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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미래 인재가 되기 위해

이스포츠 선수와 인생 2회 차

by 이싸라

저희 가족은 저녁 식사를 함께 할 때가 많습니다. 주말에는 당연하고 평일에도 자주 같이 먹습니다. 도란도란 모여하는 얘기는 거의 동일합니다. 이번 주말에는 뭐 하고 놀지 다음번에는 어디를 갈지가 대부분입니다. 노는 데 진심인 아내의 영향이죠. 이런 평온한 시간이 처음부터 저희에게 주어졌던 건 아닙니다. 저희 역시 치열했던 30대와 40대 초반을 지나서야 평온한 시간이 찾아왔죠. 평일에는 거의 대부분 일 때문에 전 집에 늦게 들어갔습니다. 제 시간이 제 시간이 아니었죠. 개인적인 약속도 제 마음대로 잡기 어려웠습니다. 아직 주니어였으니까요. 30대 중반쯤 이렇게 살면 평생 제 시간을 제가 원하는 대로 쓰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 무렵이었습니다. 삶의 방향을 틀기 시작했습니다. 운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온라인게임 회사에 몸을 담게 됐습니다.


한껏 여유로워진 몇 년 전부터 저희 부부는 새로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마냥 노는데만 관심 있는 줄 알았는데 아내도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학부모가 맞나 봅니다. 아이가 점차 커가면서 아이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합니다. AI(인공지능)가 등장한 이 마당에 아이는 뭘 해야 먹고살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어떤 경험을 해야지 이 친구가 독특하게 성장할 수 있을지도 고민합니다. 그러다 현실에 봉착합니다. 지금 당장 국영수를 어떻게 지원해줘야 하는지 구체적인 학원에 대한 얘기가 아내로부터 나옵니다. 전 생전 처음 들어본 학원들입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아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으니깐요. 전 무지했습니다. 그저 이 친구가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에 뜬구름 잡는 큰 그림만 그릴뿐이었습니다. 아내 입장에서 말이죠.


결국 자기가 아는 범위 안에서 답을 찾게 마련입니다. 전 글로 된 자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또 상당수 부모님이 얘기하는 현실이 무엇인지 글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발견한 게 중앙일보의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입니다. 이곳엔 제가 찾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바로 자녀의 교육과 관련된 자료가 말이죠. 하지만 결국 한계에 다다르고야 맙니다. 제가 갖고 있는 자원은 한정돼 있는데 선택해야 될 것들이 너무 많아서요.



도대체 무엇이 저희 자녀를 '뭔가 좀 다른 인재'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요?


아이를 가진 가정 중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고민에서 자유로운 곳이 있을까요? 작게는 가정이겠지만 크게는 커뮤니티, 국가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중에서도 관습을 깨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곳이 있습니다. 2014년 문을 연 미국의 미네르바 대학(Minerva University)이 그 예입니다. 한국도 있습니다. 재작년(2023년 가을학기) 문을 연 태재대가 그렇습니다. 신입생과 교수진 그리고 총장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한국 대학교와 비교해 파격적이지 않은 점이 없습니다. 염재호 태재대 총장은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인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학생 수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가 원하는 인재상이 있죠. 앞으로도 그에 철저히 부합하는 친구들만 뽑을 거예요. 오직 절대적인 역량만 봅니다. 괴짜라기보다는 뭔가 특정 분야에서 스스로 노력해서 성취한 탁월한 결과물이 있는 친구들입니다. 수능으로 줄 세우는 일반 대학이었으면 아마 놓쳤을 수도 있을 거예요. 의대 가는 학생들이 최고 엘리트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21세기 인재는 의대 지망생과는 길이 완전히 다르죠. (출처: 한국일보, 괴짜 같은 43명 '메기'가 모였다... 박제된 대학교육 확 깨부수러, 2023.10.04)


조한별 작가의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을 통해 알려진 세인트존스 대학교(St. John's College)도 신선합니다. 이 학교를 졸업한 작가는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4년 동안 고전 100권(+알파)을 읽고 모든 수업을 토론으로 진행하며 시험도 없습니다. 강의와 교수도 없습니다. 2학년 말이 되면 학생을 3학년으로 진급시킬지 말지에 대해 총장과 튜터들이 모두 투표해 결정을 내립니다. 최진석 철학자가 얘기하는 '건너가는 자'와 '높은 사유의 시선을 가진 자'가 딴 곳에 있지 않습니다.




온라인게임의 몇몇 타이틀은 이스포츠 종목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운 좋게도 제가 몸담았던 회사의 제품 중에서도 이스포츠 종목으로 활용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를 둔 주변분들께서 게임이나 이스포츠에 대해 물어올 때가 있습니다. 보통 이런 질문입니다. "아이가 게임에 엄청 관심이 많습니다. 프로게이머 테스트를 받아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혹은 "프로게이머로 먹고 살만큼 이스포츠 미래는 밝은가요?" 등의 미래 경력으로서의 질문이 대부분입니다. 이스포츠에 업무적으로 관여했다고는 하나 제가 담당한 분야는 비즈니스나 운영 쪽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모르는 질문이 나오면 현업에 확인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내용 중 제 눈길을 끈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이스포츠 연령대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 존재하는 어떤 스포츠 종목의 선수들에 비해서도 젊은 나이입니다.

(출처: 2024 이스포츠 실태조사, 한국콘텐츠진흥원)


팬층 역시 다른 종목이 따라가지 못할 만큼 젊습니다. 타 종목 팬층은 날이 갈수록 늙어가고 있는데 이스포츠만 젊어집니다. 이 때문에 미래 산업으로 주목받습니다. 미디어에게도 이스포츠는 희망입니다. 다른 종목은 시청률이 점점 떨어지고 새로운 팬의 증가 속도는 더디기만 합니다. 반면 이스포츠만 이를 역행합니다. 팬층은 넓어지고 나이 어린 팬들은 계속 유입됩니다. 하지만 이런 이스포츠에도 고민이 있습니다. 선수로서 활약할 수 있는 기대 기간이 너무 짧습니다. 그래서 커리어 정점도 빨라 은퇴도 빨리합니다. 아직은 유관 산업이 탄탄하지 않아 선수들은 불투명한 진로에 힘겨워합니다. 근데 제 딸의 진로를 고민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이 친구들을 오히려 '뭔가 좀 다른 인재'로 만들어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스포츠 선수의 순간 반응속도나 손을 움직이는 속도를 보면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그들도 다른 스포츠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매일마다 미친 듯이 연습합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닙니다. 자기가 원해서죠. 하지만 다른 종목에 비해 커리어의 시작과 끝이 굉장히 빠릅니다. 약점으로 보이는 이 부분이 오히려 전 제2의 인생을 사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상당수 수험생들이 20대 초에 대학진학 혹은 사회생활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친구들은 비슷한 나이에 이미 뭔가 바닥을 보고 나왔습니다. 그 경험이라면 자신에 대한 생각과 앞날에 대한 고민이 남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들이 구체적인 방향을 선택하고 뭔가를 더 배우기 위해 대학교를 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맥락 속에서 선택한 대학교가 대부분의 평범한 수험생이 선택한 대학교와 같을 것 같지 않습니다.


저희 부부 역시 다른 가정과 마찬가지로 같은 고민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애가 다른 애들과 구별돼 커갈 수 있을까. 부모 마음 똑같습니다. 저희 역시 똑같은 걸 잘하기보다는 다른 걸 스스로가 찾고 잘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최진석은 '건너가는 자'에서 말합니다. 게으른 채로 쉬운 길을 가면 결국 타인의 행복을 거들뿐, 자신의 행복을 쟁취할 수 없다고요. 눈앞에 답을 두고도 저희는 여전히 흔들립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 보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듯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것을요.


새로운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최소한 다른 걸 시키거나 다른 가게에 가야 합니다. 똑같은 상점에서 똑같은 제품을 사면서 다른 맛을 기대할 순 없으니깐요. 어떤 이들은 호기롭게 자기가 직접 상점을 만들어 자기만의 제품을 만들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희귀한 스페셜티를 파는 상점을 찾아 사 먹기도 하고요. 누가 다른 맛의 커피를 맛볼 가능성이 클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학생도 조직도 자기만의 뚜렷한 동기가 있고, 지독하게 변화를 꾀한다면 그 과정에서 그들이 좀 더 특별해질 가능성은 커질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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