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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존재의 가치

by 하이데어 Feb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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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것 좀 탱크로 만들어줘"


얼마 전 선물로 사준 로봇 인형을 들고 둘째 아이가 다가온다. 잠시 엄마를 가만두나 하던 찰나였다. 아이 옆에 앉았다. 아이 아빠가 늘 변신시켜 주던 장난감인데 막상 내가 하려니 생각보다 어렵다. 할 수 없이 유튜브를 찾아 조립 방법을 따라 해 본다. 그래도 어렵다. 그렇게 한참을 장난감을 붙잡고 있다가 드디어 '탱크'가 완성됐다. 신이 난 아이는 탱크를 가지고 쪼르르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휴..."


다시 한숨을 돌리고 읽던 책을 들었다. 서너 문장이나 읽었을까. 아이가 다시 다가온다. 한 손에는 탱크를 들고... 


"엄마, 이것 좀 로봇으로 만들어줘"


 '음... 그래, 나는 좋은 엄마니까...'를 되뇌며 다시 아이 옆에 앉았다. 그리고 완전무장한 탱크와 꽤 긴 시간 씨름 아니 사투를 벌였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장난감 조립 동영상의 주 시청자는 과연 아이들일까, 엄마들일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텅 빈 집안, 조그만 핸드폰 앞에 손바닥만 한 탱크를 들고 쪼그려 앉아있는 나를 발견했다. 지금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원증을 목에 걸고 높은 빌딩으로 걸어 들어갔던 나는 지난날의 꿈이었던가. 


 저녁 식사 시간, 함께 식사를 하며 마주 앉은 신랑에게 오후 일을 털어놓았다. 


"오늘, 갑자기 자괴감이 들었어. 아이 로봇을 가지고 낑낑 대며 한참 앉아있었거든.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듣던 신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한다. 


"나도 가끔 그럴 때 있어. 하루 종일 사람들이랑 일 관련 이야기하다가, 집에 오면 갑자기 '미니 특공대' 볼트가 되어 있는 거지..."


둘 다 큭큭대며 웃었다.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어른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갑작스럽게 아이들의 세계로 몰입해야 하는 신랑의 고충이 고맙게 느껴졌다.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구나...


잠자리에 드는 시간. 


"엄마, 우리 안고 자자. 계속 안고 자자."


첫째 아이가 나를 꼭 끌어안으며 말한다. 아이는 그렇게 나를 꼭 끌어안은 채 금세 잠이 든다. 문득 첫째가 세 살 때 일들이 생각났다. 둘째를 임신해 배가 불렀던 탓에 안지 못하고 팔만 배고 재웠던 때가 생각났다. 둘째가 태어난 후 지금까지, 어린 동생 때문에 엄마, 아빠 옆자리를 양보했던 첫째의 마음도 떠올랐다. '아직도 엄마의 품이 좋은 어린아이인데... 너도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짠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 아빠와 아이를 보며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 사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며 매일을 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뿐인가. 그저 같은 공간과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때때로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신랑과 아이들이 내게 그렇듯이....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슴푸레 해가 지는 저녁 시간, 즐겨 듣는 라디오의 오프닝 멘트가 오늘따라 스르륵 마음을 열고 들어온다. 매일 같은 멘트로 시작하는 오프닝인데, 오늘따라 마음이 푹푹해진다. 나에게 토닥토닥... 그래,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구나. 오늘을 살아낸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이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2021년)


*오늘의 밑줄 

존재의 차원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여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가치가 있네. 
그건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야.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지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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