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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데어 Jul 14. 2020

낯익은 시간

도종환,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오후 1시, 점심을 먹은 둘째 아이가 머리를 긁적인다. 졸리다는 신호다.


"이제 우리 책 읽으러 갈까?"


넌지시 물어봤더니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계속 놀겠다는 의사표현을 한다.


"이제 책 읽으러 가자~"  


 은 척, 한 번 더 이야기하니,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가지고 엄마를 따라온다.


"이거 잡고..."


하며 자기 키보다 조금 작은 자동차를 낑낑대며 침대 위에 올려놓는다. 장난감을 포기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쏟아지는 잠을 외면할 수도 없었나 보다. 침대에 누워 아이와 책 한 권을 읽은 후, 아이를 꼭 안고, "옛날 옛날, 아주 먼~옛날" 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조용히 소곤대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는 어느새 천사처럼 잠이 든다.


매일 반복되는 오후 일과이다. 그렇다. 외출을 하지 않는 한, 거의 '매일', '반복'되는 나와 아이와의 일과이다.


아이의 예측 가능한 하루 일과

육아를 하면서 중요시하는 것 중 하나가 아이들의 예측 가능한 하루 일과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아이들의 하루하루는 새로운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세상 밖에 나오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낯선 세상을 경험한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공기의 흐름과 밝음의 깊이부터 시작해서 온갖 소리, 촉감 등을 아이들은 오감, 아니 육감으로 세상의 모든 낯선 것을 받아낸다. 낯선 세상 속에 있는 아이들에게  낯설지 않은 루틴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게 아이들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잘 따라와 준 덕분에, 첫째도 둘째도 아침에 눈을 뜨고부터, 잠들기까지 예측 가능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엄마의 하루 육아도 좀 더 쉬워졌다. 시간이 엉키지 않고 물 흐르듯 흘러가는 느낌이랄까. 


내 삶의 불확실성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불확실성 앞에선 누구든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앞으로 어떤 시간이 전개될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 무엇을 하게 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현실 앞에서 너그러움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졸업 후 나의 미래가 불안했고, 누군가를 만나 데이트를 하더라도 그 사람과의 불확실한 관계로 초조하고 불안했다.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한 후에도 그 불안은 끝나지 않았다. 직장에선 철저히 내 손을 벗어난 '나'와 '나의 시간'이었다. 어떤 상사 또는 동료를 만나 어떤 프로젝트를 맡아하게 될지는 나의 의지 밖의 일이었다. 업무를 보고 있으면 노트북 한쪽 빼꼼 창이 뜬다. "잠깐 와보세요" 하는 상사의 무미건조한 메시지다. 친구의 카톡 메시지처럼 눈웃음이나, 물결이 있으면 좋으련만, 이건 전혀 예측 불가다.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교무실에 불려 가는 학생처럼 부문장의 자리로 걸어간다. 그 짧은 시간에 머릿속은 복잡 복잡하다. 보고되었던 일들과 미처 보고하지 못한 일들, 그리고 예측 가능한 사고 거리까지... 전업맘이 된 아직도,  그 순간을 다시는 겪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떠올릴 때마다 얼마나 다행인지 생각한다.


결혼은 또 어떤가. 삼십 년 넘는 세월 동안 견고하게 만들어진 배우자의 '우주'를 내가 어떻게 예측한단 말인가. 결혼과 동시에 줄줄이 고구마처럼 따라오는 시댁, 출산, 육아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나'의 자아실현의 문제까지, 내 삶의 불확실성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나만의 루틴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 삶에 예측 가능한 루틴이 절실히 필요했다. 바쁘고 예측 불가능한 매일매일이 낯선 하루 중에서 내가 어떻게든 사수하고 싶은 '루틴' 중 하나는 혼자만의 시간이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두 시간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커피와 달달한 간식 그리고 책과 함께 나만의 의식을 치른다. 물론  다른 이벤트로 이 시간을 못 지킬 때도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런 시간 없이 며칠이 지나고 나면, 마음의 체력이 고갈되어 조그만 일에도 마음이 주저앉고 만다. 그래서 이 시간은 꼭 필요하다. 혼자만의 시간, 나의 마음을 채우는 시간 말이다.


그러나 그런 삶은 소진하는 삶입니다. 있는 걸 모두 다 써버리는 삶입니다. 바닥까지 긁어내 탕진하는 삶입니다. 정신도 에너지도 아이디어도 체력도 있는 대로 다 써버리고 지쳐 나가떨어지는 삶입니다. 채우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육체적 에너지와 정신적인 힘이 고이도록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채워지기도 전에 닥닥 긁어 써버리는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도종환,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단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한다는 진리이다."라고 니체가 말했던가. 매일매일 변하는 나의 삶은 예측할 수 없다. 하물며 자기만의 우주를 안고 살아가는 다른 사람의 삶까지 예측하는 것은 오죽할까? 하염없이 파도를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다음에 어떤 모양의 파도가 올지 예측할 순 없다. 모든 일들이 나의 계획대로, 생각대로 될 순 없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마음 때문에, 사람 때문에, 그리고 일 때문에 지쳐있다면 만의 예측 가능한 루틴의 시간을 챙겨보자. 불확실성 속에 예민해진 나의 마음을 토닥토닥할 수 있는 닟익은 위로의 시간이 될 것이다. 


오늘도 아이는 낮잠을 잔다. 그리고 나는 커피를 내린다. 지금 나는 행복하다. 폭풍 전야의 고요라 할 지라도, 지금의 시간이 있어 나는 좋다. 



사진 출처 > Photo by Taisiia Shestopal , Shawn Coonfar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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