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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아더레벨, 버스 친절에 다녀오다.

by 나르샤


버스를 탔다.

버스카드를 태그하자마자 기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자리에 앉으신 후 출발하겠습니다.”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말 한마디가 귓가에 맴돌았다.


버스가 멈춘 사이, 나는 자리로 향했다.

그런데 어색했다.

멈춘 버스 안에서 걷는 일이 이렇게 낯설 줄이야.

늘 출발한 후 중심을 잡으며 겨우 앉았던 그동안이 오히려 이상했다는 걸, 그 순간 알게 되었다.


기사님은 내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출발하지 않으셨다.

차가 멈춰 있어도 발바닥이 바닥을 느끼는 일은, 몸이 흔들리지 않는 일은,

생각보다 큰 안심을 주는 일이었다.

익숙하지 않아 어색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한 정거장을 남기고, 어떤 어르신이 먼저 일어나셨다.

잠시 후,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어르신, 앉아 계세요.”

어르신이 “괜찮아요”라고 하시자, 기사님은 조용히 이렇게 덧붙이셨다.

“제가 좀 더 집중하겠습니다.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네, 출발합니다.”


하차 시에도 기사님의 목소리는 이어졌다.

“잠시만요. 안전하게 하차하신 후 확인하고 출발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순간, 마음이 움직였다.

버스에서 내리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 인사를 받은 기사님은 온몸을 숙여, 나에게 깊은 인사를 돌려주셨다.


버스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2415번, 대치동 래미안팰리스 앞, 오전 11시 25분.

이 기록은 내 마음속의 어떤 ‘기준’을 새로 정립했다.


친절이란, 주는 사람이 '이게 친절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내가 지금 다른 세상에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라는 걸,

오늘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온전히 체험한 친절.

오늘 나는 그 언아더레벨의 친절 세계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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