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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은 마음

by 스프링버드


샐리,


<닐스의 신기한 모험>은 내가 어릴 때 정말 좋아했던 책이야. 책을 읽으며 설레던 마음이 지금도 생생하네. 사람 아이가 엄지손가락만 하게 작아져서 거위 등을 타고 야생기러기 떼와 같이 하늘을 날아가다니! 닐스의 모험 이야기를 읽으며 얼마나 닐스가 부러웠는지 몰라. 샐리, 너도 어딘가로 멀리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니?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말이야. 그리고 그곳은 아주 멋진 곳이어야 하지.



셀마 라게를뢰프 글 / 라쉬 클린팅 그림, 김상열 옮김, 마루벌, 2006(1쇄)



스웨덴 어느 마을에 닐스 홀게르손이라는 소년이 살았습니다.
어디 한 구석 칭찬할 데가 없는 아이였어요.
하지만 먹고 자고 말썽 부리는 데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답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돼. 닐스는 정말 그런 아이일까? 내가 보기에는, 나쁘다기보다 너무 심심한 아이 같은 걸. 하루가 너무 재미없어서 괜스레 창문도 깨고 싶고 동물도 괴롭히고 싶고 엄마나 아빠한테 심통도 부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닐스의 마음속에는 답답한 덩어리가 있었을지 몰라. 닐스 자신도 설명할 수 없고 어른들도 그 정체를 모르는 답답함 말이야.


사건은 어느 일요일 아침에 벌어져. 닐스의 엄마와 아빠는 교회에 가면서 닐스한테 명령해. "교회에 안 갈 거면 설교집이라도 읽어! 나중에 검사할 거야!" 설교집이라니! 닐스 엄마는 한숨을 짓지. "어떻게 하면 닐스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 이대로 가다간 아무런 쓸모없는 인간이 될 텐데.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세상에, 어떻게 아이에게서 '쓸모없는 인간'을 떠올릴 수 있지?


닐스는 집에 혼자 남아서 마지못해 책상에 앉아 설교집을 읽기 시작해. 엄마의 말을 들으려고 노력하는 닐스가 나는 놀랍네. 아무튼 설교집이 너무 따분해서 닐스는 읽다가 잠이 들었어. 그리고 문득 잠이 깼는데 톰테라는 꼬마 요정이 보이는 거야. 심심한데 잘 됐다! 닐스는 톰테를 괴롭히다가 뺨을 얻어맞고 기절해.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 몸이 엄지손가락만큼 작은 크기로 변한 거야. 자, 이제 모험이 시작될 준비가 됐어.

모험에는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있어. 바로 우연이지. 우연에 우연에 또 우연이 겹치며 시작되는 짜릿한 모험. 이런 모험을 우리는 한 번쯤 꿈꾸지 않니? 닐스 앞에는 모험의 길이 활짝 열려있었어. 어쩌다 보니 집에 혼자 있었고, 우연히 톰테가 나타났고, 계절은 하필이면 철새가 이동하는 때여서 하늘에는 회색기러기떼가 날아가고 있었고, 마침 집에는 모험심 강한 어린 거위가 있었지.


이 어린 거위 모르텐이 닐스의 모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마지막 한 조각의 우연이었지. 모르텐은 하늘을 날아가는 야생기러기들을 보며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어. 트인 하늘보다 편안한 집을 좋아하는 집 거위, 잘 날지도 못하는 어린 거위가 말이야. 모르텐은 야생기러기떼를 보며 외쳤어.


기다려! 나도 가고 싶어!


이렇게 해서 닐스는 어린 거위 모르텐의 등에 타고 야생 기러기떼를 따라 스웨덴의 전 지역을 여행하게 돼. 사실 이 책은 스웨덴 어린이들에게 스웨덴의 지리와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기 위해서 쓴 교육용 이야기였다고 해. 하지만 이 책을 놓고 공부를 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을걸. 이건 순수한 모험이야기야. 대단한 모험 이야기! 닐스와 모르텐 그리고 야생기러기떼는 스웨덴의 여러 지역들을 고루 다녀.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과 동물, 색다른 자연을 만나며 모험을 하지.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내가 가장 신났던 대목은 닐스가 거위 목에 올라타는 순간이야. 집을 영영 떠나는 바로 그 순간.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 순간. 멀어지는 집을 내려다보던 그 순간. 모르텐이 땅을 박차고 날아오를 때 닐스가 달려가 거위 목에 매달렸던 건 강한 충동 때문이었을 거야. 따분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렬한 갈망.


벗어나고 싶고 떠나고 싶은 마음은 짝이 있는 것 같아. 그건 바로 어딘가로 가고 싶은 마음이야. 말하자면 둘은 쌍둥이 마음이랄까. 닐스는 떠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어딘가로 가고 싶었을지 모르지. 자기도 모르는 뭔가가 있는 곳으로 그걸 찾아가고 싶었을지도.


이 이야기는 두 어린아이가 이끌어가. 한 아이는 닐스고 다른 한 아이는 모르텐이지. 둘은 야생기러기떼와 함께 이동하면서 서로를 자기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게 돼. 모르텐은 거위니까 사람보다 빨리 어른이 돼서 예쁜 회색기러기 둔핀을 만나 사랑을 하고 새끼들을 낳아. 모르텐은 여행을 하며 몸도 마음도 훌쩍 성장을 해서 어른이 됐지. 모르텐의 성장은 빠르고 눈에 드러나. 하지만 닐스는 여전히 사람 아이고 아직도 어린 모습 그대로야. 닐스의 성장은 몸이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났지. 세상을 배우면서 말이야. 스웨덴 곳곳을 다니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을 보고, 어려움에 빠진 독수리를 구해주고, 못된 여우를 혼내주고, 절망에 빠진 남자를 도와주면서 닐스는 세상을 알아가.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 그건 자기가 아는 집과 동네, 가족과 마을 사람들보다 더 큰 세상을 발견하는 일이지.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또한 발견하는 일이기도 해. 모르던 세상 속으로 탐험하듯이, 모르던 내 마음을 탐험하는 거야. 어려운 이를 보고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내 안에 있었음을 알고, 내 안에서 사랑을 일깨우고, 좁은 나의 세상이 다른 많은 세상들 중 하나에 불과하단 걸 깨닫는 과정이 세상 밖에서 그리고 마음 안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거야. 모험을 하면서 말이야.


닐스에게 모험은 자기 안에 들어있는 선량하고 현명한 마음을 발견하는 기회였어. 닐스는 '어디 한 구석 칭찬할 데가 없는' 아이가 아니라 원래부터 좋은 아이였지만 그걸 몰랐을 뿐이야. 모험은 열쇠가 아니었을까? 내면의 보물이 들어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열쇠. 그러니 모험은 다른 말로 '발견'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구나.


닐스처럼 거위 등을 타고 철새들을 따라 멀리멀리 날아가고 싶었던 어릴 때의 내 충동은 그러니까 '발견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걸 알겠어. 새로워지고 싶은 마음, 답답한 이 상태를 깨고 나가고 싶은 마음. 와, 하고 탄성을 터뜨리며 감탄하고 싶은 마음. 보물을 찾아서 높이, 멀리 날아오르고 싶은 마음. 더 멋지고 더 자유로운 내가 되고 싶은 마음. 성장하고 싶은 마음. 모든 사람에게 고유하게 있는 마음. 이건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될 마음이지.


닐스가 모험을 하며 집을 떠나 있었던 사이에 엄마와 아빠는 변했을까? 내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아. 닐스의 엄마는 돌아온 닐스를 보고 말하지. "아니, 닐스! 많이 크고 의젓해졌구나!" 엄마는 겉으로 드러난 닐스의 행동이나 말투나 표정밖엔 볼 줄 몰랐지. 닐스는 언제나 닐스였는데 말이야.


닐스는 집으로 돌아왔고 야생기러기떼는 다시 떠나야 해. 이제 헤어질 시간이야. 모험을 끝낼 시간. 헤어지는 장소는 바닷가네. 기러기들은 바다를 건너갈 거야. 그들은 닐스 주변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가까이 오지 않아. 원래 크기로 돌아온 닐스가 낯설고 무서워서. 하지만 기러기떼의 지도자고 닐스의 진짜 모습을 볼 줄 알았던 지혜로운 기러기 악카는 닐스 곁으로 내려앉았어. 닐스는 악카를 품에 안지. 그리고 악카의 등을 토닥이면서 목을 어루만져주었어.


닐스는 새들이 오랫동안 슬퍼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기러기들이 헤어지는 것을 가슴 아파할 때 작별을 고하고 싶었습니다.



새들은 뼈에 구멍이 많다고 해. 되도록이면 가볍게 날기 위해서. 몸처럼 마음도 가벼운 게 좋은가보다. 오랫동안 슬퍼하지 않는다니. 그래서 새들은 그렇게도 가볍게 하늘을 멀리 그리고 높이 날 수 있나 봐.


닐스는 너무 오래 집을 떠나 있다 보니 집이 그리웠어. 집은 좋지. 변하지 않은 집은 편안해. 하지만 닐스는 언젠가 다시 떠나고 싶어질지 몰라. 더 큰 세상을 향해서, 더 자유로운 자유를 찾아서, 더 멋진 발견을 하려고 말이야. 그래서 닐스의 모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는 게 아주 적절한 것 같다.



대열은 잘 정돈되어 있었고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빠르게 날아갔습니다.
닐스는 문득 멀리 사라져 가는 새들을 따라가고 싶었습니다.
다시 엄지소년이 되어 기러기들과 함께
바다와 육지 위를 날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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