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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Oct 20. 2022

수제 버거에 대한 고찰

Burger & Life

버거는 다 좋아하지만 대체로 전문점의 것을 선호한다. 조금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패스트푸드점 말이다. 맥도날드, 이삭 버거, 파이브 가이즈, 쉐이크 쉑, 모두 프랜차이즈형 패스트푸드 가게다. 이런 가게들의 특징은 정확히 내가 예측할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낸다. 엥겔지수를 일정 수치 이하로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버거는 매일 먹어야 하니까. 


반면 한국에서는 개인이 운영하는 버거 가게가 강세고, 이런 가게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몇 가지 있다. '정통', '미국식', '수제 버거'. 원조와 역사를 따지기 한국인의 습성상 '정통', '미국식'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대관절 수제 버거란 뭘까? 


'수제'라는 말은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손으로 직접 만들었음을 뜻한다. 머릿속에 '수타면'이 떠오른다면 지극히 정상이다. 보통 벽이 유리로 된 가게 안에서 양손에 밀가루가 잔뜩 묻은 장인이 손수 밀가루를 반죽해 그 자리에서 면을 직접 만들어 낸다. 풀어서 쓰면 '수제 짜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수제 버거집에서 번을 반죽하고, 생고기를 치대어 패티를 직접 만드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몇 년 전 홍대에서 '아이 엠 어 버거'라는 가게를 처음 갔을 때,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쪽문 바깥에서 막 구운 번을 부지런히 나르는 풍경을 본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아이 엠 어 버거가 서울 시내 곳곳에 지점을 내면서 그런 특징은 사라졌다. 지금은 똑같이 어디선가 가져온 번 위에 막 구운 패티를 올려 버거를 완성한다.


결과적으로 수제 버거집에서 직접 만드는 건 없다. 맥도날드와의 유일한 차이점은 냉동 패티를 사용하지 않고, 생고기를 직접 굽는다는 점뿐이다. 하지만 그걸 '수제'라고 부를 순 없다. 그래서 나는 '수제 버거'라는 말이 썩 편하진 않다. 단어의 뜻부터가 불분명하며, '수제'를 강조하는 가게들은 저마다 버거의 형태가 무분별하다. 적어도 나에게 버거란 왼손에 버거를 들고 오른손으로 콜라를 마실 수 있어야 한다. 젓가락질이나 스테이크 썰기 같은 특별한 테크닉이 없어도 잘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몇 년간 등장한 '수제 버거'들은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 포크와 나이프가 나오는 것부터가 어색하며, 이런 집들은 대게 버거를 한입에 집어넣기 곤란하게 만든다. 그럴 때면 마치 빙수를 떠먹듯이 조금씩 조금씩 파먹게 되는데, 먹을 때마다 온 입가에 양념과 기름이 묻어 불쾌하다. 애초에 버거는 원형으로 사방이 뚫려있기 때문에 잘라서 먹기에 좋지 않다. 행여나 버거에 나이프를 들이대면 내용물이 사방으로 쏟아지곤 하는데, 주방에서 하나하나 쌓아 올린 식재료를 내가 다시 하나하나 분리시키는 이상한 관경이 벌어진다.


수제 버거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세트메뉴가 없는 곳이 많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비싸다. 그런 곳은 대게 콜라를 3,500원에 판다. 주문하면 그냥 콜라 캔을 얼음잔과 함께 줄 뿐인데 왜 3,500원인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 '정통 미국식 수제 버거'라는 요란한 광고가 적힌 처음 보는 버거 가게에서 이런 피곤함들을 몇 번 겪으면 결국 나의 영혼은 맥도날드로 돌아오는 것이다. 양손에 버거와 콜라를 들고, 시선은 바깥을 거니는 사람들을 향한 채, 마치 오랜 고향 친구를 만나듯 편안한 점심시간을 즐긴다. 게다가 맥도날드는 쌀로 만든 번을 쓴다던가, 피넛버터를 넣는다던가 하는 이상한 짓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미국과 달리 '수제 버거'만 점점 늘어나는 이유는 차별화 때문인 것 같다. 뭐가 들어가는지 훤히 보이는 버거는 따라하기가 너무 쉽다. 하지만 맥도날드와 똑같은 버거를 만들어 판다면 맥도날드를 이길 수 없음이 분명하다. 시스템화 된 가격과 성능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차별화를 해야 한다. 남들이 쓰지 않는 독특한 고기로 패티를 만들거나, 매운맛을 첨가한 핫 치킨을 넣거나, 맛도 향도 없지만 시각적으로 튀는 아보카도를 넣거나.


하지만 버거는 차별화가 정말 어려운 음식이다. 내가 생각하는 맛있는 버거는 짜지도, 맵지도, 시지도, 달지도 않은 버거다. 소고기로 만드는 패티는 지방의 맛에 소금을 더한 것이니 짠 건 당연하다. 그러나 짠 패티가 들어갔다고 해서 버거가 짜선 안된다. 이럴 때는 소스가 첨가되지 않는 양파나 부드럽게 고기 기름을 먹을 수 있는 식감의 번이 받쳐줘야 한다. 


매운맛을 원한다면 떡볶이를 권하고 싶고, 짠 음식을 원한다면 피자가 제격이다. 버거의 백미는 여러 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는 것에 있다. 그래서 차별화가 어렵다. 아무리 맛있는 산해진미라도 그 특유의 맛이 강한 재료는 버거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별화를 시도한 수 많은 버거 가게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갔다.


개인적으론 수제 버거는 아니지만 크라이 치즈버거나 이삭 버거 같은 로컬 프랜차이즈의 활약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맛과 시스템의 균형을 유지하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지속 가능한 가게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정말 대단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가게들에서 가성비 이상의 장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버거를 주식으로 하는 나같은 사람들에겐 이거야 말로 정통 미국식 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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