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이란 단어만 들어도 왠지 싫다. 재수가 옴 타서 불행이 나에게 올까 싶다. 그러나 '지피지기(知彼知己)', 우리가 두려워하는 상대인 불행을 들여다보면 첫째 겸손해진다. 둘째 같은 종족인 인간에 대하여 측은지심을 가지게 된다. 이 두 가지만 하더라도 불행을 관찰하고 정리할 가치가 있다.
불행의 종류
<질병>
질병은 가장 흔한 불행이다. 병원에 가보면 누구라도 당장 느낄 수 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을. 그러니 의사가 고소득 직종 아니겠는가. 암이나 불치병은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흔히 쓰인다. 죽을 병이든, 만성적인 질병이든 질병은 완치되지 않는 이상 결국 죽을 때까지 우리에게 고통을 준다. 현대에는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상당히 많다. 우울증이 대표적이다.
<사고>
여러 사고가 있지만 교통사고가 가장 흔하다. 나도 졸음운전을 하다 차량이 전복되어 죽다 살아난 적이 있다. 교통사고로 누군가는 경상을 당하고, 누군가는 장애인이 되며, 누군가는 사망한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신은 없고 단지 운일까? 신이 정한 운명일까? 운명이라면 왜?
<사건(범죄)>
현대 사회는 특히 이 범죄가 활개를 친다. 범죄 피해자들이 특별히 죄가 많아서 피해를 당하는 건 결코 아니다. 폭력, 강간, 살인, 스토킹, 가스라이팅, 디지털 성범죄, 보이스피싱, 사이비 종교 등 범죄의 종류와 수법도 너무나 많고 교활하며, 그에 따른 피해자들의 고통 또한 어마어마하다.
<재난>
기후 변화로 인한 기상 이변이 대표적이다. 올 추석이 추석(秋夕)이 아니라 하석(夏夕)이라는 얘기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지금 어쩌면 에어컨 감옥에서 살고 있다. 물론 에어컨도 없이 폭염을 맞는 지구촌의 사람들에게는 이 기상 이변이 재난이자 지옥이다. 폭염, 폭우, 혹한... 단어부터 가혹하다.
<가족>
위에 열거한 불행들이 나에게 직접 미치는 것도 당연히 고통이지만, 가족에게 닥쳤을 때 나는 보호자 또는 동반자로서 고통을 받게 된다. 즉 내 몸뚱아리 하나 멀쩡하다고 해서 불행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불행의 확률
가난이 대물림되듯이 불행 또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신체가 절단되는 사고를 사무직이 당할 확률은 거의 없다. 생산 현장에서 기계를 다루는 현장직이 그런 불행을 많이 당한다.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거나 사망할 확률도 배달 라이더 종사가가 당연히 높다.
그러나 인생 전체로 봤을 때는 누구든 내일 당장 위에 열거한 불행에 휘말릴 수 있다. 예외는 없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어린이집, 학원, 학교에 보내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불특정한 누군가가 아이를 해하거나 어느 장소에서 사고를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집안에 가두고 생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이는 사회를 경험해야 하고, 학교를 다녀야 하고, 성인으로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행에 대하여 무모하게 덤비는 태도는 용기가 아니다. 그건 아둔함이다. 그것보다는 혜안을 가지고 침착해야 한다. 살아 있다면 크든 작든 불행을 피할 순 없다. 내가 아무리 정결하고 완벽해도 - 당연히 그럴 수도 없지만 - 세상은 어지럽고 나는 그 속에 섞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누군가의 시처럼 인생은 소풍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가혹하지만 원함과 상관없이 태어나 여러 재난과 고난 속에 허우적대는 것이 인생이다. 그나마 인간은 이기적이라 남의 불행에 대해 기본적으로 깊은 관심이 없고, 망각의 동물이라 금세 잊어버리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이기심과 망각이 없다면 아마 금세 미쳐 버릴 것이다. 날마다 나와 가족의 질병과 재난과 사고와 범죄 피해에 대해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면 하루하루가 지옥일 것이다.
인간은 선악을 떠나서 연약하므로 언제든지 불행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불행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조금 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다.
불행을 당하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그들의 심정을 헤아리며, 내가 현재 안온하다면 그것이 나의 인격이나 실력에 의한 것이 아님을 깨달아 겸손할 필요가 있다. 태풍이 집을 쓸어가려 한다면 태풍을 원망하기 전에 집이 날아가지 않기를 기도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전쟁통에 총알이 날아온다면 제발 그 총알이 나를 비켜가기를 기도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있겠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예방하거나 피할 수 있는 불행은 피하고, 불행을 당했을 때는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이다. 그만큼 개별의 인간은 더 거대한 세계와 세력(그것이 신이든, 자연이든, 인간의 권력 또는 범죄든) 앞에 보잘것없지만 살아 있는 한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둘 순 없다. 피할 건 피하고, 싸울 건 싸우며 불행과 동고동락하는 법과 마음가짐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삶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