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의 이름은.>으로 보는 청춘의 공허함 극복
슬럼프를 겪은 적 있나요? 있다면 어떻게 극복했나요?
이력서에서도 면접에서도 항상 마주쳤던 질문이다. 역경 극복을 어떻게 했냐는 둥, 실패 경험담을 들려달라는 둥, 일본 기업은 면접자의 위기 극복 능력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슬럼프가 올 정도로 무언가에 열심히 매진했던 적이 있던가?’라고 되묻게 된다. 아니, 애초에 살면서 슬럼프라는 걸 겪었던가?
- 아무리 노력하고 채워 넣으려 발버둥 쳐도 밑으로 가라앉는 기분.
대외적으로 따지면 그런 적이 없었다. 외국에서의 첫 자취 생활이었지만 나름 잘 적응했고 학교 생활도 순탄했다. 신입생 시절 쭈뼛쭈뼛했던 친구들도 맨날 얼굴을 보다 보니 정이 들어 절친과 타인 사이의 거리감을 유지하며 잘 지내고 있었다. 가끔 한국에 놀러 가면 외국 대학 다니며 성적도 잘 나오고 말썽 하나 안 피우는 모범생 취급을 받았었다.
그러나 나의 내면을 파고 들어가면 큰 구멍이 있었다. 아무리 노력하고 채워 넣으려 발버둥 쳐도 그 구멍은 메워지지 않았고 계속해서 날 따라다녔다. 그 구멍이 바로 ‘공허함’이었다. 좁고 깊은 내 인간관계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 일본인의 특성 때문일까 이상하게 집에 들어오면 공허했다. 그래서 일부러 약속을 만들어 돌아다니기도 하고 혼자 있을 때는 영화를 틀어 놓아 내가 허무함을 느낄 틈을 주질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피하려고 노력해도 누군가 만나고 싶어 죽겠는데 조용한 핸드폰을 볼 때나 잠들기 전 아무 소리도 안 나는 곳에서 뒤척거릴 때는 텅 빈 듯한 기분이 나를 찾아왔다. 몸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부지런히 집안일도 하고, 요리도 하고, 새로운 취미 생활을 만들어 보기도 했지만 사이사이 느껴지는 공허함은 메울 수 없었다.
신카이 마코토 (新海誠)의 작품 속 주인공들 역시 가슴에 공허함을 안고 산다. 그의 작품 속 사춘기 소년소녀는 그 나이에 감당하기 벅찬 외로움과 그리움을 끌어안고 있다. 머나먼 장소를 동경하는 이도 있고, 멀리 떨어진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이도 있다. 남녀 주인공 사이에 다른 등장인물이 거의 개입하지 않고 철저히 둘 만의 세계에서 둘 만의 관계에 집중하기 때문에 -이런 작품군을 '세카이계' (セカイ系)라고 한다. 둘의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주인공들은 삶의 전부를 잃는 듯한 열병에 시달린다. 나아가서 신카이 감독은 지독한 사디스트라고 느껴질 만큼 주인공들이 공허함에 고통받는 모습만 보여 주고 영화를 끝맺는다.
신카이 마코토가 발표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여섯 편의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아마도, 우주와 지상으로 갈려진 연인의 최초 세대이다.
私たちは、たぶん、宇宙と地上にひきさかれる恋人の、最初の世代だ。
감독의 데뷔작. 2039년 지구외 생명체 '타르시안'에 대항하기 위해 UN조사대 '리시티아' 함대에 들어간 중학교 3학년 '타카미네 미카코'와, 지구에 남아 그녀와의 유일한 연락 수단: 핸드폰 문자를 기다리는 소년 '테라오 노보루'를 그린 장거리 연애물. 미카코의 함선이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메일이 지구에 닿는 시간이 길어지고, 둘 사이는 결국 갈라진다.
그 머나먼 우리들은, 이루어질 수 없는 약속을 했다.
いつかの放課後の約束。あの場所まで、私はいくんだ。
배경은 1996년, 전쟁으로 인해 남북으로 갈라진 일본이다. 중학교 3학년인 '후지사와 히로키'와 '시로카와 타쿠야'는 먼 땅에 있는 하얀 탑을 동경해, 언젠가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어 탑까지 날아가자는 약속을 한다. 동급생인 '타키자와 사유리'도 이 계획을 듣고 동참한다. 하지만 그 해 여름, 사유리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영원한 잠에 빠지게 되고, 셋의 관계도 미묘하게 틀어지기 시작한다. 삼 년 후, 사유리의 병의 원인이 하얀 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히로키와 타쿠야는 사유리를 데리고 탑으로 날아가 눈을 뜨게 하는 데 성공하지만 사유리의 기억이 모두 사라진 채 영화가 끝난다.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가야,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どれほどの速さで生きれば、きみにまた会えるのか。
1990년대에서 2008년의 시간을 삼부작으로 나누어 그리고 있다. '타카기'와 '아카리'의 유년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제1 화 <벚꽃초>는 두 사람이 초등학생 시절 처음 만나,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함께 지낸 시간을 담고 있다. 같은 중학교에 진학하기로 약속했지만 아카리는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둘의 관계는 편지에 의존된다. 눈이 오는 겨울밤, 아카리를 만나러 간 타카기가 벚꽃 나무 앞에서 입 맞추는 장면을 뒤로하고 영화는 제2 화 <코스모스카우트>로 넘어간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타카기와, 그를 짝사랑하는 소녀 '하나에'가 등장하지만 타카기는 아직 아카리를 그리워하는 듯하다. 제3 화 <초속 5센티미터>에서는 사회인이 된 타카기의 공허한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직장도 여자 친구도 있지만, 타카기는 어린 시절의 사랑을 그리워한다. 건널목을 걸어가다 아카리와 비슷한 여자와 스쳐 지나지만 두 사람은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것은 ‘이별’을 말하기 위한 여행
それは、"さよなら"を言うための旅
어린 시절 아빠를 여의고 엄마와 둘이 살고 있는 소녀 '아스나'. 그녀의 유일한 즐거움은 자기만의 산속 비밀 기지에서 아빠의 유품인 광석 라디오를 듣는 것이다. 방과 후 비밀 기지로 가던 도중 괴수의 습격을 받으나, ' 아가르타' 별에서 온 소년 '슌'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진다. 하지만 슌은 다음날 주검으로 발견된다. 같은 날 아스나는 학교에서 새로 부임한 '모리자키' 선생님으로부터 신기한 이야기를 듣는다. 세계 각지에의 지하 세계에는 사후 세계가 존재하며, 슌의 나라 아가르타도 그중 하나라는 것과, 아가르타에는 죽은 자를 되살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 며칠 뒤, 아스나와 모리자키는 아가르타의 비밀을 파헤치는 '알칸제리'의 일원이 되고, 모리자키가 죽은 아내 '리사'를 환생시키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아스나는 알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되살리기 위해 두 사람은 슌의 형제, '신'의 도움을 받아 모험을 떠난다. 죽은 자를 되살리는 돌 '크라비스'를 손에 넣고, 생사의 문 '피니스 라테'까지 도달한다. 아내를 되살리기 위해서 살아 있는 생명을 바쳐야 했던 모리자키는 아스나의 목숨을 노리나 신이 크라비스를 파괴하여 아스나를 구해준다. 크라비스가 깨진 이상 아스나도 모리자키도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모리자키는 공허함을 이기지 못 한 채 아가르타에 남기로 하고, 아스나 홀로 지상 세계로 돌아온다.
‘사랑(愛)’ 보다 더 이전의, ‘고독한 슬픔(孤悲)’에 관한 이야기
"愛"よりも昔、"孤悲"のものがたり
주인공들의 물리적 거리를 그린 과거 작품과는 달리, <언어의 정원>은 연령이나 사회적 신분에서 비롯된 거리감을 수채화처럼 그려낸다. 구두 장인을 꿈꾸는 고등학생 '타카오'와 대낮부터 공원에서 맥주를 마시는 여자 '유키노'.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비 오는 날 오전, 공원 정자에서 마주친다. 어떠한 공통점도 없는 둘이지만, 짧은 만남 속에 이뤄지는 대화의 파편들로 서로를 알아가고, 친밀감을 넘어선 감정을 안게 된다. 하지만 유키노가 자신이 다니는 학교 선생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타카오는 속은 듯한 감정과 유키노를 향한 연심 사이에서 혼란에 빠진다.
아직 만난 적 없는 너를, 찾고 있어.
まだ会ったことのない君を、探している。
무대는 천 년 만의 혜성 도래를 앞둔 일본. 산속 촌구석 '이토모리' 마을에 사는 여고생 '미야미즈 미츠하'는 어느 날 눈떠보니 자신의 몸이 도쿄에 살고 있는 평범한 남고생 '타치바나 타키'의 몸과 바뀌어 있음을 깨닫는다. 어이없는 상황에 둘은 우왕좌왕 하지만, 서로의 생활을 지켜주기 위해 여러 규칙을 정하고 신비한 뒤바뀜 현상에 익숙해져 간다. 스마트폰의 일기 앱에 서로의 몸이 바뀐 날 있었던 일을 상세히 기록하며 둘은 직접 만나지 못하지만,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방과 후의 삶까지 공유한다.
몸이 바뀌는 현상과 본래 자신이 속한 곳 이외의 삶에 익숙해져 갈 무렵, 갑자기 이 신기한 현상은 일어나지 않게 된다. 서로 왠지 모를 공허함에 날짜는 흘러가고, 어느덧 혜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날이 된다. 당일 미츠하는 이토모리 마을에서 열리는 가을 축제에 가던 도중, 혜성이 지구에 떨어지는 광경을 보게 된다. 한편, 타키는 머릿속에 있는 이토모리 마을의 풍경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림으로 옮기고, 작업이 끝날 무렵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이토모리 마을로 떠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이토모리 마을은 삼 년 전 혜성 충돌로 인해 파괴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과 미츠하 사이에 삼 년이란 시간이 있다는 걸 깨닫고 큰 상실감에 빠진다.
시간은 또 흘러 타키는 취업 준비생이 되었다. 몸이 바뀌는 현상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고, 그때의 기억도 희미해졌지만 이토모리 마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일은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져 있는 듯, 채용 면접에서 "마을의 풍경을 제 손으로..." "도쿄도 언제 사라질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기억 속에서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풍경을..."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몽타주로 지나간다.
또다시 시간은 흘러 봄이 되었고, 사회인이 된 타키는 아직까지도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눈빛으로 출근 전철에 몸을 싣는다. 동시에, 미츠하처럼 보이는 성인 여성이 전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두 전차가 스쳐 지나가는 찰나, 유리창 너머로 둘의 눈이 마주친 순간, 두 사람은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난 듯이 전차에서 내려 뛰어가기 시작한다. 마침내 계단에서 만난 두 사람이 동시에 "너의 이름은?"이라고 묻는 대사를 끝으로 영화가 끝난다.
위의 시놉시스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지금 까지 발표된 신카이 감독의 애니메이션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소재는 '엇갈리는 남녀'와 '상실감'이다. 감독은 어째서 주인공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것 일까? 이게 바로 신카이 마코토가 정한 청춘의 숙명인 것 인가. <너의 이름은.>이 개봉했을 당시 출간된 <EYESCREAM> 신카이 마코토 특집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신카이 마코토 (1973년생) 이전, 다른 분야에서 청춘의 상실감을 그린 예술가가 있다. 바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1949년생) 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 특히 청춘들은 모두 최소한의 인간관계 속에서 최소한의 할 말만 하며 어딘가 외로운 모습을 보인다. 소위 말하는 아웃사이더라고 말할 수 있겠다. ≪노르웨이의 숲≫의 주인공 '와타나베'와 '미도리'는 각각 레코드 가게의 심야 아르바이트, 지도에 해설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평범해 보이지만 둘 만의 세계에서 고요히 살아간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역시 철도밖에 모르는 '철도 오타쿠'같은 대학생으로, 자신만의 세계에서 관계와 소통을 단절하려는 것처럼 그려진다. 이외에도 ≪1Q84≫에서는 '아오마메'가 방 안에 갇혀 똑같은 일상을 보내는 묘사가 이어지는 한편, ≪태엽 감는 새≫ 도입부에 묘사된 '와타야 노보루'와 '구미코'의 일상 역시 세련된 듯하면서 태엽을 되감는 것처럼 단조롭다.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텅 빈 바, 비수기의 휑한 호텔, 매립된 바다, 초원, 개 한 마리가 플랫폼을 어슬렁거리는 교외선의 역, 수도원이 있는 그리스의 외딴섬, 터키의 황량한 들판,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홋카이도의 목장"을 떠돈다. 일본의 비평가인 사토루는 하루키의 소설들이 "공허함의 확인으로부터 시작"하며, 하루키를 공허와 싸우는 작가"라고 규정한다. (중략)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생활이라는 삶의 구체적 물질의 기반을 상실한 채 허공 위를 떠서 흘러간다. 하루키는 텅 빈 방, 텅 빈 거리, 텅 빈 세계의 공허함 위에 세워져 있는 삶의 우수, "이 텅 빈 세계 속에서" 외롭게 혼자 춤추고 있는 사람들의 그 무상의 행위를 그려나간다.
≪태엽 감는 새 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윤성원 옮김, 1995년, 문학사상, 309-310pp.
신카이 마코토는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시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영향을 받은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도 한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영향을 받았었고, 지금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저에게 있어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종의 환경 비슷한 것이 되어, 그렇게까지 강하게 의식하진 않고 있습니다. 디즈니나 지브리 작품이 많은 사람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당연히 존재해왔던 것처럼,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런 존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前略)だから僕も、一時期本当に村上春樹の作品に強い影響を受けたし、今も確実に影響下にある作家だと思うんですよね。ただ、自分にとっては村上春樹が一種の環境のようなものになってきて、それほど強い意識はしなくなってきた、という実感もあります。ディズニー作品であるとかジブリ作品であるとか、多くの人にとって生まれた時からそこに自然に存在しているような存在に、村上春樹もなっているんじゃないかと思います。」라고 말하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한다.
신카이 감독은 고등학생 시절, ≪노르웨이의 숲≫으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접했다. 감독은 “주인공 와타나베는 왠지 저에게 히어로와 같은 존재로 다가왔습니다.” 「主人公であるワタナベくんがなんだか自分にとってのヒーローのように思えたころがありました。」라며 사춘기를 벗어나던 시기, 와타나베가 느끼는 고독과 타인과의 거리감에 동경해왔다고 얘기한다. 덧붙여 청춘의 고독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신카이 마코토 역시 나처럼 대학생 때 상경해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핸드폰도 SNS도 없이 혼자 살던 시절에 대해 그는, “그 고독했던 시간, 홀로 보냈던 시간이 분명 제 자신을 어른으로 만들어 줬다고 생각합니다.” 「この孤独な時間が、一人きりでいる時間がきっと自分自身を大人にしてくれるんだろうな、と思っていたんですね」라며, 고독이 성장의 양분이 되어 주었다고 말한다. 사춘기 시절 소설을 통해 동경해왔던 고독을 대학생이 되어 피부로 느끼고 그걸 자신을 성숙하게 하는 비료로 삼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개인적 경험이 작품에 반영된 결과 사춘기 소년소녀가 고독을 느끼고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것이 아닐까라고 해석된다.
신카이 마코토 작품 속 주인공들이 가슴속에 품고 있는 고독, 상실감을 무라카미 하루키는 ‘결락’ 이란 표현으로 대신한다. 1995년 임상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河合隼雄)와의 대담을 풀어낸 책에서 결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 자신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저란 인간은 병들어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병들어 있다기보다는 결락 부분을 안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많든 적든 태어날 때부터 결락 부분을 안고 있는 존재로, 그걸 메우기 위해 각자 여러 가지 노력을 하는 것이지요.” 「ぼく個人のことを言いますと、ぼくという人間は、自分ではある程度病んでいると思う。病んでいるというよりは、むしろ欠落部分を抱えていると思います。人間というのはもちろん、多かれ少なかれ、生まれつき欠落部分を抱えているもので、それを埋めるためにそれぞれいろいろな努力をするのですね。」또한, 결락 부분이 결코 인간에게 있어 부정적인 것이 아니며, 당연한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결락을 메우다 (欠落を埋める)'라는 행위는 어떤 것일까. 신카이 마코토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사춘기를 맞아 고독과 상실감을 안고 산다. <너의 이름은.> 이전 작품들에서는 그 허무함에 굴복해 마음의 결락을 메우지 못한 채로 영화는 끝나 버린다. 하지만 <너의 이름은.>에서 만큼은 결락을 메우려 노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열쇠가 되는 것은 몸이 바뀌는 현상 (入れ替わり)이다. 영화 초반 타키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미츠하는 도시 생활에 대한 말초적 욕구, 즉 결락 부분을 몸이 바뀌는 현상을 통해 해소한다.
몸이 바뀌는 현상은 청춘 코미디 요소로 작용하는 동시에 작품 후반부에 개연성을 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인공들의 폐쇄적인 대인 관계가 그려진 전작과는 달리, 타키와 미츠하는 서로 몸을 빌려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대인 관계도 넓어진다. 상대의 몸을 빌려 다른 세계를 경험한 두 주인공은 자신이 사는 곳 이외에도 소중한 인연과 장소가 있음을 깨닫고 소중함과 무언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을 배워 나간다. 그리고 그 마음은 작품 후반부에 등장하는 혜성 충돌로부터 마을과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절실함의 씨앗이 되어 타키와 미츠하를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절실함이 운명을 바꾸어 두 사람의 기억이 희미해져도 그 마음은 둘을 잇는 ‘인연 (むすび)’이 되어주어 어른이 되어 만나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게 된다. 마침내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속 결락 부분이 메워지고 타키와 미츠하는 서로의 이름을 물으며 둘의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 나간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이 사람인지, 장소인지, 취직에 성공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영화 후반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신비한 현상과 희미해져 가는 미츠하의 기억 때문에 타키의 마음에는 큰 구멍이 뚫린 듯하다. 그리고 취준생이 된 타키는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면접을 보러 다니며 '무언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고 발버둥 친다. 이 전에도 타키는 운명이 바뀌기 전 미츠하의 죽음으로 인해 몸이 바뀌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게 되자 필사적으로 마을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 공허한 마음을 달랜다.
내 경험을 비추어 생각해보아도 공허함을 극복하고 결락을 메우기 가장 좋은 방법은 타키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욕구가 해소되었기에 공허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움직이고 움직여도 금방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나만 알고 지내던 작은 세계에서 벗어나 더 높은 차원의 욕구를 해소하려는 능동적인 태도,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소중한 인연, 그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절실함이 마음속 공허함을 메워준다.
나도 앞뒤 재지 않고 몸을 던졌었다. 사서 고생했다는 말이 딱 맞다. 학과 동아리에도 들어가 보고 학교 축제 운영회에 지원해 보고 일부러 연구보다는 활동이 많은 세미나에 참석해 여러 가지를 배웠다. 인턴 스펙을 쌓겠다며 왕복 1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회사에 갔다 오기도 했었지만 결과가 꼭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다. 면접에서 떨어질 때도 있었고 돈을 낸 것만큼 유익하지 않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괜히 나갔다가 진만 빼고 왔다고는 생각 안 한다. 특별한 경험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생각보다 빨리 공허함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경험에서 얻은 새로운 만남이나 습관들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허무한 감정에 얽매어있지 않게 해 준다.
참고문헌/인용
「テーマインタビュー #3 新海誠と村上春樹について」『EYESCREAM『新海誠、その作品と人』』、スペースシャワーネットワーク、2016年10月号増刊
河合隼雄、村上春樹『村上春樹、河合隼雄に会いにいく』新潮文庫、1996年
*본문에 쓰인 인용문은 모두 직접 번역한 것입니다. 오역, 의역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