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이 다를 뿐 인생에 꽃 필 시기는 반드시 찾아온다.
"고통에 익숙한 사람 잘 견디는 게 디폴트 인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까 괜찮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 드라마 '런 온 '중에서
2020년 12월 16일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런 온을 다시 보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집중해서 본 드라마이기도 하다. 특히 공감이 되는 명대사도 많았기에 드라마를 보는 내내 울컥하는 장면들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위 명대사처럼 우리의 삶에는 많은 고통이 찾아오고, 잦은 고통이 찾아오다 보면 어느 순간 무뎌지기도 한다.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숨 쉴 틈 없는 바쁜 하루를 살아간다. 아침 이른 시간부터 지하철을 타고, 다음 지하철로 갈아타기 위해 뛰어가는 사람들. 저녁 시간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삶에서 매번 지하철을 타며 느끼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출근길 스마트폰을 자주 만지게 되지만 그럴 때마다 눈동자를 굴려가며 힐끗힐끗 주위를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손에 핸드폰을 꽉 쥔 채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한 번의 눈동자의 힐끗을 통해 입가의 미소를 확인해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가에 미소가 없는 무표정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그만큼 바쁜 하루를 살아가고 있고, 삶에 지쳤다는 뜻이 아닐까. 나도 마찬가지로 숨 쉴 틈 없이 바쁘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유독 그날의 하루가 길게 느껴지곤 한다.
심지어 잘 되던 일도 마음이 지치는 날에는 잘 되는 일마저 없다. 마치 세상과 다툼이라도 한 듯 혼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불안함 뿐만 아니라 조급함까지 거친 파도처럼 한꺼번에 덮쳐온다.
결국 끝내 참고 있었던 눈물 버튼은 한순간에 빵 하고 터져버리고, 울면 울수록 서러움이 폭발한다. 아무리 괜찮은 척, 울지 아닌 척 노력해보아도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도무지 멈추질 않는다.
우리의 삶은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고, 항상 웃음이 가득한 행복만 가득하진 않다. 그렇지만 그 힘든 시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중요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코로나 19 유행 직전 2019년보다 우울증 환자수가 15% 더 증가했다. 가장 많은 연령대는 20대로 2년 전보다 45.2%로 늘어났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불안장애 환자 또한 20대 비중으로 모든 연령대를 기준으로 증가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막막함,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게 됨으로써 절망감과 무기력함에 빠지게 된다. 그렇기에 힘든 시간을 극복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2018년의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보다는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고, 아픈 엄마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매 순간 “나는 강해질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라며 다짐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책임감이라는 무게를 짊어지라고 한 적은 없었지만 혼자만의 무거운 책임감을 안은 채, 성인이 되었다.
성인이 된 나는 아픈 엄마에게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고,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여유 있게 부모님을 도와드리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불안함과 조급함은 한꺼번에 몰려왔고, 남과 비교하며 빠른 성장과 빠른 성공을 원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경제적으로 자주 싸우는 부모님을 보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이른 나이부터 세상과 타협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엄마와 아빠에게는 든든한 딸이 되길 바라며.
하지만 현실을 쉽지 않았고, 내게 많은 시련을 가져다주었다. 주변 사람에게 이용을 많이 당하기도 했고, 일을 열심히 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2018년 부모님의 부도위기, 엄마의 잦은 입원과 병원비도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날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모든 것이 한꺼번에 찾아왔던 힘든 시간으로 나를 수만 번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참고 버티고 계신 부모님의 얼굴이 아른거려 참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스물셋이라는 나이에 나는 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던 사람이었지만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고, 그렇게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기로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지만 마음만큼은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보다 한없이 스스로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깎아내렸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사라지고 나니 길을 지나가다가도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했고,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잘못했다고, 죄송하다고 사과하기 일쑤였다.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 지나가는 일이 그리도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사람이 많은 공간에 가는 것조차 가슴이 답답하고, 사람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 보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이 많으면 어딘가로 숨고 싶었고, 사소한 말 한마디조차 예민하게 반응했다.
반복적으로 확인할 정도로 나를 의심하곤 했다. 불안을 조절하기 어려울 정도 손톱을 물어뜯고, 수시로 머리카락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때 거울 속 나의 모습은 세상을 포기 한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저 어쩔 수 없이, 버텨내야 해서 살아가는 사람처럼.
자주 있었던 힘든 일이기에 익숙하다고, 덤덤하다고,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 당당히 외치던 내가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던 시간이었다.
책 <결단>에서는 "당신이 느끼는 그대로, 믿는 그대로, 생각하는 그대로, 행동하는 그대로, 바로 그렇게 세상은 움직인다. 당신은 세상의 중심이다! 당신이 존재함으로써 세상이 존재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을 한순간도 잊지 말자!"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된 사실은 지친 나를 달래주지 않거나 지친 마음을 되돌아보지 않는다면 나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꽃 필 각자만의 타이밍이 있는 법이다. 당장은 눈앞이 캄캄하고, 힘든 시간이겠지만 분명 그 시간들은 삶에 단단한 마음을 만들어 줄 것이고, 꽃 필 타이밍에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