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중(喪中) 이야기
- 떠나보내는 자(子)

퍼플>>>SO-SO한 삶의 이야기 1

by 해 뜰 날

유난히 꽃샘추위가 길었던 2019년 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1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병원의 말대로 허망하게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작년 가을 대장암 판정을 받고 아버지를 뵈었을 때 생각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이셔서 왠지 안심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본인을 제외하고 모두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항상 약을 달고 사는 엄마보다 아버지가 더 오래 사실 것 같다고 오빠가 걱정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누가 입에 담진 않았지만 순리에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시아버님과 10년 나이 차이의 시어머님도 항상 그런 얘기를 입에 달고 사셨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싶기는 했지만 누가 자신의 죽음에 냉정하게 평정심을 지킬 수 있을까?


통영에는 큰 병원이 없어 창원으로 엄마와 아버지가 함께 병원에 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빼고는 크게 변한 것이 없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고 나는 또 내 삶에 타인처럼 들어와 있었다. 100세 시대에 이제 80을 조금 넘기신 것이 이르긴 하지만, 특별히 취미 생활이 없던 아버지가 TV로 하루를 보내는 20년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힘들어서 아버지 병원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통영에 내려갈 때만 해도 힘에 부쳐하시던 엄마가 수발이 힘드셨나 보다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남편과 딸에게 "아들이랑 갔다 올게", "넌 공부하고 있어!"라며 단출하게 떠난 것도 '마지막'이 될 것. 이란 전제는 아예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병원 구석에 누워 계시던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했을 때야 비로소 죽음이 목전에 다다랐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평생 보아온 아버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생경한 모습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사람이 근육과 살이 모두 빠져나간 자리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 싶게 거죽만 힘겹게 남아있는 모습은 '사람의 마지막은 이런 모습이구나'를 느끼게 했다. 아버지는 토하는 것도 싫고 가슴이 답답해서 밥을 먹을 수 없다고 하셨다. 드문드문 이어지는 말이 무슨 말인지 겨우 가늠할 수 있을 뿐 몸을 옥좨오는 통증이 삶의 의지마저 상실해 가고 있는 듯했고 오직 또렷한 정신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나의 임종이었다.

사실 생각하면 사이좋은 부녀 사이도 아니었는데 자식 간의 인연이 무엇인지 마음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나 다정 다감하신 작은 아버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나에게 다가 올 평범한 자연의 진리를 얼마나 더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람이 죽었는데 호상이 어딨냐"라고 울부짖던 드라마의 대사는-어린 나이에도 너무 인상적이었는지 기억이 생생한데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30년이 지난 지금, 상갓집에서 '아이고 호상이다'란 인사말이 과연 적당한 말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편하게 가세요"라는 별날 것 없는 대사를 그 배우가 얼버무렸다면 그 드라마는 이미 내 기억에서 오래전에 사라지지 않았을까?

사람은 모두 죽는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죽음을, 나의 죽음을 얼마나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큰 숙제로 남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