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는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
나는 그의 해사한 미소를 사랑했다.
독일은 한국과 달리 수술 중 대기실에서 환자를 기다리는 문화가 없다. 보호자를 위한 수술 대기실이라는 공간도, 그런 용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당연히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장면처럼 아무개 환자의 수술이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시등을 바라보면서 애가 타게 수술실 문 앞에서 기다린다거나, 수술이 끝나고 나오는 의사를 붙잡고 수술이 잘 되었는지 물어볼 수도 없다.
"안녕 이따 봐."
수술 전 웃으며 작별인사를 건넨 후, 간호사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는 베니의 뒷모습을 평소보다 조금 더 길게 바라보았다. 밝게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어쩐지 애잔해 보였다.
베니의 예쁜 미소를 몇 시간 후 다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베니를 보내고 시부모님의 집으로 가서 함께 아침을 먹었다. 혼자서 이 시간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식탁에 앉아 빵에 버터를 고르게 바르고 치즈를 얹어 먹었다. 따뜻한 커피도 마셨다. 유독 오늘따라 천둥번개가 많이 친다는 등의 쓰잘머리 없는 내용의 대화를 천천히 이어나갔다.
우리 모두 의연한 척했지만, 아무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나는 방에 들어가 잠시 혼자 시간을 가지겠다고 했다.
그리고 베니가 결혼하기 전 수도 없이 앉았을 오래된 나무 책상 앞에 앉아 기도를 했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기도 해서 약간의 선잠을 자기도 했다.
선잠이었지만, 잠을 자다니.
이것은 그만큼 이 수술이 큰 문제없이 진행될 것이라 믿고 있었던, 내 무의식의 증거일 것이다.
의사는 뇌종양의 위치가 좋지는 않다고 했다. 하지만 수술 중 신경이 손상되지 않도록 어떠한 장치가 경고 알람을 주고, 그러면 바로 수술을 멈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수술을 결정하게 된다면, 프랑크푸르트 대학 병원 최고의 수술 집도의가 수술을 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출근을 해야 해서 함께 병원에 가지 못했지만, 이 날 의사의 설명을 들은 베니와 시아버지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고 했다.
세 명의 의사는 수술을 당장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현재 아무런 증상이 없고, 종양이 아주 어릴 때부터 있던 것으로 추측되므로 자라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당장은, 또는 어쩌면 영원히 수술을 하지 않아도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두 명의 의사는 수술을 추천했다. 증상이 없을 때 수술을 해야 수술 후에도 예후가 좋다고 했다. 또한 , 크기가 꽤 큰 편이기 때문에 그냥 둔다면 예기치 못한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건강할 때 수술을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마지막 의사의 설명을 들은 후, 베니는 수술을 하고 싶다고 나에게 말했다. 의사가 수술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것을 듣고 나니 왠지 괜찮을 것 같다며.
"아, 그래? 그 정도로 오늘 의사 면담에서 느낌이 좋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사람을 앞에 두고 나의 불안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애써 미소 지으며 질문을 던졌지만, 내 머릿속은 순식간에 무서운 상상들로 가득 찼다.
지금 이렇게 멀쩡한데 꼭 수술을 해야 할까? 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베니가 내 옆에 없다는 것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만일 수술을 하지 못하게 했다가, 갑자기 뇌출혈 등으로 쓰러지거나 더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그때 수술을 반대한 부인으로서 생기게 될 죄책감은?
그렇게 우리는 수술을 결정했다.
2023년 8월의 어느 여름날, 병원 복도에 마련된 하늘색의 차가운 철제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여름이었지만 날씨는 서늘했고 하늘은 곧 비가 올 것처럼 어두웠다.
수술 전 날까지도 우리는 최고 수술 집도의라는 의사는 만날 수 없었다. 독일의 의료 시스템이 원래 이런 것인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남편도 시부모님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데, 내가 부족한 독일어로 무엇을 어떻게 불평하고 요구하리. 이렇게 외국인은 타지에서 한없이 무력해진다.
의사가 베니의 이름을 불렀고, 우리는 의사의 걸음을 쫓아 방으로 들어갔다. 1평 남짓 화장실 크기의 작은 방에는 소파와 의자, 원형 테이블 그리고 잡지 몇 개가 단출하게 놓여있었다. 마취를 담당한다는 여의사는 젊고 아름다웠다. 많은 수술로 얼굴에 힘든 기색이 묻어 나왔지만, 상냥했고 목소리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녀는 수술 전후 과정을 막힘없이 설명해 주었고, 수술 후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나열했다.
"... 그리고 성대마비가 올 수도 있어요. 삼킴 동작이 어려워질 수 있고, 그러면 음식물 섭취가 어려워서 고생할 수 있어요."
차분히 설명을 듣고 있던 베니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오, 그건 안 돼요. 먹는 것이 어려운 것은 제가 가장 원하지 않는 최악의 가능성이에요."
한 때 요리사였고 레스토랑을 운영했던, 음식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베니다운 반응이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베니의 장난꾸러기 같은 반응과 농담에 의사도 맑게 웃었다. 그 정도였다. 먹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 이 수술에 대한 가장 두렵고 충격적인 내용이었을 정도로 우리는 이 수술의 위험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고, 어쩌면 무지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 건가요?"
어쩌면 알고 싶지 않았던, 그래서 지금까지 묻지 않았던 질문을 수술 전에야 겨우 마음속에서 꺼내 보였다. 담담한 척 질문했지만, 내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여의사는 다시 맑게 웃으며 답변했다.
"음... 3프로 미만?"
* 이 글은 주관적인 시각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의학적인 내용 등에 있어 사실과 다르게 알고 있거나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리고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