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0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잔소리 좀 그만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by 하이데어 Mar 10. 2025
아래로

"엄마, 잔소리 좀 그만해"


 아침 등교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채근질 하는 내게, 첫째 아이가 툭 내뱉는다. 잔소리? 순간 바쁘게 돌아가던 나의 세상이 멈췄다. 이게 잔소리라고? 일단 아이가 '잔소리'라 했으니, '더 이상 잔소리는 하지 않을 것이며, 나가는 시간에 잘 맞춰 나가라'는 딱 한마디만 전했다. 그리고 입을 닫았다. 아, 화를 낸 건 아니다. 아이들 등교를 돕는다고 던진 말들이 '잔소리'였는지 나 역시 순간 혼란스러워 잠시 멈췄을 뿐이다.


 아이들은 차려놓은 밥을 다 먹고, 후식 사과까지 다 챙겨 먹은 후 시간에 맞춰, (엄밀히 말하면 2분이나 늦게!!) 현관을 나섰다. 여느 때처럼 아이들을 꼭 안고 사랑한다 말했지만, 여느 때와 달리 집구석구석에는 아이들에게 쏟아 붙은 잔소리의 잔해들이 흩어져있었다. 


 새 학기부터 '지각하는 아이'라는 인상을 남기면 안 되니 늦지 않게 서둘러라, 아침 독서 시간에 읽을 책을 비롯한 준비물들은 한 번 더 챙겨봐라, 엄마는 사과 4쪽까지 포함한 영양을 생각한 아침 식사를 준비했으니, 사과 4개는 꼭 다 먹고 가라, 방과 후 연락할 일이 있을 수 있으니 핸드폰은 잊지 말고 챙겨가라, 5분만 더 일찍 일어나면 아침 시간이 여유로워 질 테니 다음엔 깨울 때 바로 일어나라, 아침은 추우니 외투는 너무 얇지 않은 옷으로 골라라, 학교 가는 길 천천히 가지 말고 서둘러 가라.....


 아이들에게 쏟아낸 말들을 기억을 더듬어 적어본다.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본다 했지만, 사실 뻔하다. 매일 아침마다 해왔던 소리니까. 써놓고 보니 다시 읽을 재미도 없고, 이 걸 매일 해왔으니 잔소리 맞다. 하지만, 맞는 말 아닌가? 새 학기 선생님께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면 지각하지 말아야 하고, 준비물도 빼먹으면 안 된다. 아침에 먹는 사과는 황금사과라는데, 사과 4쪽 - 최소한의 양은 챙겨 먹어야 하지 않은가? 핸드폰을 놓고라도 가면 아이와 내가 엇갈리는 상황에 나는 아이를 어떻게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어느 글을 쓸 때보다 타자가 빨라지고, 이렇게 강한 영감에 휩싸이는 걸 보니 할 말이 많긴 한가 보다. 이걸 읽고 있는 분들도 이렇게 생각하겠지. 잔소리 맞네....


 뜯어보면 다 이유 있고, 필요한 말이지만(끙....), 인정한다. 잔소리 맞다. 잔소리의 뜻은 "필요 없이 듣기 싫게 늘어놓는 말"이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 , 수신자의 철저한 주관적 판단으로 필요 없다고 느끼고, 싫으면 그게 잔소리다.  발신자의 의중은 중요하지 않다. 일단 '잔소리'로 접수가 되면, 듣기 싫어진다. 잔'소리'를 듣는 것도 싫지만, 그 말을 듣기도, 즉 그 말대로 하기는 더 싫다. 아니, 오히려 반항심을 부추겨 역효과가 생길지도  모른다. 잔소리를 줄여야 한다.


 그러려면 잔소리를 하는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아야 한다. 잔소리의 저 밑바닥에는 '불안'이 있다. 아이가 늦을까 봐, 영양이 부족할까 봐, 다른 사람에게 밉보일까 봐 등등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에 아이가 닿지 못할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끊임없이 잔소리를 만들어냈다. 재미있게도 '~할까 봐'를 영어로 바꾸면 'afraid of'이다. 말 그대로 '무서워서'이다. (맞다. 지난번 글에서도 반성했지만,  난 여전히 또다시 아이들의 이상적 모습에 선을 그어두고, 그 선을 넘을까 불안해하고 있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불안에서 기인한 잔소리니, 입 꾹 닫고 아이의 지각과 낙인, 영양실조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아침 등교를 준비하는 시간 동안 나의 불안은 이렇게나 컸다. 낙인, 영양실조라니...)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나의 불안을 아이들에게 전이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지각하면 혼나면 된다. 아침밥을 제대로 먹으면 배가 고프면 된다. 준비물도 마찬가지. 아이들  스스로 챙길 있도록 거리를 두어야겠다. 몸으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만의 기준을 쌓을 기회를 빼앗아가지 말아야 한다.  


또한 미리 아이들이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면 들을 귀가 열렸을 때(그런 때가 있긴 하다)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엄마의 '사랑의 조언'이 '쓸데없는 잔소리로 전락하지 않도록 '나중의 때'를 노려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를 가지고 아이들을 바라볼 것.  아이들은 믿는 만큼 자란다 했던가. 내가 정한 때가 아닌, 각자 자기에게 가장 알맞은 때에 스스로 잘 해낼 거라고 믿는 마음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겠다.


 나에게도 "제발 잔소리 좀 그만해"라고 소리치던 때가 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내가 뱉어냈던 무심한 말들이 엄마가 된 내게 다시 돌아온다. '잔소리도 사랑'이라는 어른들의 말씀들을 지금은 너무도 잘 알겠다. 하지만 내가 그랬듯 아이들에겐 사랑의 조언도, 충고도 그저 '잔소리'일 수 있다. 잔소리가 왜 사랑인지, 언젠가는 그 잔소리를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지 깨닫기 위해서는 아직 수천 번의 등교를 더 치러내야 한다.


내 입에서 잔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이 움찔움찔하다면,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의 전략을 기억하자. 함께 누리는 행복이라는 우리의 전진을 위한 엄마의 기다림, 1보 후퇴. 오늘 아침도 후퇴다.





<오늘의 밑줄>
유대인 엄마의 자녀 교육 비법은 기다림과 인내와 헌신이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아이들에게 반복해서 설명하면 충분히 알아서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아이들을 기르는 데는 기다림과 인내의 연속이다. 이것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 모든 어머니의 기다림과 인내 없이는 자녀 교육에 성공할 수 없다.

<들어주고, 인내하고, 기다리는 유대인 부모처럼 (장화용 지음)>
월요일 연재
이전 09화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