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끝자락에 위치한 여대를 졸업하고 외국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기까지
본격적으로 해외 마케팅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나의 커리어에 관한 아주 솔직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서울 끝자락에 위치한 여대를 졸업하고 외국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위에서 언급한 것 그대로 나는 대단한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수능점수에 맞추어 겨우 in서울을 했다. 문과 전공 중에서는 경영학과가 그나마 졸업 후 취업률이 높다고 하여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다. 졸업 후 막연히 해외 취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시중에 있는 해외취업 관련 책을 읽다 보면 중간에 꼭 김이 새곤 했다. 그 이유는 대략 아래와 같았다.
뭐야. 이 사람 알고 보니 엄청 똑똑한 사람이었네.
뭐야. 이 사람 알고 보니 미국에서 청년시절을 보냈었네.
뭐야. 이 사람 알고 보니 한국에서 명문대 나온 사람이었네.
뭐야. 이 사람 알고 보니 한국 대기업에서 이미 괜찮은 경력을 쌓았었네.
그들과 달리 나의 커리어는 아래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뭐든지 한 번에 이룬 적은 없었다.
그런 해외 취업 스토리를 엮어 한 권의 책을 출판하였다. 책이 세상에 나온 후, 그저 글 쓰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어떻게 책까지 낼 수 있었는지에 대해 블로그에 짧게 써 내려갔다.
https://blog.naver.com/jebesoo/221621821382
그리고 이 글 밑에 여러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그중 인상적인 댓글이 있었다.
'와...connecting the dots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connecting the dots
점들의 연결
스티브잡스가 연설 중 했던 말로, 지금 쓸모없어 보이는 작은 경험들도 모두 서로 연결되어 미래에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나의 마케팅 커리어도 꼭 그러했다.
'해외에서 일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좋아'라고 생각하고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채용공고 사이트에서 스웨덴 글로벌 기업의 '고객지원팀 매니저'를 뽑는 채용공고가 보였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지원을 했다. 전화가 왔다. 사실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기에 많이 놀랐다. 헤드헌터가 말했다. 매니저 자리는 경력이 없어서 어렵겠지만, 마침 주니어 자리가 비었다고. 아직 오픈 포지션이 아닌데 원하면 면접을 볼 수 있다고. 그렇게 첫 커리어를 고객지원팀 말단 직원으로 시작했다.
회사에서 마케팅 팀과 함께 일을 하면서 나도 마케팅 업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생겨났다. 예전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마케팅부서는 워낙 출중한 인재들이 일하는 곳이라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지금 현 상황에서 내가 마케팅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다. 고민 끝 나온 답은 블로그를 해보자. 인터넷과 책 등을 활용해 블로그 마케팅을 공부하고 그 내용을 직접 내 블로그에 적용해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블로그가 네이버 메인에 자주 노출되면서 방문자수가 순식간에 올라갔다. 그러던 중 마침 회사의 마케팅 자리가 공석이 되었고, 블로그 성장 스토리를 적극 어필하여 마케터로 직종 변경을 하게 되었다.
마케터로 2년 정도 경력을 쌓고 있을 즈음이었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친환경 식품을 판매하는 캐나다 업체 웹사이트에 못 보던 문구가 보였다. 'We are looking for a Korean speaker'. 이메일을 보냈다. 나를 소개하고 내가 얼마나 당신의 회사를 잘 알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당신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호기로운 이메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나만큼 이 회사 제품을 좋아하고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장과 면접 아닌 면접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보았다. 사장은 이력서 따위 필요 없다고 했다. 대신 내가 왜 특별한지, 나의 열정이 무엇인지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 기묘한 면접 후에 나는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주변 사람들이 종종 물어봤다. '혹시, 그거 네 회사니? 뭘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해?' 내가 내 사업처럼 열심히 일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정말 좋은 사장님 - 나를 믿고 내가 성장하게 도와주는 사장님 덕분이었다. 유대인이었던 그분은 마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책의 부자아빠처럼 내가 어떻게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지 보여주시고 도와주셨다.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일하는 법을 덕분에 터득할 수 있었다. 누가 보면 그 월급을 받고 그렇게까지 일하나 싶었을 것이다. 사실 나도 종종 내가 왜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푸시하면서 일할까 싶었다. 심적으로 힘들었지만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어디서 어떻게 알고 연락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종종 모르는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식품 분야 사업을 하는 분들이었다. 어떤 분은 운영하시는 레스토랑에 초대해 주셔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주시길래 뭣도 모르고 맛있게 먹고만 온 적도 있었다. 알고 보니 나를 지인/신문/블로그/이벤트 행사장 등의 경로를 통해 알게 된 후, 마케팅과 홍보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만남을 제안한 것이었다. 하루는 식품 분야 신규사업을 기획하고 계신 분과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신규 사업 기획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솔깃해졌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만남을 가진 후 집에 가서 일주일 정도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노트북을 열어 마케팅 제안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요즘 부쩍 소셜미디어에 마케팅 구루라고 불리는 세스 고딘 관련 컨텐츠가 자주 보였다. 알고 보니 그의 책, 린치핀이 재출간을 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어보진 않았다. 그런데 그의 책 - 린치핀에 관한 인터뷰 내용 중 어느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훌륭한 일을 얻는 법
똑같은 이력서가 넘치는 공장에서 어떻게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가?
세스 고딘의 대답은 바로 이것이었다.
컴퓨터로 이력서를 훑어서 자동으로 분류하는 회사는 거들떠보지도 마라. 이력서가 아니라 사람을 고용하는 회사를 찾아라. 나는 이력서로 입증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로 입증된다.
나는 대단한 대학을, 엄청난 스펙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컴퓨터로 이력서를 자동으로 분류하는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웠다.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볼품없어 보였지만 작은 것부터라도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그 작은 경험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차곡차곡 모여서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connecting the do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