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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윤 Jan 27. 2024

장날의 메인은 장터국밥이지

서민들의 식사 대용이나 술꾼들의 해장국/위로의 해장국

 장터국밥이라는 건 사실 장에서 파는 국밥이라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한데 실질적으로 전국의 장들이 점점 사라져 가면서 장터국밥이라는 말도 잊혀 가는 것 같다. 또 장터에 가지 않고도 사는 동네에서 몇 발자국만 떼도 국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들도 있기 때문이다.


 장터국밥은 예전에 보부상들이 주막에서 빠르게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었던 메뉴이기도 했다고 한다. 국밥이나 해장국이 크게 구분 없이 불리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가 아닐지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실제로 아직 열리고 있는 오일장에 가면 주변에 국밥집들이 꽤 남아있다.


 장터에서 국밥을 먹는 모습은 조선 말기의 풍속화인 신윤복의 <주막도>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비단 보부상들만이 아니라 서민들의 식사 대용이나 술꾼들의 해장국으로도 장터국밥을 먹기도 했던 것이다.  

   

 구체적인 연구 결과가 없긴 하지만 시장 부근에 국밥집과 해장국집이 많고, 또 교역이 많이 이루어졌던 장소 중의 하나인 강가나 바닷가를 끼고 있는 주변에 국밥집들이 많았던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사실 해장국 맛집을 찾다가 본 공통점이었지만 객관적 근거가 없어 조심스러우니 참고만 해주시길 바란다.     


 지역별로 식재료가 다르다 보니 각 지역의 장터국밥의 맛도 각기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해장국과 뿌리를 같이 하는 관계로 우거지와 콩나물, 소고기 내장이나 선지 등이 기본적으로 들어간다. 서민의 음식이기도 했고, 소나 돼지 등의 가축이 귀할 때이니 고기를 넣어서 끓이기는 힘들기에 스지와 같은 부위로 끓이기도 했던 것 같다.      


 소의 힘줄이나 근육과 뼈를 연결해 주는 결합 조직 등을 스지라고 하는데, 이 부위는 질기기 때문에 오래 끓여줘야 한다. 그렇기에 푹 고아내는 국밥류에도 잘 맞는 식재료 이기도 하다. 또 오래 끓이면 부드러워져 먹기 편하고 쫀득쫀득한 식감을 주기도 한다.


 이 스지로 콜라겐과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었을 테다. 든든하게 배도 채우고 영양까지 채울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장터국밥이었을 것이다. 또 이른 새벽 시장에 나온 상인들이나 일꾼들에게도 따뜻한 국물의 장터국밥은 그들의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데워주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해장국 투어를 다니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도 바로 이 장터국밥이었다. 어찌 보면 해장국의 원형이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 시장에 있는 국밥집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해장국 위주의 국밥집들이 었다. 순대국밥이나, 내장탕, 콩나물국밥 등이 주였다. 그래서인지 갖은 재료가 아닌 간단한 재료로 끓여내는 옛날 스타일의 장터국밥이 몹시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23년도 익산의 ‘천만송이국화축제’ 현장에서 내가 찾던 장터국밥을 만날 수 있었다. 어릴 적 추억의 난장과 비슷하게 천막을 쳐놓고 음식을 파는 곳이 있어 자연스레 발길을 옮겨보았다.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보니 커다란 솥을 두 개나 걸어놓고 한솥 가득 국밥을 끓이고 있었다. 위에도 커다랗게 장터국밥이라고 쓰여있었다. 나에게는 이것이야말로 멋진 장관이자 유레카였다.


 천막 안으로 자리를 잡고 곧바로 장터국밥을 시켜보았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밥솥에서 밥 한 공기를 떠서 국물에 여러 차례 토렴을 한 다음 건더기와 함께 국물을 담아 내주었다. 뚝배기 한가득 담긴 국밥이 시장 인심 같았다. 깍두기, 배추김치도 함께 제공되었다. 배추 우거지와 콩나물, 도톰한 무, 스지로 이루어진 비싼 재료 하나 없지만, 양만큼은 푸짐한 국밥이었다.     

 

 장터국밥이 너무 반가운 마음에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어쩌면 다시 보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처음 장터국밥을 봤을 때 붉은 기가 도는 것이 매운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적당히 얼큰한 맛에 무와 콩나물에서 오는 시원함이 저절로 미소를 머금게 하는 맛이었다.


 뒷맛으로는 오래 끓여낸 스지의 구수한 맛과 향이 올라와 꼭 살코기가 아니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게다가 쫄깃거리며 씹히는 스지의 맛이 별미였다. 가끔 스지에 많이 붙어있는 고기를 씹을 때는 마치 횡재를 한 듯한 기분까지 느꼈다.


 익산은 황등면에서 파는 육회가 올라간 황등비빈밥도 유명하다. 예전에 황등면에서 오일장이 크게 열렸었고, 우시장도 열렸었다고 한다. 그래서 육회가 푸짐히 올라간 비빔밥과 순대를 파는 식당들이 아직도 많이 몰려있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장터 국밥들도 여전히 남아있을 수 있었지 않나 싶다.


 보통 비빔밥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황등면의 비빔밥은 밥을 비벼서 육회를 올려 나온다고 해 비빈밥이라고 한다고 한다. 또 전주에 비빔밥집에서는 보통 콩나물국을 곁들여 내주는데 황등면의 비빈밥집들은 선짓국을 곁들어 내준다. 곁들여 내준 선짓국 맛에 놀란 사람들이 선짓국만 따로 팔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사실 이날 근처 고등학교에서 요리 특강이 있었다. 그래서 수업을 마치고 나와 들리기도 했거니와 때마침 점심시간이었기에 더욱더 맛있었던 것 같다. 그 옛날 노동 후 장터에서 국밥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웠던 그 시절의 느낌을 어렴풋이 짐작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이날 먹었던 장터국밥은 옛날의 주막에서 팔았던 국밥의 원형과 흡사했다. 맛있는 식사와 함께 값진 경험을 하게 되어 감사했다.


 나의 작은 소망이라면 이런 국밥집들이 사라지지 않고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음식을 공부하고 있는 입장에서 너무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이 시간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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