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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Aug 20. 2024

들깨의 노래





5월의 어린 병정들을 기억하시나요?

스파르타의 용사가 될 어린싹들을 기억하세요?

싱그럽고 푸르던 어린 날들을?





떡잎은 빛나는 청록을 예언했더랬지요.

새싹에게는 거친 흙덩이가 무거웠어요.

흙의 지붕을 뚫고 나왔을 때의 눈부신 빛은 아직도 눈을 멀게 해요.





몸이 간질거렸어요.

내 어깨에서 새 잎이 나올 때면.

천사도 날개가 나올 때 간지러웠을까요?

내 사랑스런 잎사귀가 팔랑이듯 천사의 날개도 팔랑일까요?

이렇게 가볍게 팔랑댈까요?





나는 자꾸만 자라요.

키가 크고 잎사귀가 나오고 몸이 굵어지고

자꾸만 뛰어오르고 싶어져요.

공중으로 펄쩍!

잎사귀를 펄럭대며 빙빙 춤을 추고 싶어요.

봄빛의 따사로움을,

벌레의 윙윙대는 날갯짓 소리를,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의 피부결을 느낄 때면은.


삽질 소리가 들리고 뒤집어진 흙의 속살에서 내음이 퍼져요.

저벅대는 사람들의 발소리, 두런대는 말소리를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요.

그리고 떨어지는 짭짤한 땀방울.


푸르르 산비둘기가 내려앉아요.

살끔살끔 밟는 새들의 발자국 소리는 흙에 꾹꾹 흔적을 남기고,

하지만 벌레들은 더 조심스럽죠.

아주 작게, 가만히 걸어 다녀요.

내 잎사귀를 무게 없이 디뎌요.

그리곤 잎 뒷면에 정성껏 알을 낳아 붙여놓아요.





햇살이 환한 낮이 끝나면 밤이 내려요.

하늘이 어두워지고 공기가 묵직해지면

밤이 온다는 신호예요.

그러면 바쁘게 쪼르르 누군가 달려가요.

작은 발소리예요. 아주 바쁜 발소리예요.

그들의 긴 꼬리가 내 허리를 두르네요.

아삭아삭 베어 먹고 꿀꺽 즙을 넘기는 소리가 맛이 있어요.


밤은 조용하나 조용하지 않아요.

가만한 움직임과 숨소리와 뒤척임과 날개 부비는 소리가 어둠과 정적에 함께 섞여요.

밤의 시간은 낮의 시간만큼 다채로와요.





하늘이 희뿌옇게 밝아올 때,

내 온몸은 차갑고 촉촉해져요.

내 온몸은 적셔져요,

그걸 무어라 불러야 할까.

공기의 젖은 숨결이라고 할까요,

빛의 감로수라 할까요.

그냥 이슬이라 부를래요.

이슬보다 더 좋은 이름을 찾을 수가 없어요.

맑은 빛으로 빗질해 주는 새벽의 촉촉한 손길이 좋아요.





나는 푸르러졌어요. 싱그러운 청록색이 되었어요.

잎사귀로 하늘을 받아요.

온 잎으로 하늘을 받아요.

햇빛과 바람을 받아요.

내 잎맥 한 줄 한 줄에 하늘의 빛을 새겨요.

내가 들은 소리들을 잎에 새겨요.

본 것들, 맞이한 밤과 새벽들, 무겁던 구름의 물방울들, 머리칼을 뒤흔들던 거센 바람들,

두런대던 사람들의 대화도 잎사귀에 적어두었어요.

내 위로 뿌려주던 시원한 물줄기도 기억해요.

그 시원하던 물줄기를.





나는 자꾸만 자라네요.

새 잎을 내고 또 내요.

나는 자꾸만 자라고 싶어요.

무한히 자라고 싶어요.

어쩔 수 없어요. 내 안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어 나를 뻗어 나게 해요.


나를 한 잎 씹어보아요.

향기 속에 퍼지는 이야기가 들리나요?

푸드득 날아들던 새들의 착지와,

조용히 앉은 무당벌레의 명상과

애벌레의 건강한 식욕과

사람들의 웃음과 땀과

하늘과 바람과 공기와 빗방울과

햇살의 거침없는 쏟아짐에 관한,

그 무수하고 무궁한 이야기가 들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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