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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by 스프링버드


샐리,


여름방학이 다가오네. 여기 네가 아주 부러워할만한 아이가 있어. 이 그림책은 여름방학을 정말 방학답게 보내는 한 아이의 이야기야.



티모테 드 퐁벨 글 / 이렌 보나시나 그림, 최혜진 옮김, 길벗어린이, 2023



그림책 표지를 넘기면 넓은 들판을 달리는 기차가 나오고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돼. "방학이었다." 아이는 여름방학이면 항상 삼촌 집에 혼자 기차를 타고 가는가 봐. 집을 떠나 혼자 멀리 간다는 건 정말이지 최고의 기분일 것 같아.


매 순간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삼촌의 이름은 안젤로. 삼촌이 사는 곳은 한적인 시골이야.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나 하나'뿐. 삼촌은 옥수수밭 한가운데 살고 있고, 집은 아주 엉망이지. 삼촌은 '평생 아무것도 버리지 않는 사람'이고 '새 물건을 하나도 사지 않는데도' 집은 잡동사니로 꽉 차있어. 그야말로 천국인 걸! 우리의 주인공은 삼촌이 빌려준 자전거를 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 동네와 온 들판을 쏘다녀. 여름날들은 끝없이 길고 길어.


너무나 아득해서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을 여름날들.



'나'는 동네 골목들을 구석구석 다 들어가 보고 들판 곳곳을 달려서 어디에 맛있는 자두나무가 있는지까지 찾아내. '나'는 매일 더 멀리, 어둠이 내려서 자전거 헤드라이트를 켜야 할 때까지 돌아다녀. 삼촌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지만 '나'를 위해 책을 잔뜩 갖다주고 이런저런 잡다한 얘기들을 들려줘. 집에는 엽서 한 장만 보내면 돼. "잘 지내고 계시죠?"로 시작하는 간단한 안부 인사만. 집은 별로 그립지 않아. 삼촌과 함께 지내는 자유가 너무 좋으니까.


방학은 달팽이 집 같았다.
가운데에는 집이 있었다.
나는 나선형 원을 그리면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까지 가 보려고 애썼다.



이런 멋진 표현이 있을까! 달팽이 집의 동그랗고 빙빙 돌아가는 내부는 결국 뾰족한 정점에 도달하겠지? 여름방학의 길고 긴 날들도 그랬어. 여름의 시간들은 특별한 순간이 빛나는 장소를 향해서 달려가. 길을 잃는 바람에 닿은 곳, 바다였어!



소나무들이 모두 사라지고, 잡초 사이로 난 모랫길이 하늘로 향했다.
바퀴가 빛 가운데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처음 와 본 곳이었다.
이 순간 이후, 모든 것이 영원히 달라질 거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바다는 그 자체로 멋졌어. 바다를 만난 기분은 설명하기 힘든, 벅차오르는 무엇이었어. 그리고 그곳에서 에스더 앤더슨을 만났지 뭐야!





'나'는 에스더 앤더슨을 만나고 싶어서 다음날 다시 집을 나섰어. 어디로 가야 할까? 바다로 가야겠지? 그런데 어떻게 바다로 가지?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길을 나섰다.
어떻게 해야 길을 잃을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에스더 앤더슨을 다시 만나기까지 좀 복잡한 사정이 있었지만, 좋은 그림책이라면 당연히 그렇듯 이 이야기는 결국 해피엔딩이야. 현실은 해피엔딩이 아닐지 몰라도 그림책은 당연히 해피엔딩이지! 아무렴. 밤하늘에 별이 빛나듯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빛나야 하고 말고. 밤하늘이나 이야기나 이치는 똑같아.


샐리, 이런 여름방학은 꿈과 같아서 정말 행운아만 누릴 수 있을 것 같구나. 하지만 네가 행운아가 되지 말란 법도 없어. 굉장한 사건은 너의 하루하루 어딘가에 분명히 묻혀있을 거야. 마치 보물섬처럼, 마치 에스더 앤더슨처럼 말이야. 그 사건은 네가 어느 날 문득 의도하지 않게 '길을 잃게 될 때' 벌어질지 모르지.


이 그림책은 여름방학에 '나'가 첫사랑을 만나는 이야기지만 우리의 상상을 더 펼쳐볼까? 그러면 이 이야기는 무한한 공간과 무한한 자유와 무한한 길 잃음과 무한한 설렘에 대한 노래로 확장돼. 그리고 무한하게 있을 너의 '첫'에 대한 노래가 되지! 모든 첫 경험은 마음을 울렁이게 해. 첫사랑은 당연히 그럴 테고, 처음으로 떠나는 먼 여행, 처음으로 만나는 모든 새로운 일들도 그렇지. 어느 유명한 작가는 이렇게 말했대.* 마음을 설레게 하고 짜릿하게 만드는 느낌, 떨림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로 좋은 부분이라고.


샐리, 길 잃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밖으로 나서봐! 모르는 문을 열어봐! 너의 모든 푸르른 '첫'을 향한 길에서 신은 항상 네 곁에 함께할 거야! 그림책 속 이야기는 때로 현실이 되기도 한다는 걸 명심하렴.






* "전율은 인간의 최상의 부분",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 중에서.

** 인용한 그림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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