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세미나에 4년 동안 있었네요?

우리는 알을 깨고 나오는 방법을 배운다

by 가람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


대학 1학년 2학기, 나의 은사님을 만났다. 우리 학과는 1학년 1학기와 2학기에 랜덤으로 세미나 교수님이 배정되었는데, 나의 경우 1학기는 사회 심리학을 전공하신 교수님, 2학기는 예술과 광고를 전공하신 분이셨다. 2학기 때 만난 교수님과의 인연은 졸업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고 교수님의 가르침은 내 마음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여기선 편의상 Y교수님이라 부르겠다.


처음부터 Y교수님의 수업 스타일이 잘 맞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입생 시절 아싸였던 나에게는 아주 적응하기 힘들었다. 조별 과제가 많았고 매 수업마다 즉흥 발표나 아이디어 회의, 토론이 이어졌으며 수업 참여도가 중요시됐다. 교수님의 말씀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수업이 아닌, 학생의 창의력과 사고력으로 이끌어 가는 수업이었기에 매시간마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2학년, 3학년, 4학년 졸업 논문 세미나를 모두 Y교수님 밑에서 들으며 유일하게 4년을 함께한 제자가 되었다. 교수님의 수업은 매 순간이 자극이었고 나의 한계를 깨고 나올 수 있는 자극제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스승의 역할이란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 (마이크 뉴웰, 2003)


Y교수님을 떠올리면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 (마이크 뉴웰, 2003)의 왓슨 선생님이 생각난다. 영화 속 왓슨 선생님은 웰슬리 여대에 부임해 종속적인 것을 거부하는 수업 방식으로 제자들에게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준다. Y교수님 역시 우리 14학번이 대학에 입학할 때 새로 부임하신 분이다. 그래서 첫 수업 때 “나도 신입생이니 잘 부탁한다.”라고 말씀하시며 학생들과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셨다. 또, Y교수님도 예술을 전공하셔서 그런지 수업 방식 또한 리버럴하고 파격적이었다.


교수님의 수업에는 정답이 없었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발언을 하지 않는 이상 학생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이해할 줄 아셨다. 그리고 본인의 생각을 무조건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않으시고 다름을 인정해주셨다. 한참 토론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발언이 나오면 절묘하게 캐치해서 수업을 이끌어 가셨다. 그럼 우리는 또 하나를 배우고, 의문점이 있으면 물어보고, 그렇게 광고와 예술을 공부했다. 토의의 주제는 다양했다. 20세기 광고에 영향을 끼친 획기적인 사건, 예술과 도덕의 관계, 최근 개봉한 영화, 오늘 있었던 일 등 모든 것이 수업의 주제가 되었다. 자칫 흘려보낼 수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고찰하며 우리는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영화 속 여섯 번의 수업과 변화

첫 번째와 두 번째: 신선한 충격


처음 Y교수님의 수업을 접한 뒤 받은 충격과 수업 방식에 적응하는 과정은 영화 속 웰슬리 여자 대학 학생들이 변화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교수님의 첫 수업은 항상 특이한 곳에서 시작됐다. 명칭은 광고 세미나지만 건축 전시회를 보러 간 적도 있었고, 학교 근처 화과자 집에서 모인 적도 있었다. 관람하는 동안 Y교수님은 아무런 설명 없이 함께 전시장을 둘러보며 질문을 던지고 학생들의 답변을 유도하셨다.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에서 왓슨 선생님의 수업 장면은 총 여섯 번 등장하는데, 매 장면마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생각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1950년대 보수적인 웰슬리 여대에 부임한 왓슨 선생님의 첫 수업은 학생들로부터 무시만 받고 끝난다. 학생들은 교과서와 슬라이드에 나오는 예술 작품을 모조리 꿰고 있으나, 그 누구 하나 자신의 감상을 논하는 이는 없다. 그저 ‘정답’이라고 여겨지는 작품 명, 제작 시기, 특징만을 감정 없이 읊어댈 뿐이다.


<시체> 수틴 (1925) 이하 이미지 출처 :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 (마이크 뉴웰, 2003)


두 번째 수업부터 왓슨 선생님은 학과장이 정한 커리큘럼을 버리고, 그녀만의 스타일로 예술을 가르친다. 그 시작은 수틴의 <시체>를 감상하는 것이었다. 교재에 없는 작품이 나오자 학생들은 당황하고 왓슨 선생님은 아래와 같이 말하며 학생들 틈으로 들어가 앉는다.



"멋있어? 대답해봐. 어떤 답도 괜찮아. 정답을 강요할 교재도 없으니까."


추하고 역겨운 것은 예술로 인정받을 이유가 없다는 베티의 의견을 시작으로 학생들은 자유롭게 예술의 기준에 대해 논한다. 그리고 그게 바로 왓슨 선생님 수업의 새로운 학습 목표가 된다.


"예술은 무엇인가? 미와 추는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이 질문은 웰슬리 학생들의 현대 미술 강의 목표인 동시에 영화를 이끌어 가는 주제가 되기도 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옳고 그름은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왓슨 선생님을 만나기 이전 웰슬리 여대생들에게 예술이란 저명한 이의 검수를 받은 교과서에 적혀 있는 내용이 정답이었으며, 인생이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굳건히 지키며 전통을 계승할 아이를 낳는 것’이다. (가정을 이루겠다는 생각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단지 웰슬리 학생들에게 진정 본인이 원하는 것인지, 사회의 요구에 따르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 하지만 왓슨 선생님 덕분에 학생들은 틀에 박힌 예술과 인생에서 벗어나 자기 힘으로 사고하고 결정하는 주체와 자율을 배우게 된다. 학과장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이런 왓슨 선생님의 수업 방식을 두고 급진적이라고 비난하지만 왓슨 선생님은 굴하지 않고 변화를 추구한다.






세 번째 : 변화


세 번째 수업은 비 오는 날 야외 작업실에서 이루어진다. 학생들의 과제는 물감을 아무렇게나 흩뿌려 놓은 잭슨 폴록의 작품을 그저 감상하는 것이다. 감상이 끝난 후 리포트를 제출할 의무도 없다. 예술 작품을 보고 자기가 느낀 그대로 피부로 받아들이는 것. 왓슨 선생님은 이 한 가지 만을 요구한다. 왓슨 선생님의 방식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학생들은 처음으로 아무런 의무 없이 마음을 비우고 코 앞에서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 이런 심리 변화를 나타내기 위해 카메라는 그림과 교감하는 학생들의 얼굴을 순차적으로 담아낸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 설득과 강요



네 번째 수업에는 반 고흐 따라 그리기가 등장한다. 대중에 영합하길 거부했던 화가가 이제는 박스에 갇혀 누구나 따라 그릴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사실을 두고 왓슨 선생님은 아이러니하다고 표현한다. 여기서 왓슨 선생님은 누군가가 그려놓은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따르는 복제품이 아닌,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라는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부드럽게 던진다.



본인의 회유와 설득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결혼과 가정의 틀에 갇혀 사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왓슨 선생님은 결국 다섯 번째 수업에서 자신의 의견을 몰아붙이게 된다. 현대 예술이라는 소개 하에, 슬라이드에는 1950년대 여성의 역할을 가정에 국한시키는 광고 포스터가 지나간다. 왓슨 선생님은 학생들이 명석한 두뇌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타고난 역할’, 즉 가정을 이루고 지도자의 아내가 되는 길을 택하는 것이 안타까워 열변을 토한다.






그러나 왓슨 선생님이 간과한 것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가정을 이루는 것이 인생의 큰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과 주체적인 의지를 가진 여성이라면 가정을 이룬다고 해서 남편의 부속품으로 전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의 주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인생의 옳고 그름이란 무엇인가? 왓슨 선생님에게 옳음이란 결혼을 포기하고 무조건 커리어를 위해 달려가는 것이고, 그름이란 결혼, 가사, 육아다. 하지만 선생님도 틀릴 때가 있다. 결혼은 옳고 그름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라 자율과 주체의 문제다.


보수적인 웰슬리 대학과 진보적인 왓슨 선생님의 대립을 그리며 왓슨 선생님의 편을 들어주던 영화도 마지막 수업 장면 전에서 왓슨 선생님의 태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우등생 제자 조앤이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결혼을 했다는 말을 들은 왓슨 선생님을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선생님을 보고 조앤은 이렇게 말한다.



“전 엄마가 되는 게 더 좋아요. 어리석은 선택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선생님은 늘 그런 식이에요. 고정관념을 깨라고 하시면서 선생님은 못 깨잖아요. 주부를 속물적인 백치로 보시죠. 속에 든 것도 없고 지성도 흥미도 없는. 원하는 걸 하라고 한 건 선생님이에요. 전 이걸 원해요.”


학생들이 교과서라는 틀에 갇혀 예술을 옳고 그름으로 따졌다면, 왓슨 선생님은 여성의 인생에 대한 고정관념에 갇혀 결혼을 옳고 그름으로만 구별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제자를 보고 그녀는 인생에 더 많은 갈래가 있음을 깨닫는다.






마지막 여섯 번째 : 이해와 응원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수업 장면을 들여다보자. 여기서는 선생님과 학생들 간의 이해와 양보를 볼 수 있다. 학생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관한 의견을 자유롭게 교환한다. <모나리자>는 이미 저명한 학자들이 인정한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학생들은 교과서에 적힌 말 대신 본인이 그림을 보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며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려 한다. 그렇게 열변을 토하던 왓슨 선생님도 이번에는 개개인의 의견을 존중하려는 듯 학생들 사이에 앉아 가만히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모나리자 스마일'의 의미에 관해 저마다의 의견을 말하는 학생들.


다음 장면에서 학생들이 왓슨 선생님에게 바치는 개성 넘치는 해바라기 그림의 의미는 비록 관습을 따라가더라도 남들이 좋다는 걸 그대로 베끼며 살기보다 주체적으로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겠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모나리자 스마일>은 스승이 제자를 바꾸는 영화가 아니다. 그 반대도 아니며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각자의 인생을 존중, 응원하는 영화다.







알을 깨고 나올 수 있게 도와줄 수는 있어도 그 후의 선택은 알을 깨고 나온 새에게 달려 있다. 진정한 스승의 역할은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가이드 같은 것이 아니다. 세상을 옳고 그름이 아닌 더 넓은 시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들을 믿고 대학이란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뛰놀게 해 주신 Y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덧)


학생 한 명 한 명을 생각하며 편지를 쓰는 왓슨 선생님


웰슬리 여대를 떠나기 전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남기는 왓슨 선생님의 모습을 보니 졸업식 날 졸업장과 손수 쓰신 메시지가 담긴 논문집을 전달해주시던 Y교수님의 모습이 생각난다.


夢をあきらめず、素晴らしい就職先でより一段大きくなって、違う形で challenge して下さい!


꿈을 포기하지 말고 멋진 직장에서 한 단계 성장한 후 다른 형태로 도전해보라는 말씀이 참 힘이 된다.


Y교수님이 졸업 논문집에 적어 주신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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