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ger & Life
버거와 커피는 두 가지가 닮았다. 하나는 기호 식품이라는 것, 또 하나는 매장을 혼자 이용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는 것. 두 가지를 따로 놓고 보면 흔해 보이지만, 이 둘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버거와 커피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덮밥이나 김밥류를 파는 1인 식당들의 메뉴는 기호 식품이 아니며, 대표적인 기호식품인 술을 파는 곳은 혼자 가는 게 어색하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독특한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는 두 음식을 같이 파는 가게가 없다는 점이다. 카페에서는 샌드위치를 팔고, 버거 가게는 많은 음료를 팔지만 커피는 없다. 내가 아는 곳 중에 커피를 파는 버거 가게는 맥도날드, 버거킹, kfc, 롯데리아뿐이다.
앞서 말했듯 버거와 커피는 소비하는 문화가 다르다는 점으로 어느 정도 설명은 가능하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이 둘의 조합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버거는 탄산음료와 먹는 것이 국 룰이니까. 하지만 나는 여기에 반대표를 던지고 싶다.
나는 불과 3년 전까지 커피를 먹지 않았다. 향이 좋은 건 알겠으나 뒤뜰에 심은 나뭇잎을 씹는 것 같은 쌉싸래한 액체를 왜 먹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반대로 나는 콜라 중독자였다. 버거를 매일 먹으니까 어쩔 수 없기도 했지만, 당시의 나는 하루에 최소 코카콜라 2캔을 먹었다. 점심과 저녁 식후에 각각 한 캔 씩 말이다. 그 시절 나의 식성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데, 크리스피 크림 도넛 6개와 콜라를 밥으로 먹곤 했다. 하지만 다른 탄산음료는 일절 먹지 않았다. 사이다, 스프라이트, 환타, 심지어는 펩시까지.
블라인드 테스트로 이들 간에 맛 구별이 가능한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지만, 가능하다. 펩시와 코카콜라 중에 어느 것이 더 맛있는 가는 의견이 갈릴 수 있지만, 두 개의 맛은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 유명한 콜라 마니아인 GOD 출신 박준형도 본인의 유튜브에서 직접 검증했다. 콜라 중독자였던 나 역시 평생을 살아오면서 몇 번이나 시험대에 올랐지만 그때마다 콜라와 펩시는 물론이고, 제로 콜라와 제로 펩시까지 구분해냈다.
실제론 펩시가 코카콜라보다 더 달다. 마찬가지로 사이다와 환타도 코카콜라보다 더 달다. 이는 먹고 나서 입안에 남는 찐득함의 정도로 구분 가능하다. 그래서 이런 음료들 보다는 코카콜라가 버거와 가장 잘 어울린다.(버거는 맛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내가 콜라 중독에서 벗어나게 된 건 첫 번째 책인 "7개월간의 세계일주"를 쓸 무렵의 일이다. 당시 나는 원고를 쓰기 위해 일주일에 다섯 번 정도 카페를 갔다. 퇴근을 하면 항상 카페에 가서 두 시간씩 뭐라도 쓰곤 했다. 흔히들 말하는 적당한 소음과 긴장감을 찾아 카페를 갔던 건데 문제는 음료였다.
일단 콜라를 팔지 않는 카페가 많았다. 커피를 먹지 않는 나로서는 커피에 다른걸 탄 음료를 먹거나 과일주스를 먹어야 했는데 이런 것들은 가격이 제법 비싸다. 이런 생활이 몇 달간 이어지니 부담이 됐다. 결국 어느 날부터는 제일 싼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는 무의식 중에 한 모금씩 마셨다. 그때부턴 가게 선택의 폭도 훨씬 넓어졌다. 아메리카노를 팔지 않는 카페는 없고, 싼 아메리카노를 파는 가게는 많으니까.
그런 나날이 6개월 정도 이어지던 어느 날, 익숙하게 콜라를 마셨는데 먹고 나서 입안에 남는 특유의 찐득함이 유난히 거슬렸다. 고소한 커피 향과는 달리 무언가 냄새에서 소리가 날 것 같은 찝찝함이랄까. 결국 그 길로 탄산음료와는 작별을 하게 됐다. 대신 커피 중독자가 되어 캡슐머신까지 사들이는 지경이 되었지만.
물론 콜라를 아예 끊은 것은 아니고, 필요할 때만 먹게 됐다. 이마저도 탄산수를 파는 곳이라면 탄산수를 선택할 때가 많다. 커피를 먹기 전에는 탄산수 역시 왜 먹는지 이해 안 되는 음료 2순위였는데, 사람의 입 맛이란 건 참으로 신기하다. 10년이 넘게 콜라 중독자로 살아왔는데, 단 6개월 만에 중독에서 벗어났으니 말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은 자유롭게 버거와 콜라를 골라서 먹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여기에 내가 세운 재미난 가설이 있다. 바로 콜라와 커피는 둘 다 먹을 수 없다는 이론이다. 콜라 중독자는 커피를 잘 먹지 않고(맥심 제외), 커피 중독자는 콜라를 잘 먹지 않는다는 얘기다. 커피 중독자가 된 지난 4년간 이 이론을 여러모로 검증해 왔는데 꽤나 잘 들어맞는다.
실제로 GOD 박준형은 커피를 아예 먹지 않는다고 방송에서 여러 번 밝혔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통령이었던 도날드 트럼프도 그렇다. 장안의 화제였던 트럼프 집무실의 빨간 버튼을 기억하는가? 그걸 누르면 비서가 콜라를 가져다줬다. 그는 백악관 만찬을 맥도날드로 할 정도로 버거 마니아였고, 당연히 콜라 중독자였다. 트럼프가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버거와 커피는 서로 상극일 것 같지만, 한번 같이 먹어볼 것을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다. 생고기를 익힌 패티가 커피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경험상 그렇지 않다. 오히려 노스트레스 버거처럼 야채가 아예 없는 버거가 커피와 어울린다. 반면 다운타우너의 아보카도 버거처럼 온갖 야채가 다 들어간 버거는 커피와의 상성이 최악이다. 야채 특유의 떫은 맛이 커피의 쓴 맛과 합쳐져 강해지기 때문이다.
혹시 주변에 콜라와 커피 둘 다 중독인 사람이 있다면 제보를 부탁드린다. 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또, 이 글을 읽은 버거 사장님이 있다면 아무쪼록 에스프레소 머신의 도입을 부탁드리고 싶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수십 년째 1일 2식을 하고 있는 내가 아침을 먹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