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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Nov 14. 2024

소명이란 게 있지 않을까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이며, 행복한 것이지는 지식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라 출생 후 성장하면서 주위 환경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스 미디어를 통해 우리가 알게 모르게 환상을 갖고 세뇌당해온 건 역시 부와 권력이 곧 행복이라는 믿음이다. 부자가 되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가정에서 멋진 남편과 아내, 엄마와 아빠가 되려는 소망이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럴듯해 보이는 이 소망 속에는 사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대접받고자 하는 욕망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나의 행복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면'이라는 전제에 달려있기 때문에 이 믿음은 시작부터 오류가 있다. 행복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줘버렸기 때문에 행선지가 틀린 버스를 탄 것.


 40세를 불혹(不惑), 50세를 지천명(知天命)이라고 칭한 공자의 말씀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40세에도 여전히 유혹에 흔들리고, 50세가 되어도 여전히 하늘의 뜻은커녕 나 자신의 속마음도 잘 모른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와 <그것이 알고 싶다> 류의 범죄 고발 프로그램을 보면 부와 권력을 부족함 없이 가진 사이비 교주들은 여지없이 흥청망청 돈을 쓰고, 성적으로 타락하거나 마약에 빠진다.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고 철저하게 피착취자들을 착취할 만큼 그들의 정신과 영혼은 황폐해 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이 최고로 추구할 수 있는 행복(쾌락)이란 고작 사치와 성과 향락인 것이다.


소명(召命) :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일.


사전에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부를 소(召)에 목숨 명(命) 자다. 그러니까 목숨이 왜 부름을 받았냐는 뜻이다. 나는 이 글에서 소명을 '살아야 할 이유'라고 우선 명하고 싶다.


우린 그저 원숭이가 진화한 진화의 산물이며, 우리의 출생은 우연의 일치일까? 나의 정신과 영혼과 육체는 과연 내 것일까? 신을 믿든 안 믿든 생각해 보기 바란다. 우선 이 지구상에 태어난 것이 나의 원함이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생명이 온전히 내 것이라 믿는다면 시작부터 분명 모순이 있다. 나의 얼굴과 뇌와 피부와 오장육부를 내가 만들었나? 아니다. 그러면 부모님이 만들었나? 아니 그들은 씨앗과 집을 제공하였지 만든 건 아니다. 이렇게 내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세상 가운데 던져진 우리는 정신이 성숙할수록 죽을 때까지 내가 왜 태어났으며, 이 광활한 우주에서 나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그저 주어졌으니 마음대로 쓰다가 죽으면 되는 걸까? 하지만 그 '마음대로'조차 어떻게 하는 것이 마음대로인지 몰라서 우리는 고민한다. 왜냐하면 내 마음을 나도 모르고, 그 마음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삶의 근간은 고통이다. 애써 즐거운 척 해보지만 곳곳에 쓸쓸함과 분노와 무력함과 수치와 죄책감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 만만치 않은 인생을 소풍 왔다는 기분으로 가볍게만 살아갈 수 있을까? 누군가 언제나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설파한다면 나는 그를 사기꾼이라 부르리라. 삶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소명이 필요하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은 직장에서 더러운 꼴을 당해도, 진상 고객에게 갑질을 당해도 참는다. 그에게는 가정을 책임지겠다는, 가정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굳은 마음이 일종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삶 전체에서 하기 싫은 일을 참고하며 사악한 탐욕의 노예가 되지 않으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는 소명이 필요하다. 가수 션, 배우 신애라,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한약업사 김장하 어른 같은 분들을 보면 소명이 명확해 보인다. 14년간 꿈꿔온 국내 최초 루게릭 요양병원을 설립하는 등 불우하고 약한 이웃을 위해 전방위적인 활동을 하는 션, 고아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입양의 모범의 되었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을 돌보는 신애라, 범죄 피해자의 회복과 범죄자의 교화를 위해 느리고 굳어 빠진 공권력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려 포기하지 않는 이수정 교수, 큰 물질적 성공을 이루었음에도 삶 전체가 자선이라고 할 만큼 전 재산을 헌납하고 검소하게 사는 김장하 어른... 소명이 분명하기에 그들이 가는 길에 주저함이 없으며 그들의 삶이 아름다워 보인다.


'소명'이 반드시 자선이나 선행이어야 하는 건 아닐 테다. 그러나 오로지 나만을 위한, 나만 등 따시고 배부른 삶은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 본능이, 양심이 안다. 나만을 위해 쌓는 성의 끝에는 공허가 있다. 성을 다 쌓고 나면 찬란한 기쁨이 오는 게 아니라 허기진 공허가 온다.


500일 넘게 하루에 한 시간씩 쳐 온 피아노 연습. 요즘 나는 이 행위가 일종의 소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도달했다. 우선 이 연습 행위는 내 마음을 정화한다. 어릴 때부터 배운 준프로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어설픈 동작이지만, 죽을 때까지 연습해도 준프로도 되기 힘들겠지만, 피아노를 연습하는 그 순간에는 번잡한 일상이 다소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이 행위가 확실히 내 것이 되고 나면 나중에 요양원이나 공원에나 카페에서 누군가를 위로하는 피아노 소리를 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루에 한 시간씩 피아노를 꼭 쳐내야겠다는 생각은 날마다 흔들릴 수 있는 내 일상을 붙잡아 준다. 연습은 당연히 자주 무료하고 힘들다. 그러나 확실히 나의 육체와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느낌이 있다. 션의 달리기가 그런 느낌일까? 


큰 그림에서 나는 글과 음악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다가 죽겠노라 마음을 정했다. 이것이 현재로서 나의 소명이다. 영향력에 크기에 집착하면 안 된다. 신은 언제나 조용히 움직인다.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 역시 자의식 과잉의 사람이 아니라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을 본받고 싶다면, 내 삶의 도화지에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그림을 남기고 싶다면 그들의 지혜와 굳은 심지를 통해 배우면 된다.


질병에 시달리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해본 사람은 일상이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끊임없이 '다고다고', 탐욕의 밑이 뚫린 주머니를 채울 게 아니라 조용히 내가 왜 왔는지를 생각해 보자.


당신과 나의 삶에 '소명'이란 게 있지 않을까?




<참고 서적>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이수정, 이다혜 등)

하나님, 그래서 그러셨군요!(신애라)

줬으면 그만이지 -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김주완)

다시 새롭게, 지선아 사랑해(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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