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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Jul 02. 2023

ESG는 개뿔

EP13. 마케팅 비용과 쓰레기는 정비례한다

음쓰봉 콜렉터



 언젠가부터 광고 씬에서 뭐만 하면 ESG를 들먹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F&B 브랜드 소셜 운영 대행을 진행해 본 결과, 마케팅에 있어 다른 건 몰라도 환경을 생각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환경을 생각한다는 대체육 브랜드 촬영 이후 스튜디오에서 나온 쓰레기만 몇 봉지 되시는지 아십니까. 거기다가 재료 수급받겠다고 비닐과 종이로 포장된 퀵을 받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회용품과 일산화탄소까지 생각하면 이렇게 비환경적인 일도 없습니다.


반년 간 버린 도넛만 해도 100개가 넘을 텐데요 29. JUN. 23


 F&B 브랜드 소셜 콘텐츠 담당자로서, 촬영 현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그 동네 노란색 10L짜리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사는 것입니다. 연간 운영이 끝날 때 즈음이면 서울시 전 동네 음식물 쓰레기봉투 모으는 거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하죠.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들어갈 건 한 입 먹고, 혹은 DP만 되었다가 버려질 도넛 약 10만 원어치입니다. 스태프 간식으로 소비되는 걸 빼도 하루에 버려지는 도넛만 몇 박스 됩니다. 촬영 내내 한 입만 베어 문 도넛이 쌓여갑니다. 성질 급한 저는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열어 도넛을 욱여넣습니다. 그렇게 촬영 한 번에 음식물 쓰레기만 예닐곱 봉다리를 버려야 하는데… 촬영은 한 달에 한두 번, 많으면 네 번. 사진 한 장, 20초짜리 영상 하나 찍는데 얼마나 많은 도넛이 버려지는지 가늠이 가시는지요.






지속가능성과 예술 사이



 버려지고 쌓이는 건 음식물뿐만이 아닙니다. 영상에 1초 등장할 의상 한 벌에 십만 얼마, 반 달 치 발행될 콘텐츠 촬영에 필요한 스튜디오 대관비만 돈 백만 원. 괜히 마케팅 비가 몇 억 씩 든다는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닙니다. 대학 영문 독해 수업에서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감명 깊게 읽은 사람으로서, 지속가능성이 계속해서 화두에 오르는 오늘날, 한 달에 한 번 영수증 처리를 하면서 ‘과연 이런 소비가 맞나’ 싶었습니다. 


사진 3장, 30초짜리 영상 하나를 위해 과연 이런 소비가 맞을까. 07. MAR. 23


 샤넬이 패션쇼를 위해 100년 된 나무를 베어다가 쇼장에 옮겨 놓은 일로 환경단체로부터 뭇매를 맞은 게 2018년입니다. 이건 극히 대표적인 예시로, 환경 문제가 광고/예술 업계에서 제기되기 시작한 건 훨씬 오래전 일이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근 국내외 많은 기업/정부는 ESG, 2050 탄소중립, RE100이라는 이름 하에 지속가능한 발전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근데 아무리 대의가 움직이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당장 서울 소재 광고 대행사에서는 직원들이 귀찮다는 이유로 촬영 후 재활용을 등한시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쓰지도 않을 소품과 옷과 도넛을 촬영 날마다 사들이는데요. ‘혹시 몰라서’ 사람 머릿수대로 full-color 프린트하는 촬영구성안만 생각해도 종이가 몇 장 버려지는지…






 유독 F&B 브랜드 수주를 많이 하는 우리 (구) 회사는 회사 지하에 아예 촬영용 음식 제조를 위한 부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냉장고 안에는 촬영장에서 한번 빛을 발하고 만, (혹은 빛도 보지 못한) 음식물이 아주 썩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퇴사 전 마지막 재활용 시간, 우리 팀 담당 구역이었던 지하 1층 부엌 냉장고를 열고 깜짝 놀랐습니다. 유통기한이 2년이나 지났지만 포장은 뜯지도 않은 양념통이 천지삐까리. 그리 많이 필요하지도 않은데 대용량으로 쟁여둔 채소만 한 박스. 거기다 썩어 문드러진 식재료(였던) 것들까지 합치니 다섯 명이 달려들어 냉장고 비우는 데만 한 시간이 꼬박 걸렸습니다. ‘먹어서 버리면 되지 않냐’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그거 다 우리 몸에 버리면 도넛 브랜드 담당자는 일 년 운영이 끝난 뒤면 허리둘레가 5인치는 늘어나고 당뇨에 걸려 배에 인슐린을 주입하고 있을 것입니다.


문제의 토마토는 냉장고 털이 이후 야무지게 사무실 식구들과 먹어치웠다고 합니다. 21. JUN. 23







일이 되면 뭐든 다 싫다



 카페나 레스토랑 촬영을 가서도 버린 음료와 음식이 얼마 어치인지. 촬영 소품 먹으면 복 달아난다는 말을 믿는 것도 아닌데, (이거 변명 맞습니다) 이상하게 일할 때는 모든 게 맛없게 느껴지더군요. 같은 장소라도 놀러 갔을 땐 그렇게 맛있었는데 말이죠. 맛있는 거 맨날 보고 유명한 데 가서 공짜로 음식 얻어먹기 위해 에디터 일에 도전해 보고 싶다면 뜯어말리고 싶습니다. 입사 전에는 귀여운 분홍색 곰인형 캐릭터가 좋아서 연차 내고 팝업 스토어에 가서 사진 찍을 정도였지만, 그게 내 일이 되니 꼴도 보기 싫어지더군요. 촬영을 위해 산 분홍색 곰인형 캐릭터 굿즈 몇십 만 원어치가 배달 온 날, 무겁기는 더럽게 무겁고 바빠 죽겠는데 소포 뜯어서 정리할 생각 해 소포꾸러미를 발로 걷어 찬 적도 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 사무실에서는 커피컵을 재활용해 식물을 키웁니다. 12. MAY. 23


 에디터로 일하는 시간 동안 환경오염에 매우 일조한 것 같아 찔립니다. 하지만 그게 내 일이 되면 모종의 이유로 쓸데없이 물건을 많이 사서 많이 버리게 됩니다. 앞으로 반년 동안 제가 버린 만큼의 도넛이 더 버려지겠죠. 그리고 도넛 브랜드가 소셜 운영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촬영장에서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들고 헤맬 것입니다. 일 쳐내기 바쁜 실무진 입장에서 환경까지 생각하라니 너무 골머리가 아파옵니다. 저보다 높으신 임원진 여러분, 부디 이 일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책을 내놓아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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