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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Oct 27. 2022

에필로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9시 업무를 시작하기 30분 전에 눈을 뜬다. 곧장 주방에 있는 커피머신을 켜고 캡슐 커피 한잔을 내린다. "지잉~~!" 하고 아침을 깨우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면서 씻는다. 습기로 가득 찬 욕실 문을 열고 나오면 어느새 방안에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져있다. 잘 내려진 커피 컵을 들고, 어딘가에서 뒹굴고 있는 맥북을 켜서 책상 위 모니터에 연결한다. 오늘의 일정을 확인하면서 입으로 커피를 가져간다. 쌉싸름한 커피가 이제 막 양치를 끝내 알싸한 혀에 닿는 것을 신호로 뇌가 업무 모드로 전환된다.


정확히 18시가 되면 맥북을 닫고, 기지개를 켠다. 점심을 냉동 볶음밥으로 때우는 요즘은 이 시간에 제법 배가 고프다. 집 근처에는 이삭 버거, 맥도날드, 노스트레스 버거가 있다. 딱히 스트레스받는 일이 없으면 덜 자극적인 이삭 버거나 맥도날드 중에 랜덤으로 정한다. 포장해 온 버거를 'Burger Fairy, Jude'라고 새겨진 망고나무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몇 해전 생일날 친구들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그냥 한글로 '버거 요정'이라고 새기면 될 것을 굳이 영어로 하려다 실수를 했는지 'Furger Fairy'처럼 보이기도 한다. 차마 '요정'이라는 단어를 나에게 부여하긴 싫었으리라.


코로나 덕분에 재택근무 시대가 열리긴 했지만, 지난 2년간 우리는 우연이라는 것이 없는 세상에 살아야 했다. 모든 종류의 이동은 미리 계획하고 검사하지 않으면 불가능해졌고, 함께 식사를 하는 것도 자유롭지 못했다. 모르는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반사회적 행동으로 간주됐다. 세계는 계획되지 않은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하루 한번, 꾸준히 버거를 먹었다. 그럴 때면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잠시 덮어두고 온전히 버거를 먹는 데에만 집중했다. 한 번은 인간의 턱이 하마만큼 크게 벌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적도 있다. 딱 버거의 절반 정도가 한입에 베어질 만큼만. 못 생겨지긴 하겠지만 버거를 먹기엔 대단히 편리할 거다. 그러면 패티의 육즙도 치즈의 고소함도 단 1g도 놓치지 않은 채 입안에 넣을 수 있다. 버거를 통째로 넣는 건 안된다. 두 번 즐길 수 있는걸 한 번 밖에 못 즐기지 않는가. 언젠가는 반반 버거 같은 게 생길지도 모르고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버거에 대한 평을 쓰는 것을 그만두었다. 결국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정말 맛있는 버거를 먹는 것보다 버거를 파는 세상의 모든 공간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이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지난 2년간 길을 가다 우연히 발견한 가게에 들어가서 버거를 먹는 일만큼 즐거운 건 없었다. 꼭 요란하고 계획된 사건만이 내 인생에 중요한 것만은 아니다. 가뜩이나 해야 할 일이 많은 현대인의 삶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결국 나는 그 작은 행복을 글로 쓰기로 했다. 제목에 일기를 붙인 것은 평가가 아닌 기록으로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50년간 15만 명을 돌본 어느 정신과 의사가 은퇴하면서 했던 인터뷰가 생각난다.


“살아보니 인생은 필연보다 우연에 좌우되었고, 세상은 생각보다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곳이었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사소한 즐거움을 잃지 않는 한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


부디 이 글을 읽은 당신에게도 그런 사소한 즐거움을 주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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