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기업에서 일 할 때였다. 우연한 기회로 미국인 동료의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당시 그 친구는 스타트업 회사로 이직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여서,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는 그 친구가 새로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래서 요즘 새로 시작한 일은 정확히 무슨 일인 거니?”
라고 친구의 부모님은 자연스럽게 서두를 꺼내셨다.
“기업 고객을 상대로 마케팅 솔루션을 제공하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사업이야. 예전에 일하던 회사의 상사가 창업한 스타트업 회사야. 아직은 불안정하지만, 그 사람은 이 분야에 인맥이 많고 나는 이쪽 전문가이니 우리 둘이 합심하면 금방 고객이 많이 생길 거라 확신해. 벌써 기업 고객 하나가 프로젝트를 요청해서 지금은 그거 관련 일을 하고 있어.”
친구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계시던 어머니의 얼굴은 점점 걱정으로 굳어져 가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미국에서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기업에서 일을 했고, 유럽으로 건너가 세계 TOP3에 드는 MBA를 졸업하고, 스웨덴 글로벌 기업에 스카우트되어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커리어에 순탄 대로를 걷고 있던 것 같던 자식이 갑자기 미국도 아닌 중국에서 전 직원이 자신 포함 2명 뿐인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을 한다고 하니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친구의 말이 다 끝나고 나면 부모님이 뭐라고 반응을 하실지 왠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마침내 입을 연 어머니의 첫 문장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So… Are you happy?”
그래서… 행복하니?
“Yes, I am happy.”
응, 행복해.
“If so, then it’s OK.”
네가 행복하면 됐어.
그 회사 믿을 수 있는 회사인 거니? 돋은 얼마나 받고 일하는 거니? 비자는 어떻게 되는 거니? 등등 걱정 가득 담긴 질문 플러스 엄마표 잔소리를 한가득 하실 줄 알았는데, 친구 어머니 입에서 나온 첫 문장은 회사에 관련된 질문도 월급에 관련된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때까지 나는 진로와 관련된 결정을 할 때 이름있는 회사인지, 안정된 직장인지, 돈은 얼마나 버는지를 먼저 생각했지 ‘그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인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주변에서 이직을 고민하거나 이직을 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이직하려는 회사가 인지도 있는 회사인지, 벌이는 괜찮은지를 물어봤지 ‘그 일이 너를 행복하게 해 주는 일이니?’라고 물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의식 중에 일과 행복은 함께 가지고 갈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일은 돈을 벌기 위한 행위에 불과하며, 고로 인생의 행복은 일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해외에 살면서 내 친구처럼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안정되고 쉬운 길이 아닌 조금은 험난한 길을 걸으며 사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했다. 중국 대명절인 춘절에도 쉬지 않고 자신이 만든 영국식 수제 파이를 고객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직접 배송하는 영국인 친구, 아버지가 체코에서 이름만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대기업 사장이지만 상하이에서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는 체코인 친구 등.
내가 행복한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알고 있다. 일단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는 것 자체도 쉽지 않지만, 그 일이 무엇인지 안다고 해도 여러 가지 현실적인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해외에 나가 일을 하면 나를 사랑하는 부모님께 걱정을 배로 끼쳐드릴 수 있고, 내가 행복하기 위해 창업을 하면 나에게 의지하는 가족을 경제적으로 힘들게 할 수도 있다. 내가 행복한 일은 부모님이나 가족이 반대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의 주체, 행복의 중심이 내가 아닌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요리 쪽에 열정을 가진 일반인들이 TV에 나와 다른 참가자들과 요리 관련 경쟁을 벌이는 미국 리얼리티쇼를 본 적이 있다. 참가자 중에는 한국계 미국인도 있었는데 요리 방면으로 탁월한 재능을 가진 그는 한국식 미국 퓨전 요리를 선보이며 강력한 우승 후보자로 자리매김을 했다. 군침 돌게 하는 한국식 퓨전 요리를 뚝딱 만들어 내는 그의 놀라운 능력에 빠져 각 에피소드를 빠짐없이 챙겨 보면서 다른 참가자와 다른 그만의 특이한 점을 발견했으니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비장의 소스나 요리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참가자 개별 인터뷰를 할 때마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꼭 우승해서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다’는 말이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우승해서 나의 꿈을 이루겠다’, ‘우승해서 나의 레스토랑을 차리겠다’와 같은 우승 포부를 밝혔는데 그만 유독 우승의 목적이 ‘내’가 아닌 ‘부모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부모님이 인정하지 않으면 내가 추구하고 있는 길은 의미 없는 길인 것인가? 부모님께 인정받지 못하면 내가 선택한 삶은 불행한 삶인 것인가? 물론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것이고 부모님께 인정받는 것이 내가 행복한 일이라면 그 삶 역시 멋진 삶이고 그 삶을 존중한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성숙한 결정이고 대단한 일인가? 하지만 만약 자신은 그런 삶을 원하지 않았는데 부모님이 인정해 주지 않아서, 부모님이 다른 길로 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라고 불평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자기도 두렵고 확신이 없어서 스스로 원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 아닐까? 자신의 결정에 책임지고 싶지 않아 부모님의 조언을 따르며 살기로 선택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선택 역시 어찌 되었건 결국 자기 스스로가 한 것 이다. 그러니 괜한 부모님 탓하며 후회하지 말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래서 지금 너는 행복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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