 독후감을 잘 써내는 학생이 모범학생이라고 생각하며 보냈으니까.
이런 식으로 어릴 때부터 우리의 개인사를 차근차근 복기해 보면 착취는 실로 광범위하게, 어마하게 우리를 점령했다. 철이 기준 이하로 없거나 두 집 살림을 하거나 분노 조절 장애이거나 완전 방치형이거나 자식을 조종하는 행태의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면 불행히도 착취는 출생과 함께 시작된다. 보호자가 곧 착취자가 되는 무시무시한 상황 속에서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착취란 무언가를 뺏고 빨아먹는 행위니 - 거머리를 생각해 보라 - 부모의 보호 속에 평화로워야 할 어린아이의 감정을 빼앗아 불안과 공포 속을 헤매게 한다면 그 자체가 곧 착취인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많은 순간 착취자가 되기도 한다. 히틀러 같은 범죄자는 아닐지라도 말과 행동을 통해 타인의 평온을 깨트리고, 그 사람의 감정을 착취한다. 가정과 직장에서 우월한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약자를 은근히, 교묘하게 착취한다. 개그맨들의 자학 개그와 그걸 보고 웃는 관객은 우리 모두가 자본주의의 착취 시스템에 매우 익숙하고 잘 길들여져 있음을 말해 준다.
그래서? 착취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 시스템(세상)에서 착취당하지 않고 착취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착취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정리하여 인지하지 못하면 우리는 나도 모르게 어리석게 착취당하거나 사악하게 착취하며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못 배워서 어리석거나 사기꾼만 사악한 게 아니다. 인간 본성이 그러하므로 이 어리석음과 사악함의 범위는 지구를 덮은 대기처럼 매우 광범위하고, 의식하고 깨어 있지 않으면 당연히 이 어리석음과 사악함에 지배를 당하게 된다.
최근 방영한 PD수첩 <허경영 왕국-하늘궁의 영업 비밀>을 보면 시판되는 우유 케이스에 '허경영' 글자만 써서 불로유(不老乳)로 속여 판매하는 허경영의 사악함은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어 보이고, 그걸 믿는 노인 부부의 어리석음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어 보인다. 이것은 인간 사회의 어리석음과 사악함의 표본이 아닐까? 한 인간의 내면세계도 역시 이와 같은 어리석음과 사악함이 공존하는 듯하다.
「오은영의 화해」란 책에 보면 평범한 부모도 본심과는 다르게 어린 자녀에게, 심지어 자녀가 어른이 되고 나서까지 사악함을 선사해서 가장 사랑을 베풀어야 할 대상에게 길이길이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우리 대부분이 제대로 배우거나 경험해 보지 못한 미숙한 부모이기 때문이다. 어리석거나 사악하거나 둘 중 하나일 상태도 있지만, 어리석기 때문에 사악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사이비 교주를 지키려는 광신도들이 외부인들을 무차별 공격하는 걸 보면 확실히 어리석으면 사악해진다.
나의 좁은 식견으로는 인간은 죽을 때까지 진리를 깨닫기는 요원해 보인다. 진리를 깨달으면 성인이나 도인이 되는데, 만약 누군가 완전한 경지에 도달했다면 결국 신을 논하게 될 것이고, 자신을 신이라 칭하는 인간은 곧 사이비 교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가장 바람직한 인간의 삶, 평범하고 고요한 삶은 최대한 덜 어리석고, 덜 사악하게 사는 것이다. 어리석음과 사악함에서 완전히 해방되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는 덫에 걸린다. 그것은 신이 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코 완전할 수 없고, 완전한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진리인 듯싶다.
거금을 횡령한 목사를 거의 예수와 동일시하며 뼈빠지게 일한 돈을 갖다 바치는 교인들, 성폭행범에 불과한 교주에게 몸을 상납하는 광신도들. 보이스피싱, 텔레그램 등을 통한 성착취, 스토킹, 묻지마 범죄 등의 피해자들... 그들보다 우리가 더 똑똑하거나 죄가 적어서 그 불행이 우리를 피해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그들에게 연민을 가지면서 우리 자신을 경계하고, 사악함과 어리석음 앞에 겸손하게 배우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 그나마 이 전쟁 같은 세상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