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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와

by 스프링버드


샐리,


지금이 가을일까, 겨울일까, 헷갈린다고 말했지? 늦가을이면 쓸쓸해서 좋고, 초겨울이면 쌀쌀해서 좋은 걸. 이왕이면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이 됐으면! 따뜻한 목도리와 장갑을 끼고 현관문을 열면 찬바람이 확 끼치는 겨울이 왔어.



에우게니 M. 라쵸프 그림, 이영준 옮김, 한림출판사, 2009(2판5쇄)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날 할아버지가 땔감을 마련하려고 사냥개를 불러서 숲으로 갔어. 허리띠에는 장갑을 끼워 넣고서. 그런데 도중에 장갑 한 짝이 바닥에 떨어졌네. 할아버지는 그걸 눈치채지 못한 채 걸어가 버렸어.





두툼한 가죽장갑이야. 털이 폭신한 벙어리장갑. 할아버지의 온기가 느껴지는 장갑. 할아버지의 냄새가 배어있을 장갑. 고소한 감자 수프와 구운 옥수수의 향과 모닥불 냄새가 날 것 같은 장갑이야.





작은 들쥐가 장갑을 봤어. 추운데 마침 잘 됐다. 들쥐한테는 장갑이 딱 맞았지. 작은 들쥐니까. 들쥐는 말했어. "나는 여기서 살 거야!"





그런데 눈 오는 추운 겨울, 숲 속에는 들쥐만 사는 건 아니었어. 개구리도 장갑을 봤네. 둘은 서로 인사를 했어. 들쥐는 자기가 '무엇이든 갉아먹는 쥐'라고 했고 개구리는 '개골개골 우는 개구리'라고 했지. 개구리는 장갑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들쥐에게 부탁했어. "얼어 죽을 것 같아."



그들은 둘이 되었습니다.






따뜻한 장갑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들쥐와 개구리의 저 행복한 표정. 우리도 따뜻한 집 안에서 눈 오는 창밖을 저런 표정으로 볼 때가 있지 않니? 몸도 마음도 포근해지는 그 순간이 기억나.


장갑을 발견한 동물 친구들은 점점 늘어나. 그들은 한결같이 자기도 장갑에 들어가길 원했어. 밖은 눈 오는 추운 겨울 숲이니까. 그리고 부탁은 한결같이 받아들여지지.


뭐, 좁지만 괜찮겠지요.




이렇게 해서 장갑 속에는 먹보 쥐와 폴짝폴짝 개구리와 빠른 발 토끼와 멋쟁이 여우와 회색 이리 와 엄니 가진 멧돼지와 느릿느릿 곰까지 모두 일곱 마리의 동물이 들어갔어. 실은 곰은 처음에는 거절을 당했어. 들어갈 자리가 없었거든. 하지만 곰은 어떻게든 들어가겠다고 했어. 동물들은 선량하기도 하지.


할 수 없군요. 하지만 한쪽 구석에 있어 주세요.



동물들이 서로 자기소개를 하며 한 마리 한 마리 장갑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행복하게 밖을 내다보는 모습도 참 재미있어. 장갑 집이 점점 꾸며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우스워. 차가운 땅바닥에 닿지 않게 장갑 밑에 지지대를 깔고, 발코니를 내고, 사다리를 기대고, 나중에는 창문과 굴뚝까지 만들어. 아주 살 만한 걸!


이 이야기는 우크라이나에서 전해지는 옛날이야기야. 할아버지의 손이 아무리 커도 동물 일곱 마리가 들어갈 수 있는 장갑은 없을 거야. 동유럽의 춥고 긴 겨울을 상상해 본다. 눈이 풍성하게 내리는 깊은 숲. 동물들은 어딘가에 꼭꼭 숨어서 그 겨울을 보내고 있겠지?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할아버지의 장갑 속처럼 포근하고 따뜻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는 만들어졌을 거야. 동물들의 장갑 집이 마음으로 만든 집이란 건 그림책 마지막 장을 보면 알 수 있지. 할아버지가 장갑을 주우러 갔을 때 장갑은 처음에 떨어진 모양 그대로 바닥에 놓여있거든.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완전 상상일까? 개가 할아버지보다 먼저 장갑으로 뛰어갔을 때 장갑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고 개가 멍멍 짖자 동물들이 깜짝 놀라서 장갑에서 기어 나와 숲 속 여기저기로 달아났대.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


할아버지가 다가와서 장갑을 주워 갔습니다.



이야기는 마치 장갑처럼 마음껏 늘어날 수 있지. 일곱 마리가 아니라 백 마리의 동물도 이야기 속에는 담을 수 있어. 이야기를 만드는 건 사람의 상상력이고 상상력은 결국 마음에서 피어나는 것. 이 겨울, 눈 내리는 숲 속에서 동물들이 푸근하게 옆자리를 내어주며 따뜻한 장갑 속에서 함께 행복한 미소를 짓는 이야기가 내 마음을 장갑처럼 부드럽고 유연하게 해 주네. 커다란 곰을 포함해 적어도 일곱 마리 동물의 자리까지는 내어줄 수 있는 따뜻하고 포근한 벙어리 털장갑처럼 내 마음이 늘어나는 것만 같아. 그렇게 늘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아.




* 인용한 그림들은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제공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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