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이제 정말 한계가 온 것 같아"
친구의 하소연이었다. 아침부터 아이들이 일어날 때부터 잠들 때까지 독박 육아를 하며, 틈틈이 일도 하는 씩씩하고 야무진 엄마였다. 아이들에게는 아침에 출근하는 아빠에게 건네는 "내일 아침 만나자"는 인사가 자연스러웠다. 하루 종일 두 아이를 힘겹게 돌보고 잠자리에 든 후에도 꽤 몇 시간이 지나서야 아빠는 퇴근을 했다. 아이 엄마의 말처럼 '모든 일이 다 정리된 후 평화의 시간'에 신랑은 퇴근을 했다. 하지만 신랑의 일에 대한 열정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에게 하소연하지도 못했다. 그러다 한계에 온 것 같다고 했다. 친구는 지쳐 보였다. 몸도 마음도...
착한 엄마였다. 언제나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고,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신랑을 위해 힘든 내색도 하지 않았다. 신랑에게 도와달라 하지 못했다. 자기 때문에 신랑이 '희생'하는 게 싫다 했다. 오롯이 아이도, 집안 일도, 신랑의 스트레스까지 모두 안아주려는 그녀의 마음이 참 착했다.
"너는... 괜찮니?"
안 괜찮은 것 같단다. 그녀의 고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은 비어지는 느낌일까. 다른 사람이 힘들 바에야 차라리 내가 힘든 게 편하다는 착한 엄마였다. 하지만, 희생만 하는 착한 엄마는 존재할 수 없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잠시' 존재할 수 있어도, 그 존재가 계속 유지되긴 어렵다.
나 역시 한 때 그랬었다. 워킹맘을 정리하고 전업 주부로 용감하게(!) 나섰을 때, 육아와 집안일은 오롯이 내 몫이라 생각했다. 밖에서 일하는 신랑에게 집안일을 부탁하는 건 미안한 일이었다. 어느 날, 출근하는 신랑의 손에 '음식물 쓰레기'를 들려 보냈다. 출근길에 지저분한 부탁을 한 것 같아 "미안하다"라고 했더니, 신랑이 말했다. 당신과 나 둘 중 하나는 해야 하는 건데, 뭐가 미안하냐고... 듣고 보니 그랬다. 육아와 집안일은 '당연히' 전업주부만의 몫은 아닌데, 마치 당신의 일이 아닌 것을 부탁하는 것 마냥 미안해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였다.
육아와 집안일의 무게를 혼자서 온전히 지고 있으면, 엄마는 지칠 수밖에 없다. 마치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 위로 밀어 올려놓으면 다시 굴러 떨어지는 바위와 사투를 벌이는 시시포스처럼, 전업맘들도 무의미하게 반복되고 끝없는 일들을 매일같이 해내고 있다. 이건 '행복' 보다는 '형벌'에 가깝다.
사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나의 배우자도 자신만의 바위를 끊임없이 끌어올리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내가 일일이 알 수도 없고, 나눌 수도 없는 자신만의 바위를 어깨에 메고 현관문을 나선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면 그제야 불빛 앞 하루살이처럼 TV 앞에 자리를 잡는다. 의미도 없는 채널을 몇 번 돌린 후에야 잠을 청한다. 그리고 또다시 아침 알람에 잠을 깬다.
반복되는 일상의 '형벌'이 '행복'이 되려면, 우리에겐 '동지애'가 필요하다. 당신의 애씀을 알고 있다는 작은 몸짓, 작은 '감사'의 표현이면 각자의 바위를 짊어짐 아내와 남편은 힘을 얻을 수 있다. 지금 내가 지고 있는 짐이,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있는 짐이라는 동지애만으로도 어깨는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그렇게 함께 견디는 시간이 쌓이고 쌓이면, 힘겹게 밀어 올리던 커다란 바위는 그저 의미 없이 굴러 떨어지는 바위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힘겹게 밀어 올리던 시간은 아이들과 우리의 성장 시간이 되고, 다시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시간은 절망이 아닌, 함께 휴식을 누리는 시간이 된다.
우리는 아내에게, 남편에게 '가정'이라는 한 배에 탄 '동지애'를 요구해야 한다. 서로의 '희생'이 아닌 '참여'를 요청해야 한다. 배에 물이 들어오면 선장이건, 선원이건, 요리사이건 물을 퍼내야 한다. 서로의 SOS에 외면하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다. 가족 안에서 서로의 존재에 감사해하며, 서로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된 사람들, 이들의 모임이 바로 '진짜 가족'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무 많은 손들이 있고
나는 문득 나의 손이 둘로 나뉘는 순간을 기억한다
내려오는 투명 가위의 순간을
깨어나는 발자국들
발자국 속에 무엇이 있는가
무엇이 발자국에 맞서고 있는가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이 있고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육체가 우리에게서 떠나간다.
육체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 돌아다니는 단추들
단추의 숱한 구멍들 속으로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이수명,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시 중에서)
주룩주룩 오늘처럼 비가 오던 날, 우리는 한 때 한 우산 아래 있었다. 한쪽 어깨가 흠뻑 젖어도 '함께'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았던가. 한 때의 연인과 '한 지붕'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는 남편과 아내들이여, 오늘 그때의 그 마음을 다시 꺼내보자.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이 있지만, 함께라면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