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로 보는 내가 취준생이 된 진짜 이유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 다섯 가지를 뽑고 그 이유를 알려주세요.
간사이 지역 광고 회사의 그룹 면접이 시작된 후 받은 첫 번째 질문이었다. ‘다섯 가지라…. 보통은 세 개만 물어보는데 많이도 물어보네’라고 생각하며 머리를 굴렸다. 다른 사람들은 스마트 폰, 자동차 (20대의 자동차 소비량 증가를 주제로 그룹 토의를 끝낸 뒤였다), 취미 등을 얘기했다. 나도 비슷하게 대답했고 영화와 고전도 얘기한 기억이 난다.
비슷한 예상 질문으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무엇인가요?’ ‘기업을 고르는 기준이 무엇인가요?’ 등이 있다. 모든 면접이 그렇지만 면접관은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라 자기네 회사와 우리가 얼마나 잘 맞는지 알아보려고 하는 거다. 상명하복이 일상인 보수적인 회사 면접에서 혁신을 외친다면 기업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 질문은 본인의 인생관이 아니라 ‘내가 너네 회사랑 이렇게 잘 어울린다’를 어필하는 게 답이었던 것 같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시작했던 첫 취업 준비
일본 대학생들은 한국과 달리 입학에서 졸업까지 모든 발걸음을 함께 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지 않은 한 휴학도, 졸업 유예도 하지 않는다. 취업 준비 또한 다 같이 시작한다. 대학 3학년 2학기가 되면 슬슬 시동이 걸리는데, 학교에선 취준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해주고 ‘자기 분석’ ‘업계 분석’ ‘기업 분석’ 수업까지 여는 등 서포트 화력이 어마어마하다. 마치 이때 취준생이 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분위기였다. 새내기 때부터 머리카락 색깔이 빨주노초파남보 다이내믹했던 친구도 이때는 흑발로 염색하고 나타나 많이 놀랐었다. 주위 사람들이 이러니 나도 깊게 생각할 겨를 없이 파도에 휩쓸리듯 취준생이 되었다.
대학에서 주최해준 ES (Entry Sheet; 이력서) 특강을 들었다. 기업별 질문 리스트를 던져주어도 모자랄 판에 나를 돌아보는 자기 분석 시간을 가졌다. 옆 짝꿍과 어색한 자기소개를 마친 뒤 나의 성격, 장단점, 스펙을 나열해 발표했다. 기껏 정장까지 입고 왔구먼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수업이 끝날 무렵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다음으로 여러분이 할 일은 ‘기업 분석’입니다. 오늘 집에 가서 입사하고 싶은 기업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기업의 핵심가치, 원하는 인재상 등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오늘 한 자기 분석 결과와 일치하는지 생각해보고, 그렇지 않다면 일치하게 보이도록 스펙과 경험을 버무리는 게 ES 합격의 길입니다.
그래서 나는 취업 준비용 바인더를 사서 기업 연구한 종이를 끼워나갔고, 자소서를 쓸 때나 면접 준비를 할 때, 내 스펙에 갖다 붙일 수 있는 키워드를 골라 제2의 인격을 가진 나를 꾸며 냈다. 꾸밈없이 대답하자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너무 소소했기 때문이다. 내 집, 술과 향초와 책을 살 돈과 소중한 사람 몇 명만 있으면 됐다. 커리어, 적금, 여행 등은 부수적인 조건이었다. 위 세 가지를 만족시키는 생활을 할 수 있다면 난 행복했다.
영화 <소공녀> (전고운, 2017)
집에 대한 의견을 빼고 보면 영화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의 가치관을 본받고 싶다. 남의 시선 따윈 신경 끄고 대쪽 같이 자기 소신대로 사는 자세. 그걸 위해 다수의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걸 포기할 줄 아는 깡! 미소는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 친구만 있다면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심지어 먹고 잘 집 조차도. 물가 인상으로 월세와 담배 값이 동시에 오르자 미소는 깔끔하게 집을 포기한다. 대신 남의 집을 청소해 주고 용돈 벌이를 하며 먹을 걸 얻어온다. 대학생 시절 가족보다 친하게 지내던 밴드 멤버들 집에서 빌붙기도 하지만 마음대로 되진 않는다. 염치없는 짓을 한다는 소리도 듣고 홀아비 선배 집에서는 감금도 당한다. 미소의 생활과 자신의 처지에 현타가 온 남자 친구는 돈을 벌기 위해 생명 수당이 붙는 외국인 노동자를 자처해 한국을 떠난다.
영화가 끝날 무렵, 미소로 추정되는 여자가 바에서 4000원짜리 브랜디 한 잔을 마시고 나온다. 머리가 하얗게 새는 걸 막아주는 약도 포기했는지 머리털은 탈색한 것만 같다. 다음으로 캄캄한 저녁, 불이 환하게 켜진 아파트 단지를 뒤로 한강 둔치에서 텐트를 치고 앉아 있는 사람의 실루엣을 비추며 영화는 끝난다. 그게 미소인지 아닌진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텐트 안에 있는 사람이 누가 됐든 안정적인 집을 포기하면서 까지 무언가를 고집하는 끈질김을 응원하게 된다. 이 영화를 본 뒤 대학 3학년 2학기 시절 미소처럼 내 취향을 고집하기 위해 취준생을 자처했던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가 취준생이 된 진짜 이유
내 행복의 첫 번째 요소는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다. 그게 집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실은 이게 나를 취업 전선에 뛰어들게 한 가장 큰 이유다. 졸업 후에도 부모님이 월세를 내주시는 건 싫었다. 잘만 찾으면 일본에서는 월세 5만엔 (50만원) 정도에 보증금 없는 집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월 5만엔 정도면 풀 옵션에 화장실 욕실 분리되고 주방 넉넉한 퀄리티의 집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월세로 5만엔이 나가고 공과금을 내고도 술과 향초와 책을 살 정도의 돈을 주는 회사를 찾아 헤맸다.
대학 4학년 1학기가 시작되기 한 달 전, 2017년 3월. 해금(解禁) 시기가 되면 기업들은 그 해 채용 일정과 상세 사항을 공개하고 이력서 접수를 시작한다. 내가 지원했던 엔터테인먼트/광고 업계는 채용 프로세스가 다른 업계에 비해 빨랐다. 이력서도 자필 아니면 안 받아줘서 매일 밤새우며 한 글자 한 글자 공들이며 이력서 열 통씩은 썼었다. 혹시라도 늦잠 잘까 선잠 자다가 아침 일찍 학교 근처 우체국 가서 이력서를 부친 뒤 도서관에서 SPI(인적성) 공부를 하다가 기업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새로운 이력서를 프린트해오고, 집에 와서는 또 새벽까지 이력서 쓰고... 이 생활의 반복이었다.
위 노력이 다 자기만의 방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부모님과 교수님은 진정으로 마음의 준비가 안됐고 끌리는 회사가 없다면 잠시 멈춰도 된다 하셨지만 그럴 수 없었다. 미소가 술과 담배를 위해 열심히 남의 집을 청소했다면 나는 자기만의 방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기업의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한 두 달이 지나고 면접 시즌이 찾아왔을 때 조금의 희망은 보였다. 웬만한 곳에서는 1차 면접에 불러줬기 때문이다. 당시 교토에서 도쿄까지 신칸센 비용은 편도 30만 원 정도. 돈이 아까워 일정을 몰아넣고 교토와 도쿄를 왔다 갔다 했지만 2차, 3차까지 불러주는 곳은 손에 꼽았다. 그리고 최종 면접까지 불러준 회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내 집에서 술 마시고 책 읽고 싶다는 소박한 꿈으로는 나의 열정이 어필이 안됐나 보다. 그렇게 계속 '기원'(탈락 메일에서 今後のご活躍を心よりお祈り申し上げます。-앞으로의 활약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가 고정 문구이다.)의 고배를 마시다 보니 4학년 1학기가 지나갔고 나 혼자 내정받은 회사가 없었다. 졸업 논문 세미나도 나가지 않고 먹지도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정처 없이 걷고 보고 싶던 웹툰 정주행하고 책만 읽었다.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것 같았다. 나는 집과 약간의 돈이 필요했을 뿐인데 하고 싶은 일까지 하려고 욕심을 부렸던 게 아닐까. 친구들이 모두 원하던 업계, 기업에 가는 게 부러웠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론 욕심을 버리고 일단 직업을 잡는 데에만 전념했다. 그리고 2017년이 다 가기 전 12월, 공항 지상직 조업사에 합격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항공 업계, 그것도 운항 관리부서. 모두들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고 부모님은 한 번 최종 합격까지 갔으니 그걸로 만족하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 하셨다. 하지만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건 내 행복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 내 돈으로 월세 내고 약간의 사치 부릴 돈만 있으면 됐었다.
나의 이런 생각을 지지해 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축하한다고 얘기해주다가도 모두들 '진심 아니지?'라고 물어보는 눈빛을 보였다. 마치 처음에는 미소를 반기다가 염치없다고 말하는 밴드부 시절 기타 치던 언니처럼.
언니: "너 아직도 위스키 마셔?"
미소: "응."
언니: "담배는 아직 피더라?"
미소: "응."
언니: "요즘 담배 값이 많이 올랐다던데, 집이 없을 정도로 돈이 없으면 나 같으면 독하게 끊었겠다, 야."
미소: "알잖아. 나 술 담배 사랑하는 거."
언니: (코웃음 친다.) "아이고, 그 사랑 참 염치없다, 야."
미소: "뭐가 없어?"
언니: "염치. 염치가 없어. 나 그냥 솔직하게 말할게 미소야. 나는 네가 염치가 없다고 생각해.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게 술 담배라는 것도, 솔직히 진짜 한심하고, 그것 때문에 집도 하나 못 구해가지고 우리 집에 와서 그런 것 까지 다 이해해 주길 바라는 네가 좀 뭐가 잘 못 됐다는 생각 안 드니? 어. 잘 못 됐더라. 아까 보니까. 우리 신랑 담배 피우러 나가는데 그걸 왜 따라가? 그럼 내가 뭐가 되니?"
미소: "미안해. 난 언니가 그렇게까지 불편해할 줄은 몰랐어."
언니: "아니, 왜 몰라 그걸. 방이 아무리 많고 집이 아무리 넓어도 남이 우리 집에 오랫동안 있으면 신경이 쓰이는 법 이야. 그걸 왜 모르니 너는?"
미소는 자기 방식대로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인데 '염치없다' '한심하다' 란 소리를 들었고, 나 역시 내 행복을 추구하겠다는데 실망의 뉘앙스를 풍기는 말을 많이 들었다. '너 정도면 더 좋은 회사 갈 수 있을 텐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왜 여기서 선을 긋고 포기하니?' 등. 그때 사귀었던 남자 친구도 이 일을 계기로 멀어지고 결국엔 헤어지게 됐다. 미소가 언니의 말을 듣고 술 담배를 끊고 알바를 하며 집을 샀더라면 어땠을까? 남자 친구는 해외로 떠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돈을 많이 벌어 술과 담배를 사고도 돈이 남아돌았을지도 모른다. 나도 더 나은 기업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다 가정이다. 행복이 코 앞에 있는데 굳이 도박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최종 합격 후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았듯이 미소는 자기만의 방식대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선택했다.
'내 집'이 생기다
결국 공항 지상직이 내 첫 직업이 되었고, 오사카로 이사를 가면서 내 집을 얻었다. 역에서 도보 20분 거리에 변기와 욕조도 붙어있고 가스도 안 들어오는 낡은 집이었지만 (태풍이 왔을 때는 전기와 수도도 끊겼었다) 월급으론 향초와 책을 샀으며 쉬는 날에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술 마시며 얘기도 나눴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가끔씩 속에서 울화가 치밀기도 했고 짠 월급에 반비례하는 업무 강도에 화병까지 생겼었다. 동료들과의 대화 끝에 내 행복을 이룰 수 있는 길은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잠시 멈춰가는 의미에서 퇴사를 결심했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처럼 내 생각과 취향을 밀어붙였다는 것에 만족한다. 또, 작은 행복을 위해 큰 희생을 하는 것이 얼마나 달콤 쌉싸름 한 건지 배웠기에 미소의 삶이 더 대단해 보인다. 이제는 다시 내 생각과 취향을 맘껏 주장하기 위한 길을 찾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