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잡아봐야 먹는 것도 아니고(방생), 항상 고기가 잡힌다는 보장도 없는 붕어낚시. 아이들이 어렸던 내 젊은 시절, 한때 빠졌던 취미다. 하지만 낚시는 전혀 생산적인 활동이 아닌 데다가 낚시에 빠져들수록 폐인이 되어가는 것 같아 - 고기를 잡기 위해 밤을 새우고(추위와 더위로 인해 고생하고, 야식으로 건강을 해치고, 잠을 못 자서 체력이 저하됨), 아주 먼 저수지에 기름값 들여 찾아다니고(시간과 돈이 날아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과가 없을 때는 허무함과 허탈함이 밀려왔다. - 낚시라는 취미를 그만둔 지 한참이 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낚시가 어린 시절 따뜻한 추억이라 큰아들이 최근 1박 2일 가족 낚시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는 바람에 아이들에게 물고기를 선사할 목적으로 본의 아니게 저수지를 탐방하고 테스트 낚시를 하다 보니 어느새 또 낚시에 빠져 버렸다. 지구 온난화와 함께 짧아진 가을 날씨를 즐기려는 욕심도 한몫했고.
이런 여러 비생산적이고 쉽지 않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여전하고 꾸준하게 낚시에 진심인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은 꽝 치는 것(조과가 한 마리도 없는 출조)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그러거나 말거나 꾸준히 낚시를 다니는데, 그렇기 때문에 또 월척이나 폭발적인 조과 또한 이분들에게 온다. 이분들은 그야말로 '고수'다. 유튜브를 살펴보니 요즘은 여성 조사님들도 많고, 구독자가 10만 이상으로 낚시라는 취미로 먹고사는 유튜버들도 제법 되는 것 같다.
엊그제 나는 운이 좋아 29cm 짜리 붕어를 잡았다. 월척에 1cm 모자라지만 내 인생 최대어다. ㅎㅎ 이 붕어를 잡기 위해 2시간이 넘게 입질 한 번 없는 상황을 참고 기다리는 등 이런저런 작은 노력들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건 역시 운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붕어를 잡고 나서 전반적인 내 행동들이 무척 의기양양해졌다는 것이다. 혈색이 밝아지고, 밥도 맛있게 먹고, 피로도 사라졌다. 낚시에 자신감이 생기고 더 나아가 삶에 용기가 생겼다. 평상시에는 자본주의의 소시민이자 월급의 노예로서 항상 마음 한켠이 의기소침한 나다. 하지만 큰 물고기를 잡고 나니 나도 그렇게 운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 월척에 가까운 행운들이 내 삶에도 올 수 있다는 생각이 전혀 과학적인 근거 없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용기는 의지로 만들거나 굳건히 하는 게 아닌지도 모르겠다. 일이 잘 풀리면 용기가 나고 안 풀리면 의기소침해진다. 매일 애기 붕어만 잡히는데, 유튜브에는 대물을 척척 잡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역시 나는 실력이 없어' 하며 의기소침해진다. 사업하는 친구가 업종을 추가해 처음 출시한 제품이 대박 나는 걸 보면 사업하는 아니, 사업까지 갈 것도 없이 장사하는 실력이 없는 나는 의기소침해진다. 일단 돈을 못 벌면 글 좀 쓰고, 음악 한다고 설레발 쳐봐야 취미 아닌 취미가 되어버려 어디 가서 명함 내밀기도 쑥스럽다.
하지만 신춘문예에 당선된다든지, 곡을 판다든지, 발표한 앨범이 대박 아닌 중박만 쳐도 나의 용기는 의기충천해질 것이다. 용기를 장착하고 행동에 나서는 게 아니라 행동을 하다가 운이 좋아 결실을 맺게 되면 용기가 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허약하고 간사한 본성에 비춰 봤을 때는 이 순서가 맞는 듯하다.
그러니 용기를 가지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낚시 고수들처럼 '꽝'을 각오하고 그냥, 계속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이 먼저다. 그러다 보면 우연찮게, 운 좋게 결실을 맺게 될 것이고 그러면 용기가 생길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루고자 하는 일도 마찬가지고 삶도 마찬가지다. 삶의 용기를 어떻게 가질 것인가? 자기 계발서를 부지런히 읽고 각오와 결심을 굳히면 될까? 아니, 내 생각에 그 방법은 별로다. 위대하고 대단한 위인들과 비교해 자꾸 자책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좋은 방법은 그냥 사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살아나가다 보면 삶으로부터, 환경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내면으로부터 용기가 주어진다. 우울한 사람이 우울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책상머리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기보다는 일단 나가서 걷고, 사람들을 만나고, 해와 달과 별과 산과 바다를 보는 게 더 낫듯이 말이다.
삶은 결국 경험이고, 기억이고, 추억이다. 죽을 때 손에 쥐고 가져갈 수 있는,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용기가 없다고 소심해 하거나 자책하지 말고 일단 경험해 보자. 첫 소설을 쓰기 위해 차인표에게 신애라가 한 충고에 따라 나도 일단 소설 100권을 읽어보기로 했다. 소설 100권이라는 경험이 곧 '첫 소설 집필'이라는 용기가 되지 않을까.
꽝을 치든, 대박을 치든 일단 물가로 나가는 조사는 용기가 있다. 용기가 있어서 물가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물가에 나가면 용기가 생기고, 그것으로 일단 합격이다. 잘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