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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Oct 03. 2022

버거 요정의 사정

Burger & Life

재택근무가 일상화된 지 2년, 요즘은 버거를 주 6회 먹는다. 그러나 하루에 두 번은 먹지 않는다. 일종의 코드인데, 아침을 먹지 않는 나로선 하루 두 끼 다 버거를 먹으면 다음날 뭘 먹어야 할지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거리두기랄까. 이런 꾸준함 덕분에 밥 먹는 게 제일 큰 일이라는 동료들 말에 공감이 가질 않는다. 주변에서 나를 신기하게 여기는 것도 버거를 좋아한다는 사실보다 이런 꾸준함 때문이다. 이유가 뭘까? 왜 하필 버거일까?


일본 드라마나 게임에서는 흔히 카레에 열광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이 종종 등장하곤 하는데, 일종의 일본식 메타포다. 일본인에게 카레는 한국인에게 엄마가 해준 집밥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그렇다. 내가 버거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정반대다. 절대로 집에서 먹을 수 없는, 엄마가 해줄 수 없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버거는 내가 구운 생고기를 섭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나는 절에서 자랐다. 스님인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막내아들인 아버지도 스님이 되었고, 나는 그 절에서 태어났다. 물론 나는 스님이 아니지만, 학창 시절 내내 제약사항이 많았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음은 당연하고,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너무 유명한 게 문제였다. 부산의 그 작은 동네에서는 어디를 가도 내 뒤에 '큰 스님 손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내가 치킨을 먹으면 '큰 스님 손자가 치킨을 먹는다' 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온 동네에 돌았다. 피자배달을 할 때도 집 근처의 공터로 에둘러 주문을 해야 했다. 그마저도 "어디 어디 놀이터로 갖다 주세요" 하면 장난으로 알고 주문을 안 받기 일수였다. 그러다 보니 남의 아파트에 아무 호수나 부른 다음에 가서 받아 오곤 했다.

  
애초에 불교의 교리에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내용도 없지만, 사회적 합의에 따라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거의 채식에 가까운 생활을 하셨고,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제한적이었다. 그나마 고기를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절에서 제사를 지내기 때문이었다. 의뢰인인 신도들은 스님이 아니기에 제사상에 생선, 갈비, 고기전 같은 것들이 올라갔고, 나는 남의 제사상에 올라갔던 음식들을 먹었다. 도시락 세대였기 때문에 학교 점심시간에도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고기라기보다는 보존식인 햄, 소시지, 돈가스, 참치 같은 것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먹은 맥도날드는 빨간 생고기를 익혀서 먹어본 적이 없는 나에게 신세계였다.(실제로 생고기를 불판에 직접 구워 먹는 행위는 성인이 된 후에 대학교에서 처음 경험했다.) 아 이게 고기 맛이구나. 달지도 않고 맵지도 않고, 질기지 않고 부드러운, 짭조름하면서 고소한. 스테이크 얘기가 아니라 맥도날드 패티 얘기다. 그 후로는 스님이나 할머니들이 절에 올 때 꼭 버거를 하나씩 사다 주셨다. 주로 롯데리아의 불고기 버거였는데 그것도 그때는 맛있었다. 한마디로 내게 버거는 그냥 좋아하는 음식이 아닌 영혼의 닭고기 수프인 샘이다.


가끔 그때 서면의 그 맥도날드에 다시 가지 않고 그대로 성인이 되었다면 어땠을지를 상상해본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동원참치나 스팸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가만, 동원참치나 스팸이 음식이긴 한가? 그냥 요리 재료 아닌가? 그것도 아니면 그대로 비건이 되었을까? 뭐가 됐든 그리 상상하고 싶은 결과는 아니다. 10대의 대부분을 남의 시선을 피해 눈칫밥을 먹었는데, 평생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념이나 올바름을 따지고 싶진 않다.

50년간 환자를 돌본 어느 정신과 의사의 말이 생각난다.


"살아보니 인생은 필연보다 우연에 좌우되었고, 세상은 생각보다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곳이었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사소한 즐거움을 잃지 않는 한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


버거 요정으로 사는 삶도 비슷하다. 혼자서도 매일 할 수 있는 사소한 즐거움인 버거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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