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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Aug 13. 2024

가지를 위한 헌사


한동안 이어진 장맛비와 그 뒤로 시작된 맹렬한 더위로 텃밭도 사람도 시달리는 계절이네요. 주말 새벽에 나름 부지런을 떨며 주말농장에 가보면 벌써 많은 사람들이 나와 일을 하고 있어요. 언제 나왔는지 일을 끝내고 가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하지만 소원해진 텃밭도 꽤 많습니다. 저희 위쪽 텃밭에서는 열무가 혼자 자라다가 시들고 있네요. 다른 텃밭에서도 혼자 꽃을 비운 봉숭아가 보이고, 혼자 자라는 토마토, 혼자 빨갛게 익어서 말라가는 고추가 보입니다. 여름은 휴가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경기도 나쁘고 시절 또한 수상해서 텃밭을 찾지 못하는 사정들은 알 길이 없고, 소원해진 텃밭은 조금 외롭습니다.


 






35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가지가 자랍니다. 거센 비를 견디고, 끓는 듯한 지열을 견디고, 가지는 자라고 있습니다. 올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주말농장의 가지들이 작년만큼 번성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키도 작고 잎사귀도 작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는 어쨌든 자라고 자랍니다. 끝도 없이 꽃을 피우고, 줄기차게 보랏빛의 길고 매끈한 열매를 키우고 있습니다.  





텃밭에 갈 때마다 가지를 대여섯 개는 따오는 것 같습니다. 그 가지로 달걀물을 입혀 전도 부치고, 쪄서 나물도 하고, 올리브유에 구워 매운 양념을 얹기도 하고, 가지 라자냐까지 해 먹었습니다. 가지는 자라고 자라서 저희들을 먹이고 또 먹입니다.  


올해의 가지 키우는 마음은 작년과 조금 다르네요. 왜냐하면... 가지의 마지막을 봤기 때문이에요. 무성하게 줄기를 뻗고 잎을 내며 나무처럼 자라서는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절정기 이후의 모습을 봤거든요. 찬 바람이 불고 가지가 잎을 떨굴 때, 꽃이 피기를 그치고 열매가 자라기를 그칠 때, 가지는 잊힙니다. 저는 무심히도 가지를 뽑아냈는데, 올해 초봄에 어느 소원해진 텃밭에서 작년의 가지가 그대로 남아, 잎을 떨구고 마른 줄기로 겨울을 넘기고 초봄을 맞고 있었어요. 조금은 서글퍼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비감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삶의 주기를 다 살아낸 모습은 마음을 다르게도 울렸습니다. 나무처럼 우직하고 곧게 서 있는 가지의 모습은요. 마치 철학자 같았습니다.


무엇이나 끝은 있게 마련. 끝을 알고 달려가는 것과 모르고 달려가는 것은 다를 텐데, 가지는 그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달립니다. 어쩌면 끝을 아는 게 별로 중요한 게 아닐지 모르겠어요. 다만 저 최선을 다함이 제 마음을 거듭 수그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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