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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 숲 Nov 19. 2023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너에게

안녕, 벌써 5년 만이지


가끔 엄마 침대에 누워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너를 기억해 보곤 해. 


너는 고단했지만 창창했던 20대의 창창한 삶을 살고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원인 모를 이유로 걸음이 이상해지기 시작했었고 정밀검사를 해보니 척수에 큰 종양이 생겨 발이 마비되었던 거야. 제거수술은 간단하지 않았어. 신경 바로 옆에 위치한 종양이라 수술 시 하반신 마비의 위험도 있었고 열어보기 전까진 암인지 아닌지도 모른다고 열어볼 때까진 모른다고 했었지. 


엎친데 덮친 격으로 네가 그렇게 사랑하고 믿던 남자친구는 수술 전 날 너에게 이기적인 사람이라며 온갖 모진 말을 내뱉고 이별했지. 


봄아, 그때 당시에도 삶엔 이유 모를 일들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어.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너였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자신이 없더라. 이 모든 게 끝나도 다시 내가 일어날 수 있을까. 수술이 잘못되진 않을까. 티브이에 하반신 마비된 사람들이 나오는 것만 봐도 겁이 나 채널을 돌렸었어.


너는 또 20 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남자친구랑 헤어지는 것도 덜컥 겁이 났어. 이보다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또 나타날까. 


침대에 누워있으면 마음의 무게게 온몸으로 퍼져 이렇게 한없이 땅밑으로 꺼져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어. 아무에게도 내가 보이지 않게. 그렇게 잠만 잤던 기억이 나네.


봄아 나는 가끔 침대 위 봄이에게 돌아가 손을 잡고 말해주곤 해. 그 순간들은 분명히 끝나. 분명히.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다 바뀌었다고 약속은 못하겠어. 그런데 정말 버티다 보면 한 지점의 순간이 나타나. 어두워서 어딘가 끝인지도 모르겠는 터널을 걷는데 어느 순간 불이 환하게 켜진 느낌. 무서웠던 마음들이 그 불들과 함께 녹아내리고 너는 안도하며 펑펑 눈물을 흘려. 불을 켜보니 터널이 아니라 꽃밭이었거든. 


그래서 항상 나는 너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 그때 땅으로 꺼지지 않아 주어서. 계속 걸어주어서. 이해가 되지 않는데도 열심히 살아주어서 그때 당시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좋은 일들이 축복처럼 쏟아지는 시간에도 도달하게 되었었어. 그러면서 더 단단해졌지만 타인의 아픔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깊은 사람도 되었어. 무조건 앞으로 달리는 것만 알던 나란 사람은 사실 옆을 돌아봐야 더 행복하더라.


앞으로 터널 같은 시간들은 또 올 거야. 근데 너 덕분에 나는 이제 알아. 그 터널이 시멘트로 가로막힌 서늘한 공간이 아니라는 걸. 잠시 꽃밭에 밤이 찾아온 것뿐이라는 것. 넘어져도 생각보다 아프진 않다는 것. 멋진 너는 다시 행복해질 것이라는 것.


사랑해 봄아, 


P.S. 그리고 그때 그렇게 큰 마음먹고 남자친구와도 헤어져줘서 정말 고마워. 비교도 안되게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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