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적으로 찬양을 부르는데 마음이 한편이 뭉클해진다. 첫째가 아기 때부터 둘째까지 자장가로 불러주던 노래였는데.. 오늘은 할머니가 부르시는 찬양이 오버랩되는 듯해 갑자기 눈가가 촉촉해졌다.
언니, 오늘 아이를 유치원 데려다 주려 나가는데, 현관에서 아이가 엄마를 안고 내가 엄마를 안으니 엄마 눈시울이 벌게지셨어
오늘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유골을 다시 꺼내어 화장하는 날이다. 묘지로 남겨두면 후에 아이들에게 짐이 되기 때문에 당신들 세대에 화장을 하자는 엄마와 이모들의 결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이십 년이 되어간다.
이북이 고향이신 할머니는 명절 때마다 만두를 직접 빚으셨다. 커다란 들통 한 가득 고기며 김치, 야채들을 일일이 다져 넣고 족히 스무 명이 넘을 온 가족들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만두를 빚으셨다. 속이 꽉 찬 주먹만 한 만두는 정말 맛있었다. 또 다른 들통엔 손자, 손녀들이 좋아하는 콜라 맛이 나는 LA갈비가 한가득 재워져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면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 냉장고를 채워줄 김장김치를 담그기 위해 김장독 묻을 자리부터 살피셨다. 직장 다니는 이모를 대신해 손녀 둘을 직접 키우셨고, 미국에 있는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노년의 불편한 몸을 이끌고 혼자 비행기에 올라, 아들의 죽음을 수습하셨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돌아보는 할머니의 삶은 결코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6.25 동란 때 북한 황해도에서 중국을 통해 배를 타고 부산으로 넘어오신 할머니는 콩나물 공장을 운영하시며 꽤 넉넉하게 사셨다고 한다. 그때 집에서 일한 하인들이 대여섯 명 정도였다고 하니.. 하지만 사기를 당해 사업을 접고 또다시 팍팍한 살림을 일구시며 알뜰살뜰 1남 5녀를 키워내셨다. 가지 많은 나무가 바람 잘 날 없다고, 시집, 장가보낸 아들, 딸들은 사연도 많았겠지. 그때마다 씩씩하게 딸들을, 아들을 그리고 그 자녀의 자식들까지 돌보며 살아오셨다.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미국에 간 지 얼마 안 되어 대장암 말기라는 소식을 들으신다. 당장 달려갈 수 없는 할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할머니는 그때 잠시 우리 집에 살고 계셨는데, 새벽이면 할머니의 기도 소리에 잠이 깼다. 내 방은 베란다와 연이어진 방이었는데, 새벽에 졸음이 오면 기도를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일부러 겨울 냉기가 가득 찬 베란다로 나와 기도를 하시던 할머니의 기도 소리였다. 그리고 부르시던 찬송가, 그중에는 바로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이 있었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기도, 찬송 소리를 들으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자꾸 찬송가 가사를 잊어버리신다며 큰 종이에 찬송가 가사를 써달라고 부탁하신 적도 있었다. 지금까지 할머니를 지켜왔던 신앙을 붙드는 것, 그것이 직접 돌볼 수 없는 먼 타지의 아들을 향한 할머니의 사랑이셨다. 그리고 삼촌의 죽음을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 할머니는 노년의 몸을 이끌고 혼자 비행기에 오르셨다. 각자 가정을 이루고, 돌보아야 할 아이들이 있는 이모들은 함께 갈 수 없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막내아들을 보내셨다.
장례를 두 번 치르는 느낌이야
할아버지, 할머니 유골을 화장하고 돌아오신 엄마가 말씀하신다. 이모들과 눈물짓다가 또 누군가의 한마디에 한참 웃었다가 또다시 눈물을 찍고, 웃고 하셨을 엄마와 이모들이 눈에 선하다. 참 삶이 아이러니하구나. 그렇게 삶과 죽음을 함께 안고 사는 것, 그것이 삶인가. 결코 지울수 없는 슬픔을 껴안고 웃으며 살아내는 삶.
엄마 편에 이모들과 식사비용이든, 꽃 비용이든 사용하시라고 언니, 동생과 함께 작은 돈을 모아 드렸다.
"거절 마시고 받아주세요. 받은 사랑에 저희의 사랑을 다시 보내봅니다"
라는 언니의 카톡 메시지와 함께. 할머니의 자식들을 향한 그 넉넉한 사랑은 다시 할머니가 된 엄마의 손자, 손녀에게로 흘러간다. 아이들은 또 먼 훗날 할머니를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그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나에게 흘러왔고, 지금도 아이들에게 흘러가고 있다.
사람이 향기로 기억되는 건
그리움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눈빛으로 기억되는 건
하지 못 한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어 바람이 불면
마치 그대의 목소리 같아
그냥 한번 하늘을 보네 세월이란 파도에 휩쓸려
먼지처럼 사라져 갔지만 아직도 내 눈 속엔 있네 사람이 눈물로 기억되는 건
그 사랑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림자로 기억되는 건
주지 못한 것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어 바람이 불면
마치 그대의 목소리 같아 그냥 한 번 하늘을 보네
하늘이 내게 허락해줘서
잠시 그대를 볼 수 있다면 하지 못 한 말해주고 싶소 그대를 한 번도 잊고 산적 없다고 그대가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하겠소 (박경태, 기억의 향기)
지금도 어디선가 맡을 수 있을 것 같은 할머니의 그 푹푹한 향기.. 그리움은 향기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