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는 주로 어떤 거 쓰세요?

영화 <비포 선라이즈> 개봉 연도에 태어난 이의 한탄

by 가람

나이만 SNS 2.0세대

실체는 후기 다수자이자 눈팅족


난 미디어 학과 졸업생이다. 학과 명만 들은 사람들은 내가 SNS란 SNS는 다 섭렵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해다. 가끔 업로드 하긴 해도 내 일기장 같은 용도로 쓰고 있다. 카카오톡이 처음 나온 게 내가 고등학생 때였었는데, 어떻게 하는 건지 잘 이해가 안 갔다.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와이파이 연결하면 무료라고?’ ‘핸드폰 기본 문자 쓰면 안 되나?’ 이런 느낌이었달까. 그런데 친구들이 나한테 보낸 메시지 보니까 사진도 보낼 수 있고 이모티콘도 보낼 수 있고 단체방도 만들 수 있단다. 그러려면 친구 추가도 해야 되고 아이디도 만들 수 있고... 아무튼 복잡했다.


로저스의 확산 모형. SNS에 있어서 나는 빨간 부분인 Late Majority, 후기 다수자쯤에 속하는 것 같다. 이미지 출처 : 9CLOUDS


당시 카카오톡에는 영상통화 서비스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낸 게 라인이다. 그때 당시 유학생들 핸드폰에는 라인이 무조건 깔려 있었다. 굳이 쓰고 싶지 않지만 영상 통화가 되니 어쩔 수 없이 설치했다. 또 일본은 라인을 주로 쓰기 때문에 대학 생활을 위해서도 필수였다. 당시 우리 학과 14학번이 총 82명.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갔다가 동기들 단체 라인 방에 가입하니 나를 제외한 81명이 친구 추가 목록에 떴고, 아무 생각 없이 플러스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나는 순식간에 동기 전원과 ‘친구’가 되었다. 4년간 같이 밥 먹은 친구들은 열 명 내외. 라인에서 개인 메시지 주고받던 친구들도 그 정도다. 친구 맺긴 쉽지만 그 친구들이랑 같이 뭐 하긴 참 어려웠다.


지금도 어디 모임에 나가거나 새로운 사람들과 만날 때는 어색하게 몇 마디 주고받다가 SNS 아이디나 QR코드를 교환한다. 마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의에 어긋난다는 듯이. 오늘 만난 몇 명만 추가했을 뿐인데 그 사람의 친구의 친구, 같이 아는 사람까지 순식간에 늘어나 몇십 명이 친구 추가 목록에 뜨지만 모두 누르고 싶진 않다.


이제는 왜 24시간 내내 연락을 해야만 사교성 좋은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싸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24시간 동안 연락하면서 할 말이 끊이지 않을 수 있을까? 일본에서 가족들과 떨어져 지낼 때도 연락은 하루에 한 번 정도, 통화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했었다.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핸드폰이고 뭐고 다 신경 끄고 내 일 하고 싶을 때도 있고 카톡 하나 보낼 여유가 없을 때도 있다. 어떻게 매 순간 핸드폰을 붙잡고 있을 수 있나? 단지 연락하는 행위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내 성격 전체를 오해받는 것도 괴롭다.






손편지 찬양기


옛날에는 몇 달에 한 번 오는 편지만으로도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었다. 초등학교 4학년, 일 년 반 동안 미국에서 살던 때의 이야기다. 거리가 거리인 만큼 일본에 있을 때처럼 왔다 갔다 할 수도 없었고 통화도 무슨 전화 카드를 사서 해야 했었다. 편지를 주고받으려면 항공 우편으로 부쳐야 했으며, 메일로 사진을 보내면 한 장 다운로드하는데 10분 넘게 걸리던 때였다. 이렇게 연락하려면 수고를 들이고 일부러 몸을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뜸하더라도 더 소중하고 애틋했다.


연락을 자주 안 하는 성격 탓에 얼굴을 볼 수 없게 되면 자연스레 멀어지게 된다. 항상 마음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지만 메시지 하나 보내는 게 뭐 그리 어렵던지…. 좋은 사람들과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만 잘 고쳐지지가 않는다. 미국으로 잠시 떠나며 안타까웠던 것도 이 점이다.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매일 붙어 다녔던 친구들이 있는데 이 일을 계기로 멀어질 까 봐 무서웠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떠나기 전에 미국 주소 손에 쥐어주고 떠났다. 솔직히 도착해서는 적응하느라 정신없었다. 학교도 다녀야 했고 거기서 만난 한국인 이웃들, 학교 친구들이랑 지내다 보니 슬슬 한국 생각도 나지 않기 시작했다.


몇 개월 후, 우편함을 보니 항공 우편이 와있었다. 삐뚤빼뚤 주소를 적은 글씨체를 보니 내 또래 글씨체였다. 혹시나 해서 뜯어보니 초등학교 친구들이 보낸 거였다. 편지 봉투는 편지지며 아기자기한 스티커며 쑤셔 넣어놓은 탓에 빵빵해져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용케도 소포가 아닌 일반 우편으로 부쳤다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그 편지를 읽고 나서 아직 친구들이 나를 기억해준다는 사실과 돈 들어가는 항공 우편으로 편지를 부쳐줬다는 사실에 고맙고 미안했다. 그 뒤로 일 년 정도 미국에 더 있었는데, 그동안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같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고 고등학교는 서로 갈라졌지만 자주 만났고 지금도 여전히 초등학생 때 놀던 것처럼 어색하지가 않다.


시기 별로 모아 온 손편지들


이처럼 일 년에 한 번 연락해도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 나오던 때가 있던 한편, 요즘은 ‘연락한다’의 진중하고 애틋한 의미가 퇴색되어버린 것 같다. 카톡 하나로 사진, 동영상, 이모티콘, 선물을 보낼 수 있고 캠코더 카메라나 마이크를 설치하지 않아도 얼굴 보며 통화할 수 있기 때문일까. 눈 앞에 누가 있어도 SNS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효율성 높은 시대에 살고 있다. 연락의 빈도만으로 서로에 대한 마음을 측정한다면 영화 <클래식> 속 준하와 주희는 벌써 남남이다. 그래도 나는 요란한 빈 수레 같은 연락보다는 가끔이더라도 서로를 향한 마음이 꽉 찬 연락에 더 끌린다.






아,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날 걸

영화 <비포 선라이즈> (리처드 링클레이터, 1995)


너무 수고롭지 않아서 일까?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방식 역시 SNS는 끌리지 않는다. 반대로 나는 간편한 방식보다 정성과 수고가 들어간 아날로그식 관계 맺기가 더 좋다. 한 몇십 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그럴 수 있었을 텐데...


1995년 (이때 태어났다)에 개봉한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 ‘제시’와 ‘셀린느’는 배낭여행 중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끌린다. 이 설정을 25년 후인 2019년으로 옮겨와 보자. 기차 안에서 맘에 드는 이성을 발견했다. 예의상 간단한 대화를 나눈 뒤 쭈뼛쭈뼛 핸드폰을 꺼내며 친구 추가를 해도 되냐고 물어본다. 상대방이 수락한다면 이제 둘의 대화는 눈빛과 입술에서가 아닌, 핸드폰 액정에서 비롯될 것이다. 포스팅된 사진과 글이 상대방을 알아가는 최고의 방법이라 여기며 그것들을 보며 이야기꽃을 피우겠지. 진짜 상대방이 눈 앞에 있는데도 말이다. 운이 좋아 영화처럼 같이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영화 속에서 극을 이끌어가던 사상, 신념, 상대방에 대한 깊은 대화는 온데간데없고, 뭐 할지 검색해서 구글 지도를 보며 조용히 걸어갈 걸 상상하니 벌써부터 어색해 그 상황에서 뛰쳐나오고 싶다.


두 사람에게 파파고가 있었다면 어색한 외국어로 길을 묻는 신은 없었겠지. 이하 이미지 출처 <비포 선라이즈> (리처드 링클레이터, 1995)


SNS 아이디를 교환하면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인터넷이 터지는 곳 어디든지 상대방의 안부를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간편함을 너무 믿은 나머지 눈 앞의 상황에 100% 집중하지 않는다면 아이디를 알아서 무엇하리. <비포 선라이즈>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두 사람이 그때 그곳, 그때 내 눈앞의 사람에게 순수하게 집중했기 때문이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 함께 있는다는 시간 제약과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 이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조바심 덕분에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고 밀도 높은 대화로 하루를 꽉 채운다. 그래서 그런지 유달리 두 사람이 눈을 바라보며 대화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처음 만난 사람과 이렇게 눈을 바라보며 대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 종일 걸어 다니다가 펍에 술 한잔 하러 들어가기 전 제시는 이런 말을 한다.


-제시: “뭐가 화나는 줄 알아?”


-셀린느: “뭐?”


-제시: “기술 발달과 시간 절약을 예찬하잖아? 남는 시간엔 결국 더 많은 노동을 할 뿐이야. ‘워드 프로세서로 절약한 시간에 놀러 갈 거야.’라고 말하는 거 봤어?”


-셀린느: “그럴듯하네.”


1995년의 제시는 워드 프로세서를 비난한다. 아날로그를 찬양하는 2019년의 나는 워드 프로세서로 이 글의 초고를 쓰고 있다. 기술의 발달 자체를 욕할 수는 없어도 이로 인해 진솔한 대화, 한 글자 한 글자 진심으로 연락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있어 아쉽다. 카톡은 침대에 누워서라도 보낼 수 있지만 편지는 그렇지 않다.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사서 부치거나 상대방을 만나 직접 전달해 주어야 한다. 몸을 움직이며 한 번 더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편지를 받는 사람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구나 라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는 축하할 일이 있거나 고마운 마음을 전달할 때는 편지를 쓴다. 그렇게 내 진심을 전달한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몇몇 분들을 위해 선물을 사고 편지를 썼다. 02.NOV.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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