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정신없이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드디어 맞은 고요 속, 나도 모르게 찬양이 튀어나왔다. 첫째, 둘째 아이의 자장가로 내가 불러주었던 찬양, 직장에 출근하는 딸을 대신해 칭얼대는 손녀를 업고 엄마가 불러주셨던 찬양이다. 그리고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온기조차 없는 이른 새벽, 먼 이국 땅에서 '죽음' 을 맞이하고 있는 막내아들을 위해 기도하려 차가운 베란다로 나오신 할머니가 부르시던 찬양이다. 오늘 아침 내내 꾹꾹 눌러두었던 먹먹함이 찬양과 함께 조금씩 새어나온다.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00랑 엄마를 앉아드렸어. 엄마 눈시울이 벌게지시더라."
오늘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유골을 다시 꺼내 화장하는 날이다. 묘지로 남겨두면 후에 아이들에게 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당신들 세대에 묘지를 없애고 화장을 하자는 엄마와 이모들의 결정이었다. 이모들은 때때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모여 예배도 드리고, '아빠', '엄마'와 함께했던 서로의 추억을 꺼내놓으셨다.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만큼이나, 자식들을 향한 사랑도 컸기에 엄마와 이모들은 오랜 고민 끝에 파묘를 결정하셨다.
6.25 동란 때 북한 황해도에서 중국을 통해 배를 타고 부산으로 넘어오신 할아버지, 할머니는 콩나물 공장을 운영하시며 꽤 넉넉하게 살림을 일구셨다. 하지만 혼란하고 먹고살기 팍팍했던 그 시절의 뻔한 스토리처럼, 할아버도 사기를 당하셨다. 그 와중에도 알뜰살뜰 1남 5녀를 키워내 시집, 장가를 보내셨지만, 비오면 비오는대로, 해가 뜨면 해 뜨는 대로,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이 그칠 날이 없었다. 한숨과 기도로 두 분의 새벽은 늘 깨어있었고, 자녀들의 진 자리를 마른자리로 옮겨주시느라 두 분의 손은 늘 바빴다.
할머니는 명절 때마다 만두를 직접 빚으셨다. 할머니가 커다란 들통 한 가득 고기며 김치, 야채들을 일일이 다져 넣는 동안, 할아버지는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넓게 밀어내고, 밥그릇으로 쿡쿡 찍어 둥그런 만두피를 만드셨다. 두 분의 준비가 끝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손 보탤만한 가족들이 모두 모여 만두를 빚었다. 족히 스무 명이 넘을 식솔들이 모여 한 끼 먹고도 남은 넉넉한 만두들은 당신의 딸들 집 냉동실을 꽉꽉 채웠다. 그리고 겨우내 딸들은 자녀들에게 따뜻한 만두국을 끓여주었다. 따뜻하고 든든한 식탁이었다. 겨울이 다가오면 할아버지는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의 냉장고를 채워줄 김장김치가 담긴 김장독 묻을 자리부터 살피셨다. 직장 다니는 딸을 대신에 손녀들을 키우시고, 먹고 살기 바빠 시간내기 힘든 사위들을 대신해 딸들의 집 구석구석을 직접 살피셨다.
당신의 자녀들이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자녀의 자녀들이 장성하여 꿈을 향해 나아갈 즈음, 두 분은 인생의 마지막을 마주하고 계셨다. 병원에 다녀오실 때마다 약국 봉지에는 한가득 약이 들어 있었고, 거동이 불편하셔서 외출하는 시간보다, 집안에 계시는 시간들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할머니는 오랜 인생의 배우자를 떠나 보내셨다. 묵직했던 할머니의 삶처럼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는 할머니의 모습은 시끄럽지도, 요란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몇 년 후, 할머니는 하나 밖에 없는 막내 아들의 죽음을 마주하셨다. 할마니는 먼 타국 땅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짐을 꾸리셨다. 이국 땅에 있는 손주들을 위한 간식들,옷가지들과 함께 슬픔도 꾸역꾸역 우겨넣으셨으리라. 그리고 비행을 앞 둔 며칠 전부터 할머니는 새벽이면 베란다로 나와 기도를 하셨다. 이른 새벽, 졸음이 오면 기도를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일부러 겨울 냉기로 가득찬 베란다로 나오셨다. 베란다와 연이어진 방에서 잠을 자던 나는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할머니의 찬송 소리에 이불을 뒤짚어썼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그 찬양이 지금까지의 굴곡 많은 할머니의 삶을 지켜왔던 신앙이었고, 만질 수 없는 당신 아들을 향한 할머니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할머니는 각자의 가정을 돌보아야만 하는 이모들의 걱정과 슬픔 가득한 배웅을 받으며 홀로 비행기에 오르셨다. 걷는 것도 힘들어하시던 할머니는 13시간을 훌쩍 날아가, 막내 아들의 마지막을 수습하셨다.
" 장례를 두 번 치르는 느낌이야.."
할아버지, 할머니 유골을 화장하고 돌아오신 엄마가 말씀하신다. 파헤쳐지는 무덤과 남아있는 앙상한 유골들을 보며 눈물 흘리다가, 누군가의 한마디에 웃었을 엄마와 이모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삶과 죽음을 모두 껴안고 살아내는 삶, 결코 지워 낼 수 없는 사랑과 슬픔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하는 삶. 삶은 참 아이러니했다.
엄마 편에 이모들과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언니, 동생과 함께 작은 돈을 모아 보내드렸다. '거절 마시고 받아주세요. 받은 사랑에 저희의 사랑을 다시 담아 보냅니다' 라는 작은 메시지와 함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자식들을 향한 그 넉넉한 사랑은 당신의 자녀의 아이들에게 흘러왔다. 내가 그랬듯이, 내 아이들도 자라 할아버지, 할머니를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그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나에게 흘러왔고, 지금도 아이들에게 흘러가고 있다.
사람이 향기로 기억되는 건
그리움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눈빛으로 기억되는 건
하지 못 한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어 바람이 불면
마치 그대의 목소리 같아
그냥 한번 하늘을 보네
세월이란 파도에 휩쓸려
먼지처럼 사라져 갔지만
아직도 내 눈 속엔 있네
사람이 눈물로 기억되는 건
그 사랑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림자로 기억되는 건
주지 못한 것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어 바람이 불면
마치 그대의 목소리 같아
그냥 한 번 하늘을 보네
하늘이 내게 허락해줘서
잠시 그대를 볼 수 있다면
하지 못 한 말해주고 싶소
그대를 한 번도 잊고 산적 없다고
그대가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하겠소
(박경태, 기억의 향기)
사람이 눈물로 기억되는 건, 그 사랑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맡을 수 있을 것 같은 할머니의 그 푹푹한 향기.. 그리움은 향기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