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그립지 않아요?

교토, 시간의 향과 맛

by 가람

그리움과 반비례하는 마일리지


아니요.


일본 살이 중 한국이 그립지 않냐는 질문의 답변만큼은 면접장에서나 사석에서나 똑같았다. 비행기로 12시간 떨어진 곳에 살았던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리였고, 공항에서 일할 때는 심심하면 2박 3일이든 3박 4일이든 한국 본가로 놀러 갔었다. 대학생 때는 방학, 연휴 시즌만 되면 한 달 넘게 있다 오기도 했었기 때문에 그리움이란 감정을 잘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너무 자주 오라고 해서 가기 귀찮을 정도였다. (얼마나 왔다 갔다 했냐면 대한항공 모닝캄 회원이 될 정도였다.) 일본에서는 한국인끼리 똘똘 뭉쳐 서로 챙겨주고, 한국 음식 만들어 먹고, 한국 갔다 오면 라면이라도 하나 손에 쥐어주며 살았었다.


가족, 친척, 친구 모두 혼자 사는 거 안 힘드냐, 공부하면서, 일 나가면서 어떻게 집안일까지 하냐 라고 물어보지만 나에겐 껌이었다. 원체 깔끔한 걸 좋아하는 데다가 약간의 강박증도 있어 우리 집에 오는 사람마다 ‘지금 까지 본 자취방 중에 제일 깨끗하다.’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리고 청소, 빨래, 요리, 장 보기, 기타 잡일이 모두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됐기 때문에 더 부지런 해질 수밖에 없었다. 피곤하더라도 빨래 돌리고 눕고, 아프더라도 내 손으로 죽 끓여 먹고, 나갈 일 없어도 장 보러 나가고…. 집안일 덕분에 게을러지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원천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습관이 몸에 자연스레 배어서 가만히 있으면 더 찌뿌둥하고 괜히 할 일 없나 뒤적거리게 된다.






내가 사는 곳을 관광한다는 것 : 관광객 모드로 돌아다니기


한국 생각이 잘 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교토 탐방이다. 우리 동네에서 교토역은 지하철로 네 정거장 떨어져 있지만 도보 40분이면 갈 수 있다. 게다가 길도 다 일직선이다. 일본의 옛 수도이었던 만큼 걸어가는 길에 여행 책자에 소개되지 않은 유적들을 볼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관광객이 많고 현지인들은 점잖아 혼자서도 눈치 보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어 나 같은 뚜벅이에게 완벽한 도시다. 과제, 발표, 인간관계에 치여 스트레스가 쌓일 땐 밖에 있는 수많은 관관객 중 한 명으로 코스프레를 하고 나간다.


집 근처 산책길 겸 마트 가는 길. APR.14.




산책 하기 좋은 길과 관광 명소가 널려 있는 교토. 날짜 미상.


관광객 모드 ON인 날 만큼은 가방에서 과제물과 교과서를 뺀다. 대신 교토 관광 서적과 읽고 싶은 책을 넣고 떠난다. 내 일본어 발음이 구리게 들리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마음가짐 하나 바꿨을 뿐인데 집 앞 신호등이 달라 보이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가게 지붕에 시선이 간다. 맨날 등하교하던 길 말고 다른 길로 가다 보면 처음 보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인다. 교토의 길은 바둑형에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꺾는 방향만 기억하면 길을 잃지 않는다.


이미 알던 곳을 처음 가보는 마음가짐으로 돌아다니다 보면 해도 저물고 내 체력도 바닥이 난다. 그럴 땐 집으로 향하면 된다. 이렇게 충전한 에너지로 몇 주를 버티다가 또 어디를 걸을까 고민하고, 새로운 곳으로 향해보기도 한다. 걷다가 지치면 다시 익숙한 내 동네, 내 집로 돌아오면 됐다.






그 장소가 아닌 그 ‘때’로 돌아갈 수 없기에 그립다


향수병을 영어로 하면 homesick이다. 집을 그리워하는 병. 나아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병. 하지만 그리워 하기 민망할 정도로 가족은 가까이 있었고, 일본에는 좋은 사람들과 나의 삶이 있었다. 한국-일본이라는 가까운 거리, 끈끈한 한국인 공동체, 내 집 가꾸는 재미, 이 세 가지 이유 때문에 향수병이 나를 괴롭힐 틈은 없었다.


언제든지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이 향수병을 막아준 것 같다. 한국의 가족들은 항상 같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리움보다는 '든든함'의 감정이 더 크게 느껴졌었다. 반대로 가까운 거리라고 하지만 현재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와서 느끼는 일본은 멀게 느껴진다. 일단 일본에 가면 내 집이 없다. 남의 집에서 신세 지거나 호텔을 잡아야 한다. 핸드폰도 로밍을 해야만 쓸 수 있으며, 며칠 뒤면 돌아가야 하는 한낱 관광객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별 볼일 없는 카페에서 하루를 시작하며 마셨던 맛없는 커피가 그립고 질리도록 먹었던 세븐일레븐의 커피와 계란 샌드위치가 괜히 먹고 싶어 진다. 그때 그 장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일본에서 느꼈던 소소한 일상의 감정들은 이제 느낄 수 없기 때문에 1% 부족한 느낌이 든다.






내가 살던 곳을 관광한다는 것 : 타인이 되어 돌아다니기


나는 필요 이상의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일본에서 지내며 제일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류가 사재기하는 관광객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100엔짜리 입욕제 하나 계산하려고 줄 서있는데 앞에 사재기하는 관광객들이 있으면 화가 치밀었다. 일본에서 살고 있다는 것 때문에 작은 거 하나에 신기해하고 챙겨가려 하는 마음을 이해 못 했나 보다. 만약 지금 일본으로 갈 수 있다면 사재기족이 되어 항상 쓰던 에센셜 샴푸와 민티아, 캡슐 커피를 쟁여 오고 싶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마음만 급급해져서 모든 걸 담아오고 싶고,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놓치는 부분이 있으면 아쉬움이 커지기만 한다. 교토가 그랬다. 2018년 1월 31일, 직장을 얻어 교토에서 오사카로 거처를 옮긴 후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두 번 교토를 방문했다. 첫 번째 방문은 2018년 3월 22일, 대학교 졸업식 날. 졸업식 당일과 다음날 월차를 써 부모님과 함께 교토를 방문했다. 호텔에서 지내야 했으며 졸업식은 오후 3시인데 체크 아웃 시간 때문에 비 오는 날 아침부터 한복 입고 돌아다녀야 했던 기억이 난다. 4년 동안 내 집이다 생각하고 살았던 곳인데 마음대로 옷을 갈아입을 곳도, 두 다리 뻗고 쉴 공간도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씁쓸하게 했다. 이틀밖에 시간이 없는 데다가 하루는 졸업식으로 몽땅 써버려야 했기 때문에 시간을 내서 돌아다닐 여유 따윈 없었다. 관광은 개뿔. 오사카로 돌아오는 길에 기념품 가게에서 회사 사람들 나눠줄 과자 한 박스 사서 온 게 끝이다. 기대에 비해 시간이 부족했던 탓 일까, 대학 시절 구석구석 누비고 다녀 언제 와도 아쉬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도 괜히 뒤돌아 보게 되더라.


돌아오는 날 신칸센에서 먹었던 에키벤과 교토역에서 산 유일한 기념품. 21.MAR.18.






두 번째 방문은 퇴사 후 한국으로 돌아오기 며칠 전 직장 동료 언니와 함께였다. 언니의 시프트 탓에 당일치기로 갔다 와야 했기 때문에 이번 방문은 더 짧았다. 그래도 졸업식 같은 특별한 이벤트 없이 온전히 하루를 관광으로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저번 방문보다는 마음이 여유로웠다. 교토역에 도착해서 오가와 커피를 마신 뒤 지하철을 타고 내가 다니던 대학도 구경 가고, 관광객처럼 사진 찍고 대학 굿즈도 샀다. 산책 코스였던 교토 고쇼 (京都御所)를 걸으며 사진도 많이 찍었다. 퇴사했다는 기쁨과 오랜만에 교토에 왔다는 사실에 신나 같이 온 언니에게 나불나불 거리며 잘도 돌아다녔다. 교토의 핫플레이스 기온-시죠거리에서는 맛있는 소고기 스테이크 정식도 먹고 관광지란 관광지는 다 돌아다니다 보니 벌써 저녁이었다. 이 만보 정도 걸어 발바닥에 불이 났지만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는 아직 많았다. 기모노 체험도 못했고, 카모가와 (鴨川)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경치 구경도 못 했고, 우리 동네는 가보지도 못했다. 4년 동안 했던 것들을 하루 안에 다 담기에는 벅찼다. 교토역에서 JR선을 타고 오사카로 돌아온 우리는 도톤보리에서 철판 요리에 생맥주를 곁들이고 글리코 아저씨가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들이 놀러 올 때마다 가서 질린 난바조차도 떠날 때 아쉬웠다. ‘이젠 오고 싶어도 맘대로 못 오겠구나.’라는 마음에.


마지막 캠퍼스. 마지막 은각사. 마지막 교토 타워. 마지막 난바. 05.NOV.18.


교토 도깨비 여행이 있고 이틀 후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조금 일찍 공항으로 향했다. 출근할 때는 욕을 입에 달고 타던 열차도 그 날은 따스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사무실 입구에 있는 맥 카페와 로손, 게이트에 가기 위해 걸어 다녔던 길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젠 이 장소에 내가 개입할 일이 없겠구나.’ 그리고 ‘나의 일상도 이 장소에서 멀어지는구나.’라는 생각에. 공항 모니터로 우리 회사가 핸들링하는 에어라인 중 체크인 카운터가 열려있는 곳을 확인하고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업무 특성상 난 체크인 카운터를 구경할 일 이 없었다. 한국으로 떠나는 날 처음으로 동료들이 카운터에서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에 공항이란 곳이 더 어색해졌다. 기분이 이상해져서 가장 한가한 카운터에 가서 인사를 하고 재빨리 출국장으로 향했다.






시간의 향과 맛


할머니께서는 가끔 말씀하신다. “이 고기 집은 예전에 먹던 맛이 안 나. 옛날에는 부드럽고 양념도 구수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식구들은 ‘더 맛이 있어져서 그런 거다.’ ‘옛날 고기가 질이 더 안 좋은데 무슨 말씀이시냐.’라고 말한다. 하지만 요리의 맛이 그대로라고 해도 옛날에 먹었던 분위기와 감정까진 재현할 수가 없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아보카도 명란 덮밥. 04.FEB.18.


딸이 자취할 때 자주 먹던 음식들이라며 가끔 엄마가 일본 식재료를 사 온다. 내가 먹던 방식대로 만들어 보지만 그 맛이 안 난다. 오프 날 아침, 비몽사몽 햇살 받으며 만들어 먹는 아보카도 명란 덮밥과 한국에서 늦잠 자고 일어나 만들어 먹는 아보카도 명란 덮밥은 향이 다르다. 그릇도 재료도 똑같지만 그때 그 맛은 나지 않는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마셨던 맥주도 한국에서는 목 넘김이 생각보다 시원하지 않다. 어쩌면 ‘일본 집에서 만들어 먹는 맛’은 다시 느끼지 못할 맛들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비슷하게 표현하려고 해도 추억의 맛이라는 것은 재현하기 힘든 것 같다.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 추억의 맛을 완벽하게 느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향수병이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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