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
겨울을 좋아한다고 했지? 나도 그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겨울의 찬 바람을 좋아해. 세상의 모든 소음을 흡수하는 겨울의 흰 눈을 좋아해. 발밑에서 뽀득이는 눈소리도, 미끄러운 눈길까지도. 잎사귀를 다 떨군 쓸쓸한 겨울나무도 좋아하지. 나는 두꺼운 옷으로 몸을 꽁꽁 싸매면서 말이야. 겨울은 마치 자정으로 향하는 밤처럼 시간의 종점으로 가는 것 같아. 겨울은 이제 쉬어도 좋을 곳, 시간의 종점처럼 느껴져. 그러고 보니 네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지 않았네.
김선남 작가도 아마 겨울을 좋아하지 싶어. 작가 소개글에 보면 '겨울을 살아가는 숲 속 생명을 담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지었다는구나. 작가의 글은 마치 한 편의 시 같아.
여름의 끝자락,
나는 초록 잎 사이사이 겨울눈을 내밀어.
나의 겨울이 시작되는 곳이야.
그러면 작은 나비가 겨울눈에 알을 낳고 날아가.
꿀벌들이 드나든 자리에는 단내가 풍기고
어치는 숲 속 여기저기 도토리를 숨겨 두지.
고라니와 청설모는 따뜻한 털옷으로 갈아입어.
엄마 제비는 아기 제비에게 높이 나는 법을 가르쳐 주고
먼 곳에서 날아온 기러기 가족은 마른 목을 축여.
겨울은 준비하게 해.
나는 잠시 이대로 머무를 거야.
겨울은 잠들게 하고
하루하루 참고 견디게 하지만
우리를 함께 있게 해.
때로는 정신없이 휘청이게 하고
지난날을 그리워하게 하지만
더 깊이 뿌리를 내리게 해.
그러면 나의 겨울눈은 새싹을 틔울 수 있어.
아기 벌레도 알에서 태어날 수 있고
모두 깨어나 다시 만날 수 있어.
겨울을 대하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겠지? 누구는 싫다고 하고, 누구는 좋다고 하고. 싫다는 사람도 이유가 있겠고, 좋다는 사람도 이유가 있을 거야. 내가 왜 겨울을 좋아하는지 곰곰 생각해 본 건 이 책을 본 영향도 있지 싶어. 작가는 말하네. 겨울은 준비하게 하고 잠들게 하며 참고 견디게 하는 계절, 바람에 휘청이게 하고 지난날을 그리워하게 하는 계절이라고. 하지만 우리를 함께 있게 하는 계절이고, 더 깊이 뿌리를 내리게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고. 난 생각해보지 못한 겨울 이야기야.
그림책의 표지에서 작가가 금빛으로 칠한 걸 잘 보렴. 나무의 겨울눈과 나비의 알을. 본문에서는 곤충과 도마뱀과 다람쥐도 금빛이야. 꿀벌도, 달팽이도 금빛으로 빛나. 잠시 이대로 머무는 생명들. 봄이 올 때 다시 깨어나려고 깊이 뿌리를 내리는 생명들이기 때문에 작가는 그들을 금빛으로 빛나게 했어. 그러고 보니 그중에는 우리도 속해있겠어. 우리도 금빛일 테지, 이 겨울에는. 작가의 해석법이 마음에 들어.
겨울을 해석하는 방법은 다양해서 무척 우울한 이야기도 지어낼 수 있을 거야. 한 계절이 지나면 다른 계절이 오듯이 우리에게도 이런 해석을 하는 시간을 지나면 다른 해석을 하는 시간이 오겠지.
이번 계절에는 겨울이 전하는 말을 성의껏 잘 들어봐야겠어. 내 마음을 다 비우고 오로지 겨울의 얘기만을 아주 잘 들어봐야겠어. 자연이 우리에게 펼치는 이 계절의 의미를 넌 어떻게 읽어낼지 궁금하구나. 겨울이 끝날 때 네가 들은 얘기와 내가 들은 얘기를 한번 맞춰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 인용한 그림들은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