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
우리가 지금까지 읽은 세 권의 그림책은 모두 주인공 이름을 제목으로 하고 있어. 첫 책은 숲이 주인공이었고, 두 번째는 닐스, 세 번째는 미스 럼피우스가 주인공이지. 이 책의 제목에도 주인공 이름이 들어가 있네. 주인공 이름을 제목으로 삼았다는 건, 주인공이 이 이야기를 힘차게 끌고 간다는 뜻이야. 정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 봐. 그러니까 정원도 주인공인 셈이네.
우리들 이름에는 저마다 특별한 뜻이 있어. 모두 좋은 뜻이고. 리디아도 그래. 리디아는 기독교의 성녀야. 기독교가 막 생겨났을 때 사도 바오로가 유럽으로 복음을 전하러 가. 낯선 땅에서 바오로는 모든 게 낯설고 두려웠을 거야. 그런 그를 물질적, 정신적으로 열심히 도와준 사람이 바로 리디아였어. 리디아는 바오로의 설교를 듣고 감동해서 최초로 신자가 됐지. 그녀는 옷감을 판매하는 부유한 사업가였다고 해. 유능한 여성이었던 모양이야. 신약성서의 사도행전에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주셨다.'는 구절은 바로 성녀 리디아를 두고 하는 말 이래. 말하자면, 리디아는 빈 들판에 첫 씨앗을 뿌린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지. 믿음의 씨앗을.
이 그림책은 성경의 리디아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 하지만 기독교 신자들은 리디아라는 이름에서 은연중에 성녀 리디아를 떠올리지 않을까? 굳은 믿음을 갖고 진리를 행동으로 실천했던 한 여인을 말이야. 내 이름이 만약 리디아라면 나는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리디아와 연결돼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 비록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은 다르지만, 마치 우연처럼 그러나 실은 운명으로, 우리 두 사람이 같은 하나의 이름으로 이어져 있는지 알 수 없지.
그림책 표지를 넘기면 넓은 초원에 할머니와 리디아가 밭에서 돌아오는 모습이 크게 그려져 있어. 그림 한쪽에는 멀리 집이 보이고 리디아의 아빠와 엄마가 집 앞에서 마주 선 채 심각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아. 두 사람 등이 굽어 있네. 맞아, 집이 어려운 상황이야. 아빠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고 엄마도 일거리가 없거든. 딸 리디아를 보살피기 힘들 정도로 말이야. 그래서 부모님은 리디아를 당분간 외삼촌 집으로 보내기로 했어.
이 그림책의 글은 집을 떠나 살게 된 리디아가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들로 이뤄져 있어. 리디아는 제일 먼저 외삼촌에게 편지를 쓰지. 그리고 기차를 타고 외삼촌이 사는 도시로 가는 리디아의 모습을 우리는 보게 돼. 기차 안에 혼자 앉아있는 작은 소녀. 엄마, 아빠, 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들. 그리고 리디아는 도시의 기차역에 내려. 기차역은 거대하고 황량한데 리디아는 너무 작아. 커다란 트렁크 두 개에는 리디아의 외로움이 가득 들어있는 것만 같구나. 그런데 무채색의 기차역에서 맑고 환한 파란색이 빛나고 있네. 엄마가 자기 옷을 줄여서 만들어준 리디아의 원피스야.
외삼촌은 작은 빵집을 운영하고 있어. 잘 웃지는 않지만 리디아를 싫어하는 것 같진 않아. 리디아가 크리스마스에 외삼촌에게 긴 시를 지어서 선물했더니 외삼촌이 시를 소리 내어 읽고는 셔츠 주머니에 넣고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 걸 보면. 빵집에서 일하는 에드 아저씨와 엠마 아줌마도 아주 친절해. 리디아는 엠마 아줌마에게 꽃 이름을 가르쳐주고 아줌마는 리디아에게 빵 반죽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어린 외톨이 리이다는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씩씩하게 잘 지내는 것 같아. 낯선 장소와 낯선 관계를 다정한 마음으로 데우면서 말이야.
도시에 넓은 들판은 없지만 여전히 흙과 씨앗과 햇빛과 물과 친절한 사람들은 있었어. 이들을 다 합치면 뭘 할 수 있을까? 흙과 씨앗과 햇빛과 물과 친절로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꽃을 피우는 일이지! 리디아는 식물을 키웠어. 우리는 리디아의 편지를 읽으면서 알게 돼. 할머니가 꽃씨랑 알뿌리를 보내줬고, 그것들은 편지 속에 담겨 왔으며(편지를 뜯는데 새싹이 흙과 함께 쏟아졌다니까 말이야), 창문이며 길가에 무와 양파와 상추가 자라고, 이웃 사람들은 화분과 화초를 선물했다는 걸. 그리고 모두들 리디아를 '원예사 아가씨'라고 부른다는 얘기까지.
리디아는 이제 더 큰 계획을 세웠지. 외삼촌을 깜짝 놀라게 할 비밀 계획. 건물의 버려진 옥상에 정원을 만들기로 한 거야. 시간은 흘렀고 마침내 건물 옥상에 멋진 정원이 완성될 즈음, 리디아는 엄마와 아빠와 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어.
행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이렇게 해서 리디아는 무뚝뚝한 외삼촌에게 옥상 정원을 선물했어.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외삼촌은 리디아에게 아주 좋은 소식을 전해줬지. 아빠가 취직을 했고 리디아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고. 외삼촌은 그 소식을 전하던 날, 빵집 문을 잠시 닫고 리디아에게 꽃으로 장식한 케이크를 선물했어. 리디아의 정원 선물에 대한 보답이겠지?
이제 그림책이 끝나가려고 해. 다시 기차역이 나오고, 외삼촌이 리디아를 꼭 끌어안고 있네. 그리고 마지막 장. 할머니와 리디아가 밭을 향해 서 있는 뒷모습이 보이는구나. 광활한 넓은 들판에는 아직 아무것도 자라고 있지 않아. 초봄의 빈 들판이야. 할머니의 바구니에서는 꽃씨 봉투들이 넘쳐서 떨어지고 리디아의 바구니에는 연장이 들어있네. 이제 시작이야, 푸른 시작! 식물이 자라고 꽃들이 가득 피어나게 될 시작!
편지에는 고양이에 대한 얘기는 한마디도 없는데 그림 작가는 고양이를 장면마다 그려 넣었어. 마지막 그림에서는 고양이가 리디아네 강아지 옆에 나란히 앉아있는데, 봤니? 삼촌네 고양이가 리디아를 따라온 거야. 고양이는 어디가 더 좋을까? 향긋한 빵 냄새가 풍기고 고소한 빵가루와 달콤한 크림을 핥을 수 있는 빵집일까, 툭 트인 자연일까? 뭐, 어디면 어떻겠어, 고양이는 항상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행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이 그림책을 읽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지어지고 마음이 따뜻해져. 리디아의 다정한 편지들을 읽고 있으면 말이야. 이별도, 굳은 얼굴도, 낯선 기차역도, 황량한 건물 옥상도, 리디아의 다정함으로 환해지는 느낌이야. 빨갛게 달아오른 난로처럼 온기를 사방으로 퍼뜨리는 힘, 그건 리디아의 다정함이지. 그림책의 첫 편지, 리디아가 외삼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리디아는 말해.
저는 작아도 힘은 세답니다.
그림책의 글 작가, 사라 스튜어트가 주인공의 이름을 리디아라고 했던 까닭을 알 것 같지 않니?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성경 속의 리디아도 아마 힘이 셌을 거야. 그랬을 것 같아. 그 힘은 마음의 힘이고 다정함의 힘이지. 다정함은 힘이 아주 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