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루클린>으로 본 수처작주 입처개진의 자세
입국 관리국의 묘한 기류
대학교 3학년 1학기 여름이었다. 유학 비자를 갱신할 때가 왔는데 멜랑꼴리한 기분이 나를 감쌌다. 몇 달 뒤면 시작될 취업 준비와 졸업 논문의 압박, 입국 관리국에 가야 된다는 부담감, 과연 내가 일본에서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한 데 섞여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비자를 갱신해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다. 불법 체류자가 되어 추방당할지도 모르니 바쁜 와중에 학교 유학생과에서 준비해 준 서류를 작성해서 입국 관리국으로 향했을 뿐이다.
입국 관리국에 가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온다. 거기 있는 직원들은 우리 외국인에게 친절하지만 어린애들한테나 쓸 법한 일본어로 대응해준다. 간사이 공항 지상직으로 일하며 일본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을 상대로 겸양어나 존댓말을 쓰면 오히려 대화가 꼬이니 상황에 따라서는 반말도 섞어 말해야 편리하다는 걸 깨달았고 그 직원들이 내 일본어 실력을 알 리가 없으니 최대한 쉽게 말하려고 했다는 것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운터 너머에 서서 무시당하는 듯한 기분은 언제 가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졸업 후 재류 자격을 취업으로 바꾸기 위해 한 번 더 방문했지만 정말이지 적응 안 되는 곳이었다.
비자 기간 연장 신청서를 제출한 지 며칠 뒤, 우편함에 새로운 재류 카드를 받으러 오라는 엽서가 와 있었다. 수수료로 4000엔이나 하는 수입인지도 들고 오란다. 마음은 심란하게 지갑은 가볍게 하고 다시 입국 관리국으로 향했다. 대기 한지 십 분도 안 지나서 새로운 재류 카드를 발급받았다. 유효기간은 2018년 7월 1일까지. 제발 이게 취업 비자가 되게 해달라고 빌며 집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누워서 뒹굴 거리다가 내일 영화나 한 편 볼까 했는데 마침 눈에 띈 영화는 <브루클린>이었다. 별생각 없이 비자를 갱신했듯이 별생각 없이 영화를 예매하고 잠들었다.
영화 <브루클린> (존 크로울리, 2015)
당나라 고승 임제 선사의 법어.
‘있는 곳에 따라서 주인이 돼라. 그러면 서있는 곳 모두가 참된 것이다.’
‘어디서든 나그네나 머슴이 아닌 주인 같은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살라.’
그러나 별생각 없이 본 영화는 인생 영화가 되었고 좌우명도 만들게 해 주었다. 내 인생의 좌우명이자 일본에서의 남은 시간 동안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잃지 않고 내가 나의 주인이 되도록 채찍질 해준 말, ‘수처작주 입처개진’.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브루클린>에 남긴 코멘트이기도 하다. 이 한 마디와 영화 속에서 ‘에일리스’가 온몸으로 '나의 주인은 나야'라고 주장하는 듯 뿜어내는 당당한 에너지에 나는 부끄러워졌다.
영화는 1950년대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 에일리스의 생존기이며, 그녀의 선택에 의해 인생의 제2 막이 올라가는 모습을 담은 드라마다. 그녀의 모습에서 교토로 유학을 떠나 독립해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오버랩되어 보였다. 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에일리스의 눈은 단호하게 빛났다는 거다. 흐리멍덩한 눈으로 하루하루를 죽이고 있던 나와 달리, 에일리스는 당당하게 뚜렷한 목표를 향해 걸어 나갔다. 아직은 어수룩해 미국으로 가는 배 안에서는 기싸움에서 밀리기도 하고, 미국에 도착해서도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에일리스는 자신의 선택을 최고의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열심히 돈도 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태어난 고향을 뒤로하고 자신의 손으로 만든 보금자리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 '혹시 내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녔다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내가 처해있던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였던 스물한 살의 나와는 딴판이다.
아일랜드와 브루클린. 전자는 나고 자란 집, 후자는 자기 손으로 쌓아 올린 것들이 있는 새로운 집이다. 두 곳 모두 포기할 수 없는 사람과 추억이 있기에 에일리스는 선택에 앞서 망설이고 눈물을 흘린다. 그런 에일리스의 모습을 담담히 좇는 카메라는 그녀가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마다 두 눈을 클로즈업한다. 마치 에일리스를 쳐다보며 '잘하고 있어'라고 응원하는 듯이. 에일리스도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는 거야.'라고 다짐하는 듯한 올곧은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본다. 파란 문을 열고 미국 땅에 첫 발을 내딛을 때도, 고향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영영 떠나겠다는 마음으로 식료품점의 파란 문을 박차고 나올 때도, 그녀의 눈빛은 확고하다.
반복되는 내레이션의 의미
향수병으로 괴로워하는 에일리스를 보며 교회 신부님은 위와 같이 말한다. 영화 역시 신부님의 말대로 에일리스의 이야기로 이야기를 끝맺지 않고, 또 다른 이의 인생의 제2 막이 올라가는 순간을 보여 준다. 에일리스는 언니의 죽음으로 잠시 아일랜드로 돌아가지만 이제 더 이상 그곳이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에일리스가 일궈낸 커리어와 사랑은 브루클린에 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작별을 고한 뒤 다음 날 바로 미국으로 향하는 배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줄곧 에일리스의 눈을 응시하던 카메라는 에일리스 뒤에 서 있는 다른 사람으로 초점을 옮긴다.
향수병과 성장통은 에일리스에서 저 반묶음 머리를 한 여자에게 바통 터치됐다. 그리고 영화 초반 미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에일리스가 미국에서 사는 여자를 만나 도움을 받았듯이 이제는 에일리스가 성장통을 겪으려는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준다. 에일리스가 처음 미국에 입국할 때, 같은 배에서 만난 여자는 이렇게 조언한다.
“너무 순진하게 보여서도 안돼. 립스틱이랑 마스카라를 칠해줄게. 아이라이너도 약간. 똑바로 서고 신발을 잘 닦아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기침은 절대로 하면 안 돼. 무례하게 굴거나 밀어붙이지 말고 너무 초조해 보여도 안돼. 미국인같이 생각해. 어디로 갈 건지 알아야 해.”
영화 후반, 에일리스가 입국 관리국을 빠져나가는 신을 한 번 더 반복하며 비슷한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에일리스가 도움을 주는 입장이다.
“출입국 관리소에 가면 눈 크게 뜨고 다 아는 것처럼 보여야 해요. 미국인처럼 생각해요. 향수병이 걸리면 죽고 싶겠지만 견디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어요. 하지만 지나갈 거예요. 죽진 않아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태양이 뜰 거예요. 바로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희미하게 다가와요. 그러다 당신의 과거와 아무 관련도 없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거예요. 오로지 당신만의 사랑을. 그럼 깨닫게 되죠. 여기가 당신 집이라는 것을.”
얼마 전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조언하는 에일리스의 내레이션 뒤로 화면에는 새로운 인생을 위해 미국에 입국하는 이의 모습과 사랑하는 사람과 뜨겁게 포옹하는 에일리스의 모습이 교차된다.
이러한 반복과 교차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영화가 에일리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본인의 의지로 새로운 시작을 하려 하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에일리스처럼 인생의 주인 의식을 갖고 본인의 선택을 믿고 최고의 것으로 가꾸려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가는 길 모든 곳이 소중해질 거라고 믿는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삶을 벗어나 몸도 마음도 독립하고 싶다는 다짐 하나로 선택한 유학이었다. 하지만 선택했다고 끝이 아니었다. 선택한 길을 어떻게 가꿀지 역시 나의 몫이었다는 걸 왜 외면하고 지냈을까.
변명을 하자면 눈 몇 번 깜빡였는데 삼 년 반이 지나갔고, 해놓은 건 없고 자존감도 떨어져서 조바심만 났다. 내가 선택한 길이지만 그땐 참 회의감에 빠져 지냈었다. 에일리스처럼 마음속에 올곧은 심지가 있었다면 선택한 길 위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여러 상황의 노예가 되진 않았을 텐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선택한 길을 최고로 가꿀 줄 아는 에일리스의 뚝심을 본받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