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비건으로 산다는 것
현대사회에는 다양한 만능주의가 있다. 물질만능주의, 능력(만능)주의, 결과만능주의, 기술만능주의 등등. 비건이 되자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됐다. 바로 고기만능주의. 난 어렸을 때 몸이 약했다. 팔다리가 젓가락만큼이나 가늘었고, 입이 짧은데다 밥먹는 일을 귀찮아 했다. 체중을 늘리려 많이 먹어보기도 했지만 살이 잘 찌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한 번은 영양실조로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
이렇게 몸이 약했던 탓에, 비록 한 살 터울의 남동생을 둔 90년대 K장녀로 태어났지만 '하나 뿐인 장남' 못지 않게 생선과 고기를 많이 먹으며 자랐다. 나 하나 건강하자고 그렇게 많은 생명들을 먹었건만 슬프게도 그게 날 살 찌우고 건강하게 만들어주진 못했다. 날 건강하게 해준 건 운동과 균형 잡힌 식단이었다. 골골대는 저질체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인이 된 이후 수영, 요가, 헬스 등의 운동을 꾸준히 했고, 밥을 열심히 챙겨 먹었다. 그리고 비건이 된 지 햇수로 3년이 된 지금, 여전히 난 크게 아프지 않고, 과로사회에서 내 몸 하나 건사할 만큼 건강하다.
사람들은 힘을 내려면, 기운을 차리려면 '고기'로 대표되는 단백질을 먹어야 한다고 많이들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직장에서 피곤해하거나 아플 때면 가장 먼저, 그리고 자주 듣는 말은 "고기를 안 먹으니까 그렇지."와 "풀만 먹으니까 그렇게 비실비실하지." 비건 생활을 해보지 않았고, 비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안 먹어서 그런 거 아닐까?"라며 추측조로 말할 법도 한데, 다들 식품 영양 전문가나 의사라도 되는 양,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인 것처럼 채식 탓을 한다.
잦은 야근으로 인한 과로와 수면 부족, 장거리 출퇴근으로 인한 피로, 회식으로 인한 과음. 인과관계가 명확한 요인들을 몽땅 제쳐버린다. 논비건(비건이 아닌 사람) 동료1, 동료2는 듣지 않아도 될 "고기를 안 먹으니까 그렇지"라며 한소리 듣다 보면, 피곤한 모습이나 아픈 모습을 보이기가 더욱 싫어진다. 나 하나로 인해 채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겨나거나 강화될 수 있다는 쓸데없는 책임감을 좀처럼 떨쳐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거 아닌데....반박할 말은 많지만.
고기와 피곤함의 상관관계, 건강의 상관관계. 채식을 하면 정말 건강할 수 없는 것일까? 건강에 있어 고기는 필수일까? 아래의 기사를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고기를 먹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로 흔히 거론되는 것이 필수아미노산이다. 단백질은 서로 다른 아미노산 20개로 만들어진다. 이 가운데 8가지는 인간의 신체가 스스로 합성할 수 없기 때문에 음식으로 섭취해야 하며, 이를 필수아미노산이라고 한다. 기존의 상식으로는 필수아미노산 8가지는 동물성 단백질에만 있다고 믿어왔지만, 맥두걸 박사는 쌀과 채소를 통해서도 사람들은 매일 40~60g의 단백질을 얻을 수 있고, 식물성 단백질에도 필수아미노산이 모두 들어있다고 이야기 한다.
이와 관련해 넷플릭스의 <더 게임 체인져스>라는 다큐멘터리를 추천한다. 복서, 육상선수, 미식축구 선수, 역도 선수 등 프로선수들이 완전채식을 한 이후 훨씬 좋은 성적을 내는 모습을 보다 보면, 고기에 대한, 단백질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재고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