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우리 다 떨어진거야?
나는 특출 난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뒤쳐지는 것도 없는 평범한 한국 여대생이었다. 취업을 위해 착실히 스펙을 쌓는 다거나,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는 학생은 확실히 아니었다. 하지만 꽤 괜찮은 토익 점수가 있었고, 인턴 경험도 몇몇 쌓아놓았으며, 틈틈이 봉사활동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남들 하는 만큼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놀면서 중간 가는 스펙과 성적을 들고 대학을 졸업했다.
해외 취업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언제나 있었지만 도전해 볼 용기는 없었다. 한국에서도 별 볼 일 없는 구직자인데 해외에서 누가 날 필요로 할까 싶었기 때문이다. ‘좋은 직장’이라고 불리는 대기업에 취업할 거라는 기대는 애당초 하지도 않았다. 나는 서울 끝자락에 있는 대학교에 겨우 In 서울 한 아주 평범한 스펙의 여대생이니까. 꼭 해보고 싶은 일도 없었고, 미래를 향한 계획이나 꿈은 당연히 없었다. 유일하게 해보고 싶은 일이었던 항공사 승무원은 지원하는 족족 2차도 아닌 1차 면접에서 보기 좋게 탈락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백수가 되자 자신감은 급속도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잘난 것도 없고 꿈도 없는 내 모습이 한심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나는 왜 이것밖에 되지 않는 인간일까?’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미워했다. 이제 대학을 갓 졸업했는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가 서글퍼 매일 밤잠을 설쳤다. 좋은 직장이고 뭐고 그냥 아무 곳이나 일단 취업하고 싶었다. 그저 ‘직장인’이라는 것이 되고 싶었다.
온 마음 다해 꼭 하고 싶은 일은 없었지만, 해보고 싶은 일이 하나 있기는 했다. 바로 항공사 승무원이었다. 공짜로 세계 여행을 하고 그 대가로 돈까지 벌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승무원 증명사진을 전문으로 한다는 사진관에서 수정을 하도 많이 해서 전혀 나 같지 않은 증명사진을 이력서에 붙이고, 승무원 면접 용 의상도 구매했다. 면접 당일에는 새벽부터 승무원 면접 화장을 전문으로 하는 곳에 가서 난생처음 돈을 내고 머리 손질과 화장을 받아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1차 면접 탈락이었다. 계속해서 지원하다 보면 한 번쯤은 1차 면접에 붙는다고 주변에서 말했지만 나에게는 예외였다.
국내 항공사에서 선호하는 얼굴이 아닌가 보다며 애써 자기위로를 하고 국외 항공사로 눈길을 돌렸다. 국외 항공사는 영어로 면접이 진행되기 때문에 면접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취업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외항사(외국항공사) 승무원 면접 스터디 모임에 꾸준히 참여했다. 나를 제외하고 4명의 스터디 모임 구성원들은 최소 6개월 넘게 외항사 승무원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누가 더 오래 준비했고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느냐를 떠나서 모두 한결 같은 마음으로 서로 도움이 될 만한 좋은 정보를 공유하며 정말 열심히 면접 준비를 했다. 외국 항공사든 국내 항공사든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모두 지원했지만 결과는 언제나처럼 1차 면접 탈락이었다. 이어지는 탈락에 지쳐가던 중, 함께 면접 스터디를 하던 친구가 부산에서 외항사 공개채용 면접(보통 이를 오픈데이라고 한다)이 있을 예정인데, 자주 없는 기회이니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다. 면접에 참여하기 위해 KTX 기차표, 체류비 등에 돈을 써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워 잠시 고민을 했다. 하지만 면접을 보러 해외까지 가는 사람도 있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후회가 없지 않을까 싶어 부산으로 면접을 보러 가기로 결심했다.
‘그래, 이번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도전해 보고 이번에도 안되면 나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만하자.’
면접 스터디 모임에서 만난 친구와 나 그리고 2명이 더 모여 기차표를 끊고 부산의 어느 한 숙소를 예약했다. 돈을 최대한 절약하려다 보니 방 한 칸짜리에 침대도 없는 여인숙에 4명이 함께 하루를 묵었다. 다음 날, 새벽부터 일어나 승무원 면접 복장으로 옷을 단정하게 차려 입고 부족한 솜씨로 머리와 화장을 했다. 허름한 여인숙에서 쪽잠을 자고 면접장으로 향하는 가난한 취업 준비생이지만,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행복했다.
공개채용 면접은 부산 해운대 근처의 오성급 호텔 대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공개채용 면접의 첫 단계는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다가 지원번호가 불리면 회의실 앞 편에 앉아있는 면접관에게 다가가 이력서를 제출하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면접관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그 다음 단계인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면접관에게 걸어갈 때의 걸음걸이, 인사를 할 때 편안한 미소를 남기는 것 등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 써야 했다. 드디어 내 지원번호가 불려졌다. 길어야 10초나 되었을까? 허무할 정도로 짧았던 면접의 첫 단계를 마친 후, 여인숙으로 돌아와 합격 통보 전화를 기다렸다. 네 명이 방 안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그 가운데 각자의 핸드폰을 놓고 기다리던 당시 우리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참 짠하다. 어떤 결과가 있든 좋은 결과가 있는 친구를 진심으로 축복해주자고 했다. 하지만 서너 시경에 온다는 합격 통보 전화는 오후 5시가 넘도록 오지 않았다.
“우리…… 설마…… 4명 다 떨어진 거야……?”
결국 우리 네 명 모두에게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무거운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오는 KTX 기차를 탔지만, 왜인지 모르게 목적지인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점점 편해졌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아. 최소한 시도는 했으니 후회는 없잖아. 승무원이 내 길이 아닌가 보지 뭐.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른 기회를 향해서 다시 나아가자.’
3년 후 여름, 나는 조금은 쓰라린 추억이 있는 그 곳, 승무원 면접을 보았던 부산의 호텔에 다시 오게 되었다. 이번에는 면접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여행으로. 회사에서 제주도로 오프사이트(해외 연수)를 가게 되었고, 겸사겸사 부산을 여행하기로 계획한 것이다. 의도한 바가 아니었는데 신나게 놀다 문득 주변이 낮이 익어 기억을 더듬어 보니 공개 채용 면접을 위해 왔던 그 호텔이었던 것이다. 3년 전, 공개채용 면접 1단계에서 떨어지고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때 오늘의 내 모습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회사에서 보내 준 여행으로 제주도에 오고, 외국인 동료들과 맛있는 제주 흑돼지 삼겹살을 먹고, 여인숙이 아닌 오성급 호텔에서 머물고 있다.
만일 내가 계속 승무원 일에 도전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승무원 체질이 아니었다. 밤잠이 많아 밤 11시 전에 잠을 자는 내가 밤낮 구분 없이 일해야 하는 승무원 일을 어떻게 해냈을까 싶다. 매번 면접에 떨어졌을 때는 속상한 마음에 희망도 미래도 보이지 않았지만, 승무원 면접에 떨어진 덕분에 다른 매력적인 기회를 잡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지금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속상해할 것 없다. 나중에 돌아보면 멋진 미래가 내 앞에 기다리고 있었음을 발견할 테니까. 좌절하지 말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분명 당신에게도 그 날이 올 것이다.
브런치에 소개되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들은 책을 통해 읽어보실 수 있어요. :)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4574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