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리뷰를 보고 찾아간 맛집인데 음식이 기대에 못 미친다. 게다가 불친절하기까지 하다. 속은 것이다. 음식 취향에 따른 호불호도 물론 있지만, 돈을 받고 쓴 가짜 리뷰가 이전엔 상당히 많았다. 광고 속 미모의 화장품 모델의 꿀피부를 보고 덜컥 구매한 고가의 화장품이 실제로는 별다른 효과가 없다면 그것도 속은 것이다. 성공한 듯 젠틀한 이미지의 남자가 모는 중형 차가 멋있어 보여서 무리해서 할부로 차를 샀다면 그 또한 속은 것이다. 그 차를 사면 나는 성공한 남자가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빚쟁이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생활 속에서, 사소하게, 합법적으로 우리는 기만을 당한다. 그러나 보다 광범위하고, 폭력적이고, 불법적이고, 잔혹한 기만도 얼마든지 너무나 많은 곳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영화 <마스터>에서 진 회장(이병헌 역)은 능수능란하게 수많은 회원을 속인다. 대한민국의 불법 대출광고·보이스피싱의 대명사인 김미영 팀장(가상 인물)의 실제 주인공은 전직 경찰관으로 밝혀졌다.(현재 필리핀 감옥에서 탈옥하여 도주 중) KBS 기사에 의하면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액은 2019년 한 해에만 6,700억 원가량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그 정체가 드러난 사이비 종교단체 JMS나 아가동산 뿐만 아니라 MBC <PD수첩>,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에 의해 보도된 이단 사이비의 실태는 실로 다양하고 추악하고 심각하다. 이단뿐만 아니라 기성 교회에서도 목사의 불륜, 성폭행, 성추행, 폭행, 헌금 횡령, 축재 등의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집단의 신도들은 수십 년간의 세월을 기만당해 왔지만, 정작 본인들은 자신이 기만당한 사실조차도 모르고 현재도 착취의 굴레 속에 살고 있다.
우리가 태어나서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기만당한 세월은 몇 년이나 될까? 개인사를 다 밝힐 수 없어 자세히 서술할 수 없지만 나는 스스로 돌아보니 50 평생 중 최소 10년은 넘는 것 같다. 아니 솔직히 한 20년은 되는 것 같다. 크고 작은 합법적이고 불법적인 기만, 인간관계 속에서의 기만, 자본주의에 의한 기만, 정권에 의한 기만, 매스컴에 의한 기만까지 다 합치면 말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간들이 (AI에 의해) 평생을 기만당하는 것이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사이비 종교의 신도들은 자신들의 신앙이 가짜임을 깨닫고 탈출하려 해도 이미 자신의 인생을 수십 년간 바쳤기 때문에 빠져나오기가 힘들고, 빠져나와도 사회에 적응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만큼 기만은 무서운 것이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기만당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의기양양한 사람이다. 혹시 우리도 이러고 있지 않을까? 스스로 면밀히 돌아봐야 할 일이다. 세상엔 너무나 교묘한 속임수가 많고, 우리는 그렇게 똑똑하지도 잘나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망자 14명, 부상자 약 6,300명을 발생시킨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 사건. 주범인 옴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만행에 공대 출신 엘리트들이 이용당한 것만 봐도 기만의 피해는 똑똑함, 고학력과 무관하다.
데이팅 앱 ‘틴더’를 통해 유럽 전역 여성들로부터 119억 원을 뜯어낸 전문사기꾼(Swindler) ‘사이먼 레비예프(Simon Leviev)’가 주인공인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데이트 앱 사기: 당신을 노린다'를 보면 피해자들은 아직도 대출 빚을 갚고 있다. 그녀들은 상대의 번듯한 외모와 재력에 속아 넘어갔다.
외롭고 고단한 우리네 삶에서 기만 생산자들에게 우리는 잠재적인 사냥감이다. 우리는 뭔가를 의지하고, 즐거움을 찾고, 관계를 형성하기 원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속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껏 무엇에 대해 얼마나 속았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내가 무엇에 취약한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혀 속지 않고 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일일이, 면밀히 신경 쓰며 살기에는 사는 게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 가는 대로 별생각 없이 살기에는 짧은 인생의 귀한 시간이 너무 아깝다. 새끼를 죽이고 남의 둥지를 차지하는 뻐꾸기와, 그 뻐꾸기 새끼가 자기보다 덩치가 큰데도 제 새끼인 줄 알고 열심히 먹이를 날라다 주는 이름 모를 새의 어미를 보라. 기가 차지 않는가. 우리 인생이 그리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뛰어나진 못해도 분별은 할 줄 알아야 한다. 뭐가 진짜이고 뭐가 가짜인지 말이다.
그렇다면 분별의 눈, 혜안은 어디서 오는가?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오은영 박사는 저서 「화해」에서 자녀를 잘 양육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조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자식을 키우는 게 아니라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기만당하지 않기 위해서도 역시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라도 다시 한번 돌아보고 공부를 하면서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 그것은 큰 병을 방지하기 위한 평상시의 운동 같은 것이다.
영리하진 않아도 어리석진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