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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형 May 07. 2020

25년 된 순두부집 이야기

 

부모님은 ‘기와집순두부서초점’을 운영하신다. 남양주 기와집순두부와의 관계를 물어보는 분들이 종종 계신데 친척이다. 처음에는 같은 메뉴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차이가 난다. 자리 잡은 위치가 달라서 생긴 변화다. 올해로 25주년을 맞이한 부모님의 음식점은 어느덧 동네 터줏대감이 되었다.



알고 보면 억울한 순두부

상호에 ‘순두부’가 들어가는 만큼 주메뉴가 순두부일 것 같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순두부가 들어가는 메뉴가 많긴 하다. 그러나 전체 매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 순두부를 사용한 음식은 다른 음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해서다.


음식 가격은 식당 주인 마음대로일 것 같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손님이 기대하는 가격대가 존재한다. 일례로 자장면이 그렇다. 전복을 넣든, 문어를 넣든, 특급호텔이 아니고서는 어지간하면 만원의 벽을 넘기 힘들다. 반면 돌솥 밥은 다르다. 만원의 벽은 물론이고 전복 하나 정도 넣어주면 만 오천 원도 너끈하다. 그래도 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부럽..) 소비자의 인식은 중요하다. 물론 그 인식을 깨뜨리지 말란 법은 없다. 예상치 못한 가격을 책정할 수도 있다. 이만 오천 원 짜리 자장면을 만들어도 된다. 대신 그만큼 훌륭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만 오천 대를 맞을 수도 있다.


다시 순두부로 돌아가, ‘원가래 봤자 콩이랑 물밖에 더 있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저렴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제조과정을 보면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간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없고, 물 많이 쓰는 음식이 없다. 빨리 만들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그럴수록 순두부는 맛을 잃는다. “두부는 게으른 며느리에게 맡겨라”는 말이 있다. 인내심을 가지고 느긋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손님상에 순두부 한 그릇 올리는 데만 꼬빡 하루가 소요된다. 


故 김수환 추기경님과 아버지  (카톨릭사회복지회 200주년 장학회 행사를 우리 식당에서 했었다)


까다로운 순두부 선생

우선 생콩을 깨끗이 씻는다. 대충 슥슥 물에 헹구는 것이 아니다. 매의 눈으로 상한 콩을 일일이 골라내가며 씻어야 한다. 요새는 저장기술이나 선별기가 좋아져서 결점두(defect bean)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잘 찾아보면 몇 개씩은 꼭 있다. 순두부는 양념간장을 훌훌 쳐서 먹기에 결점두 몇 개로 맛 차이를 느끼기는 힘들다. 그래도 최대한 솎아낸다. 원두 감별사 자격증을 취득할 때 경험했다. 결점두를 제거한 커피와 그렇지 않은 커피의 차이를. 티끌 모아 태산이다. 사소한 차이가 모이면 큰 차이가 된다. 영원히 사소할 수도 있긴하지만...그래도 해나가는 게 자부심이 아닐까 싶다.


결점두를 골라낸 콩은 찬 물에서 반나절 정도 몸을 불린다. 주로 새벽에 작업하므로 전날 밤 불려놓고 퇴근해야 한다. 간밤에 물을 듬뿍 흡수한 콩은 처음 크기의 두 배 가까이 된다. 불린 콩은 다시 씻어낸다. ‘씻는다. 불린다. 씻는다.’ 간단히 썼지만 커다란 대야에 물을 몇 번이나 가득 채우고 비우는 작업이다. 이렇게 물을 많이 쓰는 음식이 또 있을까. 수도세가 만만찮다. 산골에서 지하수 쓰는 가게가 괜히 부러워진다. 요즘 들어 부러운 게 참 많다.


목욕재계하고 반들반들 빛나는 콩을 반으로 가르면 이제 막 정빙작업을 마친 아이스 스케이트장처럼 매끄럽다. 맷돌로 갈 준비가 되었다. 우리는 전자맷돌을 사용한다. 때로는 전통보다 현대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어떤 장인도 기계만큼 고르고 미세하게 콩을 갈지는 못한다. 맷돌 가는 수고가 주는 것은 덤이다. 참고로 콩 갈 때 들어가는 물의 양과 갈리는 입자크기는 순두부의 맛과 수율에 영향을 미친다. 신경써야 한다. 이 과정에서도 결점두 거르기는 이어진다. 이번엔 상한 콩뿐만 아니라 덜 불어난 콩도 거른다. 균일한 콩으로 만드는 게 가장 좋기 때문이다.


콩을 간 후에는 커다란 무쇠 가마솥에서 삼십 분 넘게 끓여야 한다. 콩의 항영양인자를 불활성화시키고 콩 단백질을 부분적으로 변성시키기 위함이다. 쉽게 말해 그래야 소화가 잘된다. 물론 콩 비린내도 잡는다. 그야말로 잠시도 쉬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두유가 솥에 눌어붙어 탄내가 밴다. 그러면 애써 끓인 두유를 모두 버려야 한다. 따라서 폭포를 벗어나기 위해 절박하게 노를 젓는 뱃사공의 심정으로 저어야 한다. 참으로 고된 노동이다.


오른쪽이 염이 더 잘든 순두부. 식감은 만들어내기 나름인데 우리는 계란찜보다 보드랍게 하는 걸 선호한다.


온 신경을 써서 두유를 끓여내면 그다음에는 더욱 까다로운 과정이 기다린다. 염 들이기다. 적정 온도로 식힌 두유에 적당량의 간수를 넣는데, 두유 온도가 너무 높거나 낮아도 염이 잘 들지 않는다. 간수가 적정량보다 한 수저 많거나 적어도, 간수 친 두유를 국자로 몇 번 덜 휘젓거나 더 휘저어도 순두부가 평소와 영 달라진다. 몇십 년 주방 경력자들도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순두부처럼 만들기 까다로운 음식이 없다고. 염들이기만 제대로 숙지해도 여러 종류의 두부를 만들 수 있다. 공장이 아닌 이상 항상 똑같은 퀄리티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새로운 25년을 위한 연구개발

우리 가게에서는 순두부를 만들어 그대로 먹기도 하고 찌개에 넣기도 한다. 찌개용 순두부는 강한 양념에 순두부 맛이 묻히기 때문에 몇백 원짜리 업소용 순두부를 사서 쓰는 게 수고를 줄이는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명색이 순두부집인데 그럴 수 있나. 게다가 25년 전통인데. 최고라고 말은 못 해도 우리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해야 한다. 누가 보든 말든 상관없이. ‘그래 봐야 순두부가 거기서 거기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발전은 끝이다.


두유의 농도나 온도, 끓이는 시간, 간수의 염도, 간수 종류 등 다양한 요소를 바꿔가며 실험을 한다. (feat. 내가 망친 연두부) 


세월이 바뀌면 입맛도 바뀐다. 꾸준한 음식개발이 중요하다. 아버지가 25년 동안 실험에 실험을 거듭해서 정립해 놓은 노하우지만 그래도 완벽할 수는 없다. 공부할수록 개선 점이 보인다. 그래서 최근에는 제조공정에서 일부를 바꿨다. 두유 끓이기에서 살짝 변화를 줬는데 단맛이 늘었다. 이런 변화는 손님들이 먼저 알아챈다. “오늘 순두부가 훨씬 고소하네요?” 홀에서 서빙하는 이모들도 모른다. 한 분이 물어봤다.


“오늘 순두부에 뉴슈가 탔어요? 고소한 냄새가 난다고들 그러시네.”

“설마요. 평소 만들던 방법에서 조금 변화를 줬어요.”


이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셨다. 이렇게 신뢰가 없어서야. 여튼 연이어 개발이 이어졌다. 부모님 때와 비교해 접근 가능한 정보의 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어 자료는 사전 찾아보고 일본어나 중국어 자료는 구글님께 물어가며 봤다. 그야말로 기술의 승리고 정보의 승리다. 그렇다고 내가 해냈다고 하기엔 아주 많이 민망하다. 기여도로 치면 한 15.74%쯤 되려나. 아이디어를 현실화해주신 분들은 두부 아저씨들이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숙련된 손끝이 아니었다면 실패를 반복했을 게다. 어쩌면 단순히 아이디어에 그치고 말았을지도 모르고. 이런 게 팀워크가 아닐까. 오늘도 우리 음식점에는 새로운 25년을 준비하는 노하우가 쌓이고 있다.


안치형 / 브런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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