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생활 내내 혼자 지낸 건가요?

<패터슨> 씨가 부릅니다. 마젤토브 힘내 봐

by 가람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매너리즘에 빠지다


원래대로라면 그들은 자신들의 (가볍기만 했던) 이야기가 마무리될 시점에 도달했다. 낭만적 모험은 이제 지나갔다. 지금부터의 삶은 안정적이고 반복되는 리듬을 탈 테고, 한 해 한 해가 외형상 너무 비슷하여 그들은 종종 구체적인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려면 멀었다. 이제부터는 이 흐름 속에 더 오래 견디면서 촘촘한 체로 흥미로운 알갱이들을 잡아내야 하는 문제가 되었을 뿐이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지음/김한영 옮김, 은행나무, 2016, 71pp.


대학 졸업 후 간사이 공항에서 일했던 시절, 너무나도 외로웠다. 일은 익숙해져서 방에만 있기에 심심했지만 만날 사람은 없었다. 대리만족이라도 할 겸 휴가 때 한국에서 사 온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집어 들었다. 초반 몇 장은 달달하다 못해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하지만 몇 장뿐이었다. ‘낭만적 연애’의 과정과 달콤함은 책의 10%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 90% ‘그 후의 일상’은 두 주인공이 연애와 결혼이란 틀에 갇혀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였다.


연애의 달달한 시간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간다. 처음 만난 날, 두 번째 데이트 때 나눴던 소소한 대화와 음악, 처음 키스했던 날의 날씨는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그려지지만 어째서인지 그 후의 기억은 실뭉텅이처럼 엉켜 뭐가 언제고 뭐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놀라운 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지는 날들은 전체 이야기의 극히 일부라는 것.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래 왔다.






일상생활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 3학년 생활 기록부에 따르면 나는 ‘어딜 가나 적응이 빠른 학생’이다. 이런 성격 탓인지는 몰라도 대학 생활과 나 혼자 지내는 생활은 금세 매너리즘에 빠지고 말았다. 회화가 안돼서 쩔쩔매던 건 1학년 1학기가 지나고 나니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대학 생활도 일 년 겪으니 패턴이 눈에 훤히 보였다. '봄 학기-여름 방학-가을 학기-연말연시-봄 방학'이 네 번 반복된다고 보면 된다. 자기만의 방에서 나만의 취향과 생활 습관을 개척하겠다는 다짐 역시 금방 이뤄졌다. 5년간 혼자 살던 때의 패턴의 대부분은 대학 1학년 1학기 때 만들어진 것이다. 고작 몇 개월의 시행착오 이후의 삶은 정해진 궤도를 반복해 달리는 순환선 같았다.


하지만 매너리즘이라는 게 꼭 독이라고 볼 순 없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게 내 루틴이고 취향인 것이다. 그리고 그 루틴이 내 생체 리듬에 맞기 때문에 굳어진 것이 아닐까. 열아홉 살 때 까지는 가족의 틀에 갇혀 마음대로 생활하지 못했지만, 그 고삐가 풀리고 나니 자유롭게 내 패턴을 정립할 수 있었다. 식사하는 시간과 식사량, 물건의 배치와 색 조합, 방 안의 향기와 온도 모두 나의 취향에 맡길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


좋아하는 것들로만 꾸민 나의 첫 자취방.

보통의 하루는 다음과 같다. 오전 9시쯤 일어나 노래를 틀고 버즈 멤버들 얼굴이 그려진 머그컵에 카페 라테 한 잔을 마신 뒤 씻는다. 나갈 일이 있으면 화장을 먼저 하고 외출하기 전에 식사를 하고 나간다. 가방에는 항상 B5 사이즈 노트와 마실 것이 들어 있다. 들어오는 길에는 간단한 저녁거리를 사 온다. 저녁 시간에는 일기를 쓰고 저녁 메뉴와 함께 반주를 한다. 그 후 영화를 보거나 반신욕을 한다. 자기 전에 스쿼트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 습관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공항에서 일하던 때도, 퇴사 후 한국으로 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학생에서 직장인 그리고 고학력 반백수로 사회적 신분은 바뀌었지만 습관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더 도전적이고 색다른 패턴을 만드려 일부러 노력해도 다시 내 생활로 돌아왔다.






반복적인 삶을 대하는 슬기로운 태도

영화 <패터슨> (짐 자무쉬, 2016)


뉴저지주 패터슨시에 사는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의 생활 역시 나 못지않게 매너리즘에 빠져있다. 아내와 함께 아침 6시에 기상해 시리얼을 먹고 출근한다. 버스 운전대에 앉아 동료와 얘기를 하기도 하고 시를 쓰기도 한다. 점심시간에는 공구가방 같은 도시락 통을 옆에 두고 시를 쓰며, 퇴근할 때는 집 앞의 기울어진 우체통을 바로 잡고 들어간다. 아내와의 저녁 식사 후 애완견을 산책시키고 바에 들려 술 한잔을 하면 그의 하루는 마무리된다. 정해진 버스 노선처럼 반복되는 패터슨의 일터에서 유일한 변주는 승객들의 대화와 바에서 일어나는 일 정도이다.


같은 듯 다른 듯한 패터슨의 일주일. 이하 이미지 출처 : 영화 <패터슨> (짐 자무쉬, 2016)


같은 일의 반복이라고 해서 그의 일상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는 투철한 직업 정신을 가진 버스 운전사이며, 집에는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반려견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시내에 자가 저택이 있다. 이 정도면 나름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 아닌가! 패터슨은 이런 사실에 딱히 감사를 표하지는 않으나 자신의 삶을 지루해하며 비관하지도 않는다. 일상 속 여러 변주를 즐기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할 뿐이다.


어쩌면 패터슨 동네에서 정상인은 패터슨씨 한 명 일지도.


집에서 쓰는 성냥 브랜드가 바뀐 일로 사랑의 시를 쓰는 창의성을 발휘하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엄마를 기다리는 소녀의 운율이 맞지 않는 시를 들어주며 감탄하기도 한다. 개와 산책 중에는 동내 불량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코인 세탁소에서 랩 연습을 하는 아저씨를 응원한다. 술집에서 여자 때문에 자살 소동을 벌인 남자를 제압하는 카리스마를 보이는 한편, 아내가 만든 맛없는 저녁을 물과 함께 마셔버리는 귀여운 면모도 갖추고 있다.






그는 가끔씩 일어나는 예상외의 상황에 짜증을 내거나 귀찮아하지 않는다. 나는 패터슨의 이런 태도가 맘에 든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나름대로 해결하려 노력할 뿐이다. 어두운 산책길에서 만난 불량배들은 두려움의 대상 일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이 운전하는 버스가 고장이 나서 (핸드폰도 없는 상황에서) 도로 한복판에 멈추게 되는 것은 매우 성가신 일이다. 이런 일이 있다면 도망치거나 오늘 일진 더럽다고 욕하는 게 인간미 넘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의 근면한 패터슨 씨는 재빨리 승객들을 하차시키고 침착하게 대처한다.


그는 프로 직업인이었다.






딱 한 번, 영화 후반부에 패터슨의 멘탈이 흔들리는 사건이 등장한다. 아내의 성공적인 컵케이크 판매를 축하하기 위해 외식을 하는 사이 애완견 마빈이 패터슨의 시가 적힌 노트를 갈기갈기 찢어 놓은 것이다. 가뜩이나 과묵한 사람이 말이 더 없어지고 혼자 있고 싶다며 지하실에 틀어 박혀 있다가 무작정 걷기도 한다.


분쇄기에 세 번은 갈린 듯 산산조각 난 노트.


그러나 이 사건도 패터슨의 패턴을 완벽히 파괴하지는 못한다. 멍때리던 도중 우연히 만난 일본인 시인의 선물을 받고 그는 다시금 시를 쓰게 되었고 일상의 궤도로 돌아간다. 패터슨에게 새 노트를 선물한 시인은 "때론 텅 빈 페이지가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영화는 끝났지만 패터슨은 페이지를 채워나가며 반복되는 자신의 일상을 채워나갈 것이다. 패터슨이 소중한 노트를 잃어 절망했을 때 우연히 선물 받은 노트가 다시금 일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듯이, 그의 생활은 궤도를 벗어나는 듯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그래서인지 영화 속 작은 변주들이 패터슨의 일상을 위협하기보다는 반복되는 리듬에 안정성을 더하는 양념 정도로 느껴진다. 마치 ‘이런 일이 있어도 나에게는 안정적인 리듬이 있어.’ ‘이딴 것 따위로는 내 생활을 망가뜨릴 순 없어’라고 말하듯이. 패터슨은 능동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는 평면적인 캐릭터다. 하지만 수용력만큼은 남다르다. 비록 자기 자신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않더라도 주위의 변화에 담담하게 대처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삶은 한 층 더 풍부해진다.






마젤토브 힘내 봐


이미지 출처: 스브스 문명 특급 캡처

숨어 듣는 희대의 명곡, 제국의 아이들 <Mazeltov>를 아시나. 히브리어로 '행운을 빈다.'라는 의미로, 행복을 전하는 인사말이라고 한다. 힘든 일이 있어도 먼데이부터 프라이데이, 새러데이, 선데이 까지 우리 모두 다 함께 힘내서 살아보자는 메시지를 흥겨운 EDM 비트에 담고 있다. 영어로 반복되는 요일명 때문에 '영어 요일명이 안 떠오를 땐 마젤토브를 부르면 된다.' 란 농담도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마젤토브 무대를 보면 중독성 있는 비트에 내면에서 흥겨움이 끓어 올라 항상 반복되는 일주일을 한번 신명 나게 즐겨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패터슨>역시 요일의 반복을 그린다. 영화는 패터슨 부부가 침대에 누워 있는 신을 총 여덟 번 보여주며 월요일로 시작해 한 바퀴 돌아 다시 월요일로 끝난다. 하지만 뉴저지주 소시민 패터슨 씨는 월요병 따위 없어 보인다. 같은 듯하며 다른 매일매일에 집중하고 시를 써 내려갈 뿐이다. 자신의 생활이 삭막하고 지루해 보일 때는 패터슨처럼 작은 변화에 집중해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나는 어쩌면 ‘오늘 하루도 똑같겠구나…….’ 하고 최면을 걸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그 최면이 변화에 대한 나의 반응을 둔감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독립된 공간에서 나만의 리듬을 찾아 열심히 살아가는 것에 감사하며 주위의 변화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졌다면 그렇게 까지 내 생활을 비관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Mazeltov 하게 Monday, Tuesday, Wednesday, Thursday, Friday, Saturday, Sunday 힘내고 웃으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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