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1. 숯 검댕이 친구들의 존재 이유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노동관

by 가람

일하지 않는 자의 죄의식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저번 이야기에 이어 내가 취업 전선에 뛰어든 또 다른 이유를 설명하자면, ‘감투를 걸치기 위해서’ 다. 내 돈으로 월세를 낼 능력과 하루 종일 누워서 사탕 깨뜨리기 게임을 해도 손가락질받지 않을 방패, 소속감, 도피처를 얻기 위해 백 통 넘게 자필 자기소개서를 쓰고 일본 곳곳을 전전하며 면접을 봤다. 하나둘씩 나의 무한한 미래를 기원하는 (=너 탈락) 메일이 쌓여 갈 때마다 난 브레이크가 걸린 것 마냥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가 진심으로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 부족해서였다. 도전할 회사가 줄어들수록 심리적 도피처도 줄어들었고 루저가 된 기분에 휩싸였다.


몸무게가 10kg이나 줄었다. 아이러니하게 인생 최고의 암울기에 인생 최고의 몸매를 만들 수 있었지만 집 밖으로 나가진 않았다. 먹을게 떨어지면 사람이 다니지 않는 새벽에 집 앞 24시간 마트로 향했다. 우유, 계란, 술, 야채, 군것질거리를 담아 계산대에 올려놓고 있으면 이젠 계산원의 눈치가 보였다. 쓸데없이 친절하게 “사과가 하나에 89엔, 우유가 하나에 120엔, …”이라 말하며 남들 잘 시간에 노동을 하며 나 같은 루저가 고른 물건들을 정성스레 봉투에 담아준다. 송구스럽다. 쪽팔려서 괜히 지갑을 열었다 닫았다, 핸드폰 액정을 껐다 켰다 하며 계산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냅다 집으로 뛰어 왔다.


이게 다 내가 ‘일을 한다는 것, aka 노동 =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으레 해야 되는 일’이라고 정의했기 때문이다. 면접에서 떨어지면 노동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우울의 땅을 파고 들어갔으며,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그 과정 안에 나를 돌볼 틈이 없었다. 과정을 다 생략하고 결과만을 향해 뛰어 달리는 경주마 같이 살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근대 노동관의 흐름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하 <센과 치히로>)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노동관의 뿌리부터 알아보자. 노동 능력이 있다면 일을 해야 한다는 근대 노동관이 형성된 터닝 포인트는 루터와 칼뱅의 종교 개혁이다. 16세기 루터와 칼뱅에 의해 구걸 행위가 금지되고 신체 건강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노동을 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형성된다. 이후 중세 시대는 시민의 노동력에 의해 사회적 지휘가 정해지게 된다.


종교 개혁에 의한 노동관의 변화가 종교의 연장선상이었다면, 중상주의의 도래에 의한 변화는 오늘의 노동관에 한 발자국 가까워진다. 16세기에서 18세기, 왕권은 중앙 집권화를 위해 재(財)를 모으려 했고, 새로운 산업 형태인 ‘매뉴팩쳐’도 등장하게 된다. 또한 중세 시대 수도원이나 호스피스 등이 일할 수 없는 자들을 수용하던 역할을 근대에 들어서는 영국의 ‘구빈원 (poorhouse)'이 계승하게 된다. 노동 행위가 표준, 규범으로 여겨진 증거는 이때 제창된 법에 있다. 1531년 헨리 8세가 제창한 ‘구빈법’에 의하면 노동하지 않는 건강한 인간은 채찍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1536년 법이 개정되어 채찍형은 사라졌지만 강제 노역형이 대신 도입되었다. 1601년 제창된 엘리자베스 구빈법은 구빈원 사람들에게 의식을 제공하는 등, 이전보다 강제성이 떨어지는 듯 보이나 대가로 노동을 요구한 면에서 인간은 노동해야 하는 존재라는 가치관이 여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7세기에서 18세기 사이, 계몽주의의 도래는 노동관이 좀 더 세속적인 의미로 바뀌게 된다. 노동이란 부의 원천이며, 노동을 해서 재를 축적하는 것이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그 배경에는 존 로크가 있는데, 그는 인간에게 자기 자신에 관한 소유권이 있으며, 노동과 작업 또한 소유권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자연 속에 이미 존재하는 물체에 본인의 노동력을 더할 경우 그 물체는 '노동자의 소유 = 재산'이 된다고 주장했다. 즉, 노동은 재산이라는 가치를 만들어 내고 개인의 복지, 나아가서 사회 전체의 안녕과 후생을 안정시킨다는 것이다.






숯 검댕이 친구들의 존재 이유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미야자키 하야오, 2001) 속 노동관


2017년 5월 20일, 1 지망 회사의 필기시험을 말아먹었다. 1차 면접에서 첫 질문을 완전히 씹어버려 울먹거리며 대답하고 나와 당연히 탈락을 예상하고 있던 탓이었다. 그런데 필기시험 며칠 전에 1차 면접 합격 메일이 날아왔다. 밤새우며 기업 이념, 개봉작 및 소속 프로듀서 연구 (영화 회사였다), 기타 일반 상식을 달달 외워 갔지만 역부족이었다. 벼락치기로 공부한 나는 몇 주씩 공들여 지식을 쌓아온 사람들과 경쟁이 안됐다. 1차 면접이 끝났을 때보다 기분이 더 허탈했다. 이십몇 도의 날씨에 춘추복 정장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오사카에서 교토로 돌아왔다.


몸과 정신이 피곤할 땐 낮술이지! 아는 사람에게 연락하니 낮술 파티에 동참하겠단다. 집 근처 24시간 하는 마트에서 샹그리아, 맥주, 슈크림, 마른안주를 잔뜩 사들고 왔다. 그 날 왜 <센과 치히로>를 봤는지는 모르겠다. 내 방에 있던 하쿠 용 인형을 보고 그 사람이 하쿠 좋아하냐며 ‘센과 치히로나 볼래?’ 하고 제안했다. 피곤한 육체에 술을 들이부어서 노곤했고, 지브리처럼 동화 같은 이야기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이런 이유로 면접과 시험을 말아먹은 나는 무슨 자격이 있다고 낮부터 샹그리아를 마시며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봤다.


내가 <센과 치히로>를 처음 본 것은 개봉 당시 엄마와 할머니 손을 붙잡고 영화관에 가서였다. 일곱 살 꼬맹이가 뭘 안다고 몽환적인 색채와 하쿠에 반해 영화가 끝나고 엄마랑 할머니가 집에 가자고 해도 계속 의자에 앉아있었다. DVD도 소장하고 있어 생각날 때마다 봤었고, 재개봉한다는 소식에 친구와 같이 보러 가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본 <센과 치히로>는 마냥 동화 같아 보이지 않았다.


유바바네 온천탕에서 나는 숯 검댕이 보다 못 한 아메바 정도다. 이하 이미지 출처 :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미야자키 하야오, 2001)


<센과 치히로>는 근대 노동관을 여실히 보여주는 잔혹 동화였기 때문이다. 신들을 위한 온천탕을 운영하는 유바바는 일하지 않고 쓸데없이 밥만 축내는 자들을 동물로 만들어 버린다. 치히로의 부모님 역시 돈을 내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는 이유로 돼지로 변해버린다. 유바바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동이 필수다. 아니, 노동을 하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사라져 버린다. 이 사실을 알기에 하쿠는 센을 지키기 위해 가마 할아버지네 부서에서 일하게 만든다. 가마 할아버지 부서에는 노동 = 존재 이유인 또 다른 생명체들이 있다. 바로 숯 검댕이 친구들이다. 이들은 일하지 않으면 생명을 빼앗기고 그냥 검댕이로 돌아가게 된다. 근무 시간도 제대로 정해져 있지 않고, 복지라곤 별사탕과 어둡고 습한 휴게실 밖에 없지만 그들은 가마 할아버지의 고함 소리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이 세계에는 노동자 권리 보호법 따위 없는 듯하다.


뭐하나 제대로 해낸 것 없는 취준생 주제에 대낮부터 샹그리아를 마시며 이 영화를 보던 나는 나 자신이 작은 먼지 같았다. 고된 노동의 대가로 별사탕만 받고서도 좋아라 하는 숯 검댕이 친구들보다 내가 하찮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쟤네도 저렇게 일하는데 난 뭐냐." 라며 신세한탄을 했다. 나 같은 한량은 구빈원이라도 들어가서 강제 노동을 해야 죄의식이 조금 씻겨 내려갈 것 같았다.






억지 노동을 할 바에는 센처럼 퇴사를!


이 곳 노동자들의 유일한 탈출구는 바다를 가르는 기차뿐이다.


취준 백수 입장에서 억지로라도 노동할 곳이 있는 생명체들이 부럽기만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노동자들은 온천탕에 구속되어 강제인 듯 강제 아닌 듯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존재이기에 불쌍하게 느껴진다. 말이 온천탕이지, 유바바가 재산을 불리기 위해 노동자의 이름을 빼앗고, 생명을 담보로 강제 노동을 시키는 곳이다. 존 로크의 주장대로라면 목욕탕 직원들은 노동을 통해 소유권이 확대되고 행복과 안정을 얻어야 하지만 언젠가 그곳을 떠나겠다는 다짐을 위안 삼아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다. 대학 3학년 때, 일단 아무 일이나 해서 마음의 도피처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잘 못되었는지 알 수 있다. 무조건 일을 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떻게’ ‘얼마나 행복하게’ 일을 하느냐다. 유바바네 온천탕 직원들이 빼앗긴 이름을 되찾아 진짜 본인의 모습으로 본인이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센' 퇴사 짤. jpg 노동의 구속에서 벗어나 '치히로'의 인생을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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