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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랑의 신 한번은 잠이 들어
가슴 지피는 불 막대 옆에 놓아두었네.
처녀로 살기로 맹세한 많은 요정들
살며시 다가와 그중 가장 아리따운 숫처녀
정결한 손에 그 불 막대 집어 들었네.
수많은 사람들의 진실한 가슴 달궜던 그 막대.
이렇게 뜨거운 욕망의 장군
자다가 처녀의 손에 무장 해제되었나니.
그 처녀 근처 차가운 샘에 이 막대 꺼버렸도다.
그 샘 사랑의 신 불길에서 영원의 열기 받아
온천 되어 병든 이들 위해 건강의 치료사 되었노라.
허나 내 여인의 노예인 나,
치료하러 간 그곳에서 이것 경험으로 알게 되었으니,
사랑의 신 불은 물 데워도 물은 사랑 식히지 못함을.
- 박우수 옮김
https://www.youtube.com/watch?v=xRelHYyh5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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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ttle love-god lying once asleep
Laid by his side his heart-inflaming brand,
Whilst many nymphs that vowed chaste life to keep
Came tripping by, but in her maiden hand
The fairest votary took up that fire,
Which many legions of true hearts had warmed;
And so the general of hot desire
Was sleeping by a virgin hand disarmed.
This brand she quenched in a cool well by,
Which from love's fire took heat perpetual,
Growing a bath and healthful remedy
For men diseased; but I, my mistress' thrall,
Came there for cure, and this by that I prove:
Love's fire heats water, water cools not love.
소네트의 마지막 시입니다. 박우수 번역자에 따르면, 이 시는 셰익스피어의 창작물이 아니라고 합니다. 5세기 그리스 시인 마르시아누스 스콜라스티쿠스의 시를 번안한 것이라고 해요. 153번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상(2009년 베를린 국립극단 베를리너 앙상블)에서 이 공연을 연출한 로버트 윌슨은 또 하나의 농담을 무대에 펼치고 있습니다. 요정들 중에서 '가장 아리따운' 숫처녀가 너무 귀엽지 않나요?!
아무튼 사랑의 신이 잠깐 잠든 틈에 가장 어여쁜 요정이 사랑의 횃불을 몰래 집어서 물에 넣어 꺼버렸네요. 요정은 처녀로 살기로 맹세했기 때문이죠. 얼음 같은 마음입니다.
사랑의 불로 물은 데워져 온천이 됐습니다. 그 물에 몸을 담그면 사랑의 열기로 우리의 병이 낫습니다. 그런데 과연 불은 꺼졌을까요? 사랑의 병을 깊이 앓고 있는 시인은 아니라고 하네요. 온천에 몸을 담갔으나 가슴의 불은 꺼지지 않았음을 경험으로 알았다니까요.
사랑은 차가운 마음을 따뜻이 데우고, 사랑은 병든 이를 치료하며, 사랑은 영원하노라. 셰익스피어의 전언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RQaNDF6FL0
* 대문 그림은 조지아 오키프의 <붉은 칸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