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 요정으로 살아남기
Burger & Life
'웨이팅 필수 햄버거'
'3시간 기다려서 햄버거 먹기'
포털 사이트에 '버거 맛집'으로 검색해서 나온 블로그의 제목들이다. 인스타그램에 유명 버거 맛집을 검색하면 "웨이팅 93팀 실화세요?" 같은 후기도 많다. 언제부턴가 버거가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우는 패스트푸드에서 기다리지 않고는 먹을 수 없는 핫한 음식이 됐다.
핫한 버거는 많아졌지만 버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주변에서 나만큼 버거를 자주 먹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와인이나 커피 같은 식품은 동호회까지 만들어서 소비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버거는 여전히 인스타그램용 사진 한 장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대인관계 형성 단계에서 나의 식성이 처음 공개되고 나면 매번 약간의 어색함을 겪는다. 특히 회사의 점심시간이 그렇다. 팀 동료들끼리 점심을 같이 먹는 건 한국사회의 국 룰이지만, 말도 없이 혼자 맥도날드를 먹고 어느새 자리에 앉아있는 나의 행동이 돌발행동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부모님은 이런 나의 식성을 진작에 포기했다. 독특한 가정환경 탓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신 듯하다. 그래도 일 년에 두어 번 서울 자취방으로 반찬을 보내니 마니 할 때마다 여전히 옥신각신한다. 버거가 주식인 나는 라면 정도를 제외하면 집에서 밥을 먹을 일이 없는데 말이다.
친구들의 잔소리도 끝이 없다. 이들은 보통 나를 버거 귀신이라고 부른다. 하필 한국의 인사가 "밥 뭇나?"인 탓에, 오랜만에 안부를 전할 때마다 "어. 버거 뭇다" 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몇십 년간 반복되는 티키타카가 또다시 재현된다. "그놈에 버거" 라던가, "니 나이를 생각해라" 라던가, "너는 죽고 나면 썩지도 않을 거야" 같은 소리도 듣곤 한다. 두 달간 남미 여행을 같이 했던 친구 준은 칠레 즈음에서는 빵이라면 진저리를 쳤다.
많이 먹어서 좋은 음식은 없지만, 버거가 정크 푸드라는 데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현실을 얘기하자면 나의 모든 친구들 중에 내가 제일 건강하다. 내 키와 몸무게를 공개할 순 없지만, BMI는 20이고, 체지방률은 단 한 번도 19%를 넘긴 적이 없다. 복부지방률은 1%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특별히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로 운동을 아예 끊은 지 만 2년이 지났고, 그 사이 버거를 먹는 횟수는 더 늘어났지만 나의 인바디 수치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저 하루 두 끼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고, 그중 한 끼는 꼭 버거를 먹을 뿐이다.
버거의 종주국인 미국에는 나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사람이 있다. 이제는 70대 고령이 되었을 도널드 고스케 씨에 대한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그는 1972년 5월 17일, 동네 맥도날드에서 빅맥을 드라이브 스루로 먹은 뒤 앞으로 매일 빅맥을 먹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그것을 실천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먹은 빅맥 포장지와 영수증을 보관했으며 2004년에 2만 개째 빅맥을 먹을 때는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취재진에게 둘러싸인 채였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빅맥을 먹은 사람으로 기네스에 등극했다.
2018년에는 3만 개째 빅맥을 먹었는데 그가 60년간 빅맥을 먹지 않은 날은 단 8일뿐이라고 한다. 맥도널드 매장이 폭설로 폐점한 때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다. 매일같이 하루에 두 개의 빅맥을 먹는데도 혈당치와 콜레스테롤 수치가 매우 정상이라는 그는 50주년 인터뷰에서 "다음 고비는 아마 4만 개째 일 텐데 그때는 내가 78살 일거야. 그때가 기대되는걸"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결론적으로 버거는 건강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나는 하루에 한 끼만 버거를 먹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있다. 호주에서 1년을 지내다 돌아왔을 때 몇 년 동안 파스타를 입에도 대지 않은 적이 있다. 농장 생활을 하면서 인스턴트 파스타를 지겹도록 만들어 먹었기 때문인데, 혹시라도 내가 버거에 물리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그래서 일상에서 느끼는 이 작은 행복을 하루에 한 번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리고 주로 혼자 먹는다. 회사 점심시간에 "버거 드실 분?"이라고 잘 물어보지 않고, 그냥 혼자 먹고 오곤 한다. 이런 행동이 스스로도 설명이 되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우연히 읽은 책에서 이유를 알게 됐다.
미국의 전설적인 사회학자인 하워드 베커가 발표한 '대마초 사용자가 되는 과정'이라는 사회학 연구가 있다. 연구에 의하면 대마초를 피는데 있어 대마초 성분의 중독성이나 대마초가 얼마나 맛있고 기분을 좋게 해 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은 사회적 등물이고 학습의 동물이다. 대마초를 처음 피울 때 느끼는 기침이나 쾌쾌한 목 넘김 같은 불쾌감을 즐기는 법을 주변에서 배운다. "원래 처음엔 다 그런 거야"라는 말과 함께 이런 증상이 과정의 일부분이라고 학습한다.
결국 이들은 대마초가 좋다기보다 함께하는 사람들의 분위기, 관계 등이 포함되어 대마초 사용자가 된다는 거다. 학창 시절에 같은 반 친구들이 어떻게 담배를 피기 시작했는지를 돌이켜보면 이 연구 내용이 완벽하게 이해가 된다. 사실 담배를 피우던 그 행위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사회적 일탈 행위가 아니라 어떤 사회의 일원이 되는 순응의 과정인 셈이다.
와인과 커피도 비슷하다. 설탕이 들어가지 않는 커피를 처음 먹고 맛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만, 사회화의 과정을 거쳐 결국 먹게 된다. 결국 와인이나 커피를 좋아한다는 사실에는 커피를 마시는 분위기, 카페의 좋은 의자와 테이블, 아름다운 커피 잔, 머신, 비싼 문화를 소비한다는 사치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그래서 모든 직장인들이 출근만 하면 그렇게 커피를 마셔대는 거다.
그런 점에서 버거는 다르다. 버거는 그냥 버거다. 아무리 버거가 유행을 하고, 탈 패스트푸드가 되었다고 해도, 맛있는 것을 먹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맛있어서 먹는 것이고 배가 고파서 먹는다. 인스타 감성을 뽐내는 버거 가게가 늘어나고, 웨이팅도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직은 아무도 버거를 먹고 5단계로 구분된 그래프를 만들면서 맛을 평가하거나 버거 만드는 방법을 논하지 않는다.
그래서 버거는 주로 혼자 먹는다. 사람이 적은 가게의 홀에 앉아 홀로 창밖을 보며 버거를 먹을 때,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나라는 존재 그 자체를 느끼곤 한다. 이참에 버거 요정으로 살아남는 방법 같은 것을 만들어봐야겠다.
1. 버거는 하루에 한 끼만 먹을 것.
2. 테이스팅 노트 같은 것들로 맛을 평가하지 말 것.
3. 절대 집에서 만들지 말고 사서 먹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